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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야기 [1] - 로봇, 추억하거나 상상하거나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로봇, 그들의 현재를 만나다

외계인, 좀비, 그리고 로봇…. 이 이름의 임자들은 언제나 책장 너머, 스크린 너머에서 아리송한 눈길로 이쪽 결계를 응시한다. 3차원이자 이승이자 현실에 갇힌 우리는, 외계인에게서 태양계 제3행성 너머 우주를, 좀비에게서 삶 너머 죽음을, 로봇에게서 영원과 미래 저 너머를 환기한다. 이 공상의 산물들로 두려움에 저린 오금을 펴며 극장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한 적이 있는지? 아, 여기가 무사히 여기구나.

지난 5월 젊은 작가들의 기계에 대한 상상력 보고서 <하드코어 머신 전>의 기획자 김노암 관장(아트 스페이스 휴)은 감성의 대체물로서의 기계, 로봇의 의미를 어떻게 확장하고 이해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서 이 전시를 발상하게 됐다고 한다.

“지금의 30∼40대들이 성장하면서 봐왔던 로봇류들, 그 어린 시절의 감수성이 지금 우리 의식에 어떤 풍경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막상은 성기인형처럼 포르노 산업에서부터 로봇이 우리에게 접근해오고 있죠. 로봇이 아니라 머신, 그러니까 기계로 이 전시의 컨셉을 확장했던 이유는 이렇게 로봇에 관한 제한적인 관념을 넘어설 수 있는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로봇의 의미는 무한으로 확장될 수 있다. 공장의 기계는 물론이고 상하수 시스템을 가진 집, 거대한 주행의 흐름으로 도시의 전선을 이루고 있는 도로까지. 로봇을 다만 불알친구로 추억하고 있다면, 이젠 배우자로, 동료로, 내 아이로 상상해보자. 당신의 상상이 조물조물 로봇의 형상을 다듬을 것이다.

서인도제도에 좀비가 진짜 있는지 믿거나 말거나 취향대로 선택할 문제이겠지만, 로봇은 다르다. 로봇이라는 상상의 산물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이쪽 결계로 걸어들어오고 있다. <A.I.>에서 죽은 계모를 기다리며 천년을 버틴 꼬마 휴머노이드가 ‘사랑을 다오’ 하며 죽자고 당신을 스토킹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 로봇> <블레이드 러너>에서처럼 진지하게 소통할 이라곤 로봇밖에 없는 세상에서 내가 로봇의 꿈을 꾸는 건지 로봇이 내 꿈을 꾸는 건지 헷갈려도 답은 없다. 이제 문제없이 두발로 걷고 덤블링하는 로봇과 집집마다 알아서 청소해주는 로봇청소기가 상용화를 눈앞에 둔 마당에 ‘로봇’ 하면 추억 삼아 아톰만 꺼내드는 것으로는 안 될 일이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느냐가 이제 로봇의 미래가 될 수 있는 마당에, 로봇에 관한 상상력이 <공각기동대>에서처럼 스스로 진화하는 기계생명체까지 고안해내고 있는 이 마당에.

로봇에 대한 오래된 열망-로봇박물관

로봇박물관

“홍길동이 쓰고 있는 초립은 UFO와 같은 모양이다. 이는 공간에서 다차원적으로 가장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설계되었으며, (…) 1백년 전 온통 갓으로 덮인 서울 거리는 분명 효시적인 SF 퍼포먼스였다.” - <앤티크 로봇>(백성현 지음/ 인서울 펴냄) 중에서

로봇박물관에 모여 있는 3500여점의 로봇 중 가장 오래된 로봇은 1900∼1910년대 오스트리아의 틴맨이다. 태엽을 감으면 걷는 이 로봇은, 그러니까 장난감이다. 로봇박물관이 생각하는 로봇은 꿈의 소품들이다. 이 박물관에서는 홍길동의 초립이 UFO가 될 수 있듯 피노키오도 목각 로봇이 되고, 잔다르크는 최초의 여성로봇 ‘마리아’의 원형이 된다. 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유명한 황금분할도를 그리면서 인체의 구도를 응용하면 얼마든지 사람처럼 움직이는 기계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로봇에 관한 최초의 상상은 생명없는 물체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무한동력으로 움직이는 이 기계장치류는, 죽은 연인을 되살리기 위해 시체토막을 이어붙여 가장 구체적인 관절을 가진 인조인간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냈던 절박함부터, 재떨이, 얼음분쇄기 등 인류 일상의 순간들까지를 자잘한 기쁨으로 채워왔다.

그렇다면 로봇박물관의 소장품 중 가장 비싼 로봇은 무엇일까? 1955년 일본에서 만들어졌던 메고맨 (Mego Man)은 2000년 뉴욕 경매에서 무려 7만달러에 낙찰됐다. 역시나 주먹만한 태엽장치 장난감일 뿐이지만, 밀짚모자에 자명종을 달고 바퀴로 걷는 모습이 당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도록 특이하고 예술적으로 가치있었기 때문이라는데….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손때를 탔을 낯설거나 친숙한 로봇들에게서 어떤 추억을 상기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늙었거나, 아직 젊다.

▶매일 오전 10∼8시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문의: www.robotmuseum.co.kr, 02-741-8861∼2

아톰을 현실로-로봇공장 유진로보틱스

청소로봇 아이클레보

홈로봇

가산동의 유진로보틱스 연구개발 사무실로 들어서면 대여섯개의 섹션이 나눠져 있다. 섹션마다 청소로봇, 홈로봇, 휴머노이드로봇들의 내장을 주섬주섬 연구자들이 들여다보고 있다. 스무명 남짓의 연구원들은 로봇공학부터, 제어기측, 전자공학, 프로그래밍, 기계공학 등 전공분야도 다양하다. 이는 마치 종합병원에서 수술 전에 각 분야 전문 의사들이 모여 한 환자 몸의 각종 시스템들을 점검하는 모양과 닮았다. 아톰은 한명의 아빠만 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장만으로 살 수 없듯이 로봇의 몸에도 전기가 돌고, 관절이 움직이고, 센서가 대상을 파악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로봇을 만들어내는 데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있어요. 서로 전공분야가 다른 연구실 사람들도 그렇지만, 우리 회사는 판매도 목적으로 하다보니 다른 부서와의 소통도 중요하죠. 영업부, 마케팅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하여튼, 공통적으로 로봇에 미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죠.”

홍보팀 이윤희 대리는 유진로보틱스가 국내에서 드물게 독자적인 자본으로 퍼스널로봇의 상용화를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기업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상용화란 안전해야 하고, 싸야 하며, 성능이 좋아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유일한 청소로봇 아이클레보의 경우 카펫청소에 유리한 미국의 룸바 등 해외 청소로봇과 달리 마루형 바닥의 미세먼지를 잘 잡아내는 것이 특장기이다. 2004년 집 지켜주는 로봇 아이로비 역시 억대에 달하는 거창한 해외 로봇을 제치고 최초로 상용화한 로봇으로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유진로보틱스 사무실의 아이디어 회의장면은 만화만큼 재미있다. 아톰처럼 이족보행을 하는 로봇을 많은 이들의 품에 안겨주자는 꿈으로 트랜스봇을 만들기는 했는데, 어떻게 이것을 가지고 놀지가 고민이었다고. ‘두개의 트랜스봇이 레이저를 발사하는 거야.’ ‘싸우다가 지는 쪽은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는 전자음을 내면서 변신을 하자. 뭘로 할까?’ ‘에너지 레벨이 낮으니까, 자동차로 변신해버리자.’ 그리고 이들은 그러한 제품을 눈앞에 만들어 보였다.

“하지만 역시 SF영화들을 너무 많이 봐서 기대가 높으세요. 아직 로봇기술이 그 정도는 아닌데, 그래서 기업쪽에서는 그 차이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관건이긴 한데… 그러려면 SF영화가 더 나오면 안 되죠.”

아톰과 태권브이를 보고 자란 로봇광들이 SF영화와 경쟁하고 있다. 스크린 이쪽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