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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2005의 발견 [1] -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사진 이혜정김수경 2005-06-14

인디포럼2005에서 발견한 기막힌 작품 4

보라! 새로운 상상력의 미래를!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 노래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그러나 하늘 아래 더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영화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열 번째를 맞이하여 푸짐한 잔치를 준비했던 인디포럼2005는 그런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올해 인디포럼에서 상영된 29편의 신작들은 한결같이 ‘실험’이라는 수식어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디포럼2005의 신작 중에서, 이런 경향을 좀더 확실하게 증명할 만한 네편의 영화와 그 감독들을 골랐다. 일방적인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민이 영화적 재현 자체에 대한 고찰까지 이어진 박홍렬·황다은 감독의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제는 말장난에 불과해져버린 ‘작가의 죽음’을 영화에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 김계중 감독의 <해성프로젝트>,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사건을 윤리적으로 말하기 위해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 민제휘 감독의 <실종자들>, 그리고 미니멀리즘과 팝아트, 보드리야르의 개념까지 끌어들여 공간을 재구성한 김자연 감독의 <유니언>. 모두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극영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구분이 무색한 작품들이다. 때로 설익은 치기를 풍길지언정 익숙하고 평범한 안정에는 추호의 관심도 두지 않는 용감무쌍한 이들을 통해, 미래의 영화를 점쳐보자.

“하나하나 사유하게 하려고 기본문법을 버렸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의 박홍렬·황다은 감독

17대 국회의원 선거 마포갑 지역 사회당 후보 조영권이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한다. “이번 선거에는 3등이 목표지만 5년 뒤에는 당선할 거야. 보살님을 믿어야지.” 카메라를 든 박홍렬 감독의 목소리가 화면을 파고든다. “국회의원 선거 4년마다 있는데.” 인디포럼2005 개막작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는 다큐에 대한 통념을 산산이 부순다. 사적 다큐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2000년대 독립다큐의 경향을 감안해도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가 보여주는 내용과 형식의 자유분방함은 신선하다. 35mm·16mm·6mm디지털을 아우르는 다양한 카메라 포맷의 사용, <100분 토론> 같은 공중파 방송 편집본에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뒤섞는 의도적 희화화, 극영화를 차용한 판타지의 삽입 등을 통해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는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정치적 액티비즘 중심의 전통적 다큐의 경직성에 대해 비딱하게 문제제기한다. 10년지기인 감독과 촬영대상간의 거침없는 대화는 웬만한 코미디영화 못지않게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영화 속에서 조영권 후보가 자기소개 중에 빈번히 웃음을 참지 못해 NG를 내듯이. 그리고 그 장면은 주위 사람들의 응원소리와 연기지도가 덧붙여져 고스란히 영화에 포함됐다.

<영화와 정치>라는 원제목은 7개월간의 편집을 시작하면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 대한 미셸 푸코의 사유를 빌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로 변경됐다. 이 제목은 역설이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는 박홍렬·황다은 감독의 표현처럼 “이것은 다큐멘터리다”라는 선언의 비틀기다. 두 감독의 전언에 의하면 이 영화는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를 강요하는 정치적 액티비즘 중심인 독립다큐의 의미와 영역의 확장”을 꾀한다.

<상암동 월드컵>을 끝낸 박홍렬 감독은 한동안 자괴감에 괴로워했다. 치열하게 투쟁하는 촬영대상과 달리 자신은 그저 관찰자에 불과하다는 생각. 그로부터 비롯되는 이질감이나 인간관계의 한계로 인해 그는 낙담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다음 작품은 자신이 잘 아는 관계에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10년을 알고 지낸 친구 영권을 위해 기념영상물을 만들려던 차, 마침 영권이 국회의원에 출마한다. 선전영상물을 찍어달라는 영권에게 박 감독은 그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이를 승낙한다. 영권과 홍렬의 또 다른 친구이자 현재는 드라마작가인 황다은 감독이 합류하고, 두 사람은 친구를 다루지만 “관계를 이야기하는 가장 정치적인 영화”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촬영을 시작한다. 독립다큐를 만들면서 충무로 촬영부로 활동했고, 독립영화계 기술 워크숍을 도맡아온 박 감독은 단선적인 다큐의 방법론을 피하기 위해 각종 카메라 포맷을 대거 동원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최대 카메라가 5대 동원된 장면이 대미를 장식하는 희귀한 독립다큐멘터리와 만나게 된다. 이를 통해 내용적으로는 영화에 대한 영화를 이야기하는 지점도 생겨난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레이 카드(촬영의 기준이 되는 회색 카드)와 C스탠드(가장 많이 쓰이는 조명 스탠드)를 카메라에 들이대며 촬영스탭, 감독, 영권이 벌이는 승강이는 이 작품의 공격적인 미학을 직접 드러낸다. 황 감독은 “콜라와 그레이 카드에 대한 언어유희가 포함된 설정극이 마지막까지 고민스러웠다”며 영화 전체의 맥락없이 단편적으로만 이 부분을 읽지 않기를 당부했다. 두 감독은 “연속되는 컷마다 혹은 카메라의 포맷별로 하나하나 사유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내러티브와 감정을 중심으로 관객이 영화의 흐름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다큐의 기본 문법을 과감히 포기한다. 반복되는 영상들에 미세한 차이와 의미를 부여한 촬영과 후반작업은 무수한 편집 버전을 낳았다. 다양한 판타지와 언어유희로 버무려진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는 인디포럼 상영본이 마지막 편집본이 될 전망이다. 박 감독은 “지금 편집본은 너무 정리되어 있다. 초기에는 파편화되고 무질서한 이야기를 생각했다”며 손을 턴 지금도 사유를 넓히는 방법론을 고민했다.

한편 10년을 촬영한 영권에 대한 영상들과 그에 대한 인간적 이해, 16대 총선부터 사회당 후보들을 찍어온 이력 같은 사적·감정적 지점들을 두 감독은 “영권이의 정치 이야기와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이라며 철저히 배제했다. 처절하게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장면이나 내밀한 개인사를 포착했던 테이크들은 편집에서 대부분 삭제되었다. 황 감독은 이를 “의식적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 않도록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 믿는 것과 믿어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그들의 정치적 언어가 관객과 만나 어떤 “다큐멘터리의 낯설게 하기”를 빚어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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