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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칼럼] 아이 없는 여자는 불행한 여자? <어여쁜 당신>

아이 없는 여자의 불행을 부추기는 <어여쁜 당신>

대한민국에서 아이 없는 여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결혼은 했는데 아이가 없다, 이 말은 곧 철이 없거나, 건강이 좋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설사 그녀가 좋은 남편 만나 잘 먹고 잘 산다 해도 ‘애가 없더라고’ 이 한마디면 그녀의 결혼생활은 금새 무의미한 나날로 변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무자녀 가정’이란 ‘행복의 조건, 가정의 근본, 사랑의 디딤돌’이 결핍된 가정을 뜻한다. 한마디로 ‘불행한 가정’이다. 결혼부터 출산까지의 전 과정을 순탄하게 이루어낸 뒤에야 비로소 시부모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고, 여자로서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 없는 여자의 불행'은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보아온 소재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고, 나 역시 그러했던 노희경 작가의 <거짓말>에도 아이를 갖지 못해 불행한 여자가 등장한 바 있다. 심지어 그녀는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까지 해야 했는데, 수술을 권하는 남편에게 그녀가 했던 말이 아직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막말로 너한테 자르라고 하면 넌 자르겠니?”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로 상징되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에게 가해지는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 없이는 행복한 결말도 없다?

KBS 일일 연속극 <어여쁜 당신>에도 아이를 갖지 못해 불행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이유로 온갖 구박과 모욕을 견디다가 지금은 이혼한 상태다. 그녀는 아이를 갖기 위해 그야말로 온갖 노력을 다 해 왔다. 일반 주사의 수천 배는 아프다는 주사도 맞고, ‘저 오늘이 그날이라는데…’하며 남편에게 조심스레 운을 뗐다가 면박도 당하고, ‘다산’을 상징하는 그림을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가 ‘미개인’ 취급도 당한다.

그녀의 이혼은 분명 잘한 결정이다. 그러나 그녀의 다음 상대로 준비된 남자가 ‘아이가 있는 남자’라는 사실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여자는 아이를 가져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으나, 이는 곧 '아이 없이는 행복한 결말이란 있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지식할 정도로 ‘아이’를 고집하는 한국 드라마의 태도는 이제 좀 바뀔 때도 되었다. 이혼하네, 마네 티격태격하던 부부가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전격 화해하는가 하면, 행복한 가족 드라마의 일반적인 결말은 며느리의 임신. 뭐 다 좋은데, 무자녀 가정이 불행의 대표주자라도 되는 듯 다루는 분위기만이라도 어떻게 좀 바꿔 보자는 뜻이다. 내 주변에도 아이를 갖지 않은 부부가 여럿 있지만, 그들 모두 ‘유자녀 가정’ 못지 않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물론 아이를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하는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드라마가 그 고통을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다. 즉 ‘아이를 갖지 못한 여성은 불행하다’라는 시각을 가장 강하게 전달하는 매체가 드라마라는 뜻이다.

‘무자녀 혁명’이라는 책을 보면 무자녀 여성은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여성’, ‘아이를 가지려 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여성’, ‘기타 이유로 아이 없이 살게 된 여성’으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와 다양한 삶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에는 왜 이다지도 아이가 없어서 불행한 여성들만 넘쳐나는지. 방실방실 웃는 아이 하나가 열 개그맨 안 부럽다는 것쯤이야 익히 아는 바, 안 생기는 걸 어쩌겠으며 둘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것을 어쩌겠는가.

여자는 약하고 어머니는 강하다지만, 어머니가 되지 못한 여성들을 그토록 약하고 불행하게만 그리는 드라마의 태도는 영 못마땅하다. 세상에는 ‘모성애’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고, ‘모성애’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 역시 너무나 많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무자녀 여성들아, 드라마의 구박에 개의치 말고 당당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