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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제국주의의 성공은 수량화의 힘, <수량화 혁명>

서양 제국주의의 성공 비결은 뭘까? 이 책에 따르면 수량화라는 독특한 사고 방식 때문이다. 수량화는 세상을 양화(量化)시켜 파악한다는 뜻이다. 달을 가리켜 지구에서 평균 38만4400km 떨어져 있고 반지름이 지구의 4분의 1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달을 양화시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달을 보며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있는 하얀 쪽배’라고 말하거나,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의 달은 상상력과 의미와 가치 차원의 달이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은 대략 1250년부터 1600년 사이에 시공간과 음악, 미술, 부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량 관계를 중시하는 양적 세계관을 발전시켰다. 특히 1250∼1350년 사이 유럽에 기계 시계, 해도, 원근법, 복식부기 등이 등장했다. 움직임, 빛, 색깔, 열 등을 수량화한 14세기 영국 과학자들은 확실성, 덕성, 우아함 등까지 수량화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무지개는 상상력의 소재가 아니라 그 각도를 계산해야 하는 수량화의 대상이 됐고, 노래도 정확한 계량을 통해 작곡됐으며, 원근법에 따라 정확하게 수량화된 공간이 화폭을 점령했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16세기에 이르러 세계의 다른 어느 문명권보다도 양적으로 사고하는 데 능숙해졌고, 그런 수량화 전통을 물려받아 제국주의를 실천한 첨병들이 바로 지도제작자, 제국을 운영한 관리, 부를 창출하고 관리한 기업가와 은행가, 제국을 확장시킨 군인 등이었다. 정확한 해도를 보고 큰 바다를 건너온 군함이 연안의 수심을 측정하더니, 정확한 탄도 계산을 해서 육지를 향해 대포를 쏜다. 그렇게 무력으로 차지한 식민지에 관리를 파견하고 장사꾼을 보낸다. 관리들이 식민지의 토지를 측량하는 건 당연한 순서다.

유럽 제국주의 성공 비결 연구를 평생의 테마로 잡은 저자의 다른 저작 <생태제국주의>(지식의 풍경 펴냄)에 따르면, 유럽 고유종 동식물이 유럽과 환경 조건이 비슷한 다른 지역으로 이식, 확산됨으로써 유럽인들의 새로운 정착지가 유럽과 비슷한 조건으로 바뀐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 성공 비결의 상당수는 ‘성공했으니까 성공 비결이 된’ 경우들이다. 바꿔 말하면 성공 비결은 자칫하면 성공의 정당화가 되기 쉽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은 그런 정당화와는 거리가 머니 안심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