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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 3세의 한일 줄넘기, 노란 구미의 <한국 일본 이야기>

내가 처음 ‘구미’를 보게 된 것은, 어느 포털 사이트의 만화 코너로 기억한다. 인터넷 만화 붐에 따라 여기저기에서 중구난방 끌어모은 콘텐츠 속에서 아마추어 공모전의 수상작 코너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에 온 일본인 유학생’인 구미의 만화는 수상작들 중에서 기술적으로는 가장 숙련되지 않았지만, 다른 만화에서는 찾기 어려운 발랄한 유머 감각과 독특한 생활의 맛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역시 아마추어에 불과했던 구미에게 관심이 갔던 것은 솔직히 만화 너머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었다. 이 친구는 왜 한국으로 유학을 왔을까? 한국어나 한국사도 아니고, 디자인을 배우러.

한참 뒤에야 구미의 유학 만화가 연재되는 사이트(koomi.net)를 찾을 수 있었고, 나의 의문도 하나둘 풀려갔다. “제 이름은 구미입니다. 대구시 주변에 있는 구미시 주변의 구미. 마이구미의 구미입니다.” 그녀는 만화 속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는데, 거기에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3세로서 차별의 시선을 받아온 이름이 한국에서도 별로 평범한 이름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데서 나온 반발심이 자리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한국행도, 그녀의 색다른 시선들도 모두 여기에서 온 것이었다.

구미의 ‘유학 만화’는 <새댁 요코 짱의 한국살이>처럼 일본인의 시선에서 한국 문화를 발견하는 이문화 충돌의 재미에서 출발한다. 구미가 일본에서 왔다니 일본 애니메이션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나 ‘한국인은 김밥을 정말 좋아하나봐요’라며 대학교 체육대회에서 김밥 매스게임을 하는 예를 들어 보이는 구미나 악의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여기에 한국의 겨울은 너무 추워 까치가 얼어 떨어진다는 거짓말에도 쉽게 넘어가버리는 구미의 순진한 면모는 가수 아유미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호감과도 연결된다.

그럼에도 한국인 3세라는 독특한 체험을 통해 자라온 구미는 그들과는 다른 깊이의 문제들에도 접근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왕따 체험, 한국에 수학여행 왔을 때 ‘반쪽바리’라고 놀림받던 일, 한국이 경제 위기를 맞았을 때 외화 보내기 운동을 하는 동포들…. 구미는 이런 체험들을 솔직하고도 차분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마음과 펜을 지니고 있다. 처음 초보 유학생으로 출발한 만화는 서서히 어설픔을 떨쳐왔고, 생활과 어울린 개그는 강한 현장성과 더불어 색다른 가치를 만들어왔다. 구미의 작업은 새로운 만화들과 함께 <한국 일본 이야기>(안그라픽스 펴냄)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