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위기의 한국영화산업 [4] - 부가판권 시장
김수경 2005-07-14

추락하는 부가판권 시장과 날로 심각해지는 불법동영상 문제

돈 내고 보는 사람만 바보?

한국의 영화 DVD 시장 규모는 1000억원(업계 추산)이다. 불법동영상으로 인한 2004년의 피해금액은 500억원. 단속이 통상 실제 피해의 20%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시장에서 예상되는 불법동영상의 실제 피해액은 2500억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선 극장에서 7천원을 다 내고 영화보는 사람은 바보 취급 받기 십상이다. DVD 대여점에서 빌려보는 사람이나 그걸 소장하려고 사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덧 한국에서는 정품 DVD 타이틀을 사는 것은 ‘아둔하고 무의미한 소비’로 놀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균 10∼15분이면 영화 한편을 다운받을 수 있다. 웹하드, 인터넷 동호회, 와레즈, 뉴스그룹, P2P, 메신저 등 ‘불법과 무법의 멀티플렉스’는 클릭 한번이면 감상은 물론 소장까지 제공한다. 대여기일의 엄수, 유명타이틀 예약 같은 귀찮음은 애당초 없다. 이 상황에 코멘터리와 소장용 부틀렉까지 바란다면 벼락맞을 일이다.

주요 영화산업국 중 한국만이 극장 비중 증가세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펴낸 <세계 영화산업 규모 및 현황 연구>에 따르면 “2003년 기준 전세계 VHS/DVD 시장은 532억달러로 216억달러인 극장시장의 2.5배 수준이며, 지난 5년간 성장률은 11.2%”에 달한다. 대조적으로 “주요 영화산업국 10개국 중 전체 VHS/DVD 시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극장매출 대비 VHS/DVD의 비율이 오르지 않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그 결과 부가판권, 특히 홈비디오 시장은 고사 직전이다. 비디오 대여점 수는 최전성기인 1988년 3만5천개의 20%인 7천개 선에서 발이 묶인 지 5년이 되어간다. VHS와 DVD가 나란히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 표1과 같이, 한국영화는 2000년대 들어 제작투자주체의 매출 중 75% 이상이 극장에 편중된다. 한국영화 부가판권 중 한때 극장매출을 능가하던 홈비디오 시장의 몰락과 DVD 시장의 냉각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인터넷 파일공유 문제다. 쇼박스 정태성 상무는 “렌털 중심의 국내 홈비디오 문화와 3천∼4천원으로 영화를 보는 10∼20대 관객층의 소비행태를 감안하면, 현재 부가판권은 엑스트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영상협회는 “불법 디빅스의 다운로드로 인한 영화산업의 손실액은 2003년 약 300억원, 2004년 약 500억원으로 늘었다. 적발된 불법영상물도 10만560건에서 20만4323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VHS/DVD 시장 몰락의 주범은 불법동영상

원소스 멀티 유즈는 이런 한국영화 시장에서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7월부터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한국영상협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단속과 고발에 나설 방침이다. “불법동영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차피 영화시장의 부가 윈도는 미래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 영화사 대표는 “부가판권이 15% 이하인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출시하지 않는 게 낫다. 차라리 풀지 않고 기다려야 제값을 주고 구매자들이 살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일례로 최근 직배사와 손잡고 DVD출시를 시작한 백두대간의 경우, DVD 출시에 드는 비용도 건지지 못하는 시장 상황 때문에 1년 이상 판권을 창고에 묻어두고 있었다.

한국의 크라이테리언을 꿈꾸던 알토미디어 DVD사업 부문은 지난 1월 스펙트럼 DVD에 양도되었다. 알토미디어 강우선 대표는 “한쪽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전작을 계약하려고 수차례 이탈리아를 오가며 고심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아마존으로 DVD를 구입해 리핑을 하고 수만장을 찍어 뿌려대는 것이 한국 DVD산업의 현주소”라고 비판했다. 알토미디어를 코너로 몰고 간 것은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었다. 이들은 합법적인 계약과정을 거치지 않고, 타이틀을 제작한 뒤 서류를 위조하여 번듯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했다. 이렇게 양산된 저가 타이틀은 삽시간에 시장에 뿌려졌다. 불법 저가 타이틀은 메이저를 제외한 군소 케이블까지 진입하는 대담함을 선보였다. 그 와중에 강 대표가 고소한 회사만도 열개가 넘는다. 소송이 2년간 진행된 뒤 승소해도 그에게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불법동영상 다운로드를 둘러싼 분쟁과 강 대표 사건이 주는 교훈은 “세계최강이라는 국내 인터넷 인프라가 영화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외려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동영상의 불법 다운로드는 부가판권을 고사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예술영화·독립영화·저예산영화의 영역을 먼저 사라지게 할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자국영화의 숨통을 옥죄는 길로 걸어가고 있다.

김의섭 한국영상협회 온라인 단속팀장

“패킷 제공, 다운로드 과금, 업체들이 오히려 부추긴다”

-불법동영상의 온라인 단속일을 처음 시작한 시기는.

=영상협회에 2003년 11월에 온라인 단속팀이 생겼고 개인적으로는 2년쯤 되었다.

-불법 파일 공유에서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네티즌도 네티즌이지만, 인터넷 업체가 이를 상업적으로 조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업로드시에는 패킷을 제공하고, 다운로드시에는 과금을 받는 체계는 업체가 이러한 불법행위를 조장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저작권신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현재는 저작권 위임 상태라서 모든 작품을 단속하지 못하고 위임받은 목록만 단속한다. 신탁이 실현되면 모든 불법동영상의 단속이 가능해진다.

-단속의 어려움을 느낀 순간이 있다면.

=밤새 재택근무로 불법행위를 잡아내고, 해당업체에 연락하여 복제조정 조치를 요구했는데 휴가간다고 거절하던 운영자도 있었다.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많다.

-네티즌과 시스템도 점차 고도화되는 것 같다.

=등록된 우리 ID를 숨겨버리거나 접속할 때마다 유동적인 ID를 사용하는 등의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아마 단속이 심해지면, 다시 무료 웹하드나 당나귀 같은 예전 형태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단속은 더 힘들어진다.

-이러한 숨바꼭질이 해결될 수 있을까.

=유료화로 가닥이 잡히겠지만, 영화는 매체의 특성 때문에 음악 같은 다운로드 방식은 힘들 것이다.

사적 복제 보상제는 무엇인가

공CD, 통신망 등에 일정액 수수료 징수하자!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는 불법동영상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적 복제 보상제를 언급한다. 그는 “독일은 1965년에 사적 복제 보상제도라는 것을 통해 오디오물에 이 개념을 처음 적용했다. 어차피 상업적 목적을 위한 불법복제는 법적 단속에 의해 규제된다. 개인적 복제는 처벌이 어렵기 때문에 공CD, 공비디오 등에 일정액을 부과해서 개인적인 복제로 인해 피해를 입을 분야에 환원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개인적 복제의 상업성을 입증하기 힘든 인터넷 환경을 감안하면 이는 설득력 있는 제안이 될 수 있다.

이 제도는 적용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에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2003년 12월 기준 G7과 EU를 중심으로 25개국에서 실시중이다. 이것은 통상 복제 매체(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공CD, 공DVD 등) 가격의 1∼2%를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금액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영화 저작권 관련제도 및 계약 현황과 개선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이 제도는 1989년부터 검토되었으나 복제기기 산업 종사자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또한 보고서는 한국의 독특한 인터넷 인프라로 인해 발생하는 불법동영상의 다운로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초고속통신망에 사적 복제 보상제를 최초로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단속과 고발이라는 제재의 조치는 늘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사적 복제 보상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 제고라는 측면에서도 검토될 만한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