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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야기 [2] -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

내 환상은 여기서 삽니다

종이 로봇을 만드는 김도영씨

그는 15년간 오직 하나의 이야기만 써오고 있다. 제목은 <신왕기동전>. 이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워낙 방대해져 때론 자신도 헷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생명체들은 자꾸자꾸 현실로 넘어온다. 그의 손끝을 통해, 종이 로봇으로 말이다.

“아주 어렸을 때요, 당시에도 로봇 장난감이 싼 건 아니었죠. 갖고 싶은 건 너무 비싸고, 손에 있는 건 스케치북, 신문 그런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맨 처음 만든 게 독수리 5형제 비행기였어요. 장난감도 썩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박스에 있는 그림 보고 만들었지요.”

메칸더 V와 철인 28호 등 좋아하는 로봇을 짜깁기해서 만들었던 최초의 김도영표 종이 로봇은 친구들과 함께 가지고 놀기 좋았다. 꼬맹이들의 찬사를 받으며 하나씩하나씩 만들기 시작해 15년간 키워오던 그의 공상과 그 결과물들이 올 1월 방송에 보도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딸한테 선물하고 싶다고 가르쳐달라는 아버지는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지만, 그가 그린 도면을 자기 것인 양 도용하고 이름값을 날리려는 사람, 그의 로봇 사진을 불법으로 퍼서 마구 퍼뜨리는 사람들을 통해 그는 자신만의 상상의 영토를 방어하는 새로운 기술을 터득해야 했다.

“저한테 줄 만한 사람이 없어요. 받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자기 밑천을 공개하지 않죠. 그냥 만들어보고 싶다는 정도의 분들이 많지만, 종이접기는 저만의 세계예요. 나만 알고 있는 걸 만들 수 있는 거죠. 다른 사람이 내 행세를 하고 그 물건을 판다고 하고, 또 그걸 사겠다는 사람들이 나서는데 충격이었죠.”

그에게 로봇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감이 없다는 데 있다. 사람보다 훨씬 작거나, 훨씬 큰 크기간 비례감도 그렇거니와, 전자레인지 안에 넣고 사진을 찍으면 마치 공장 안에서 막 만들어진 로봇의 웅장함과 기괴함을 숏으로 잡을 수 있다는 데에서도 그렇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대형 휴머노이드는 효율상 지구상에 실제 등장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고 보면, 그의 이야기는 15년을 훌쩍 넘어 아무런 방해없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것이다. 두 다리로 서는 로봇을 만드느라 애를 먹었던 고충은 진작에 넘었으니, 이제 그의 절대 신조대로 가위를 쓰지 않고 오로지 종이접기만을 통해 만들어지는 로봇의 관절이 다음 과제다.

“가장 기뻤을 때요? 도깨비 같다, 귀신 같다 핀잔주시던 할머니가 제가 만든 네오드래곤을 보시고는 용꿈 꾸겠다 하셨을 때예요.”

이쯤 되고보면, 김도영작 <신왕기동전>의 다음 이야기는 할머니의 꿈으로 들어간 네오드래곤의 모험담이 되지 말라는 법, 또 어딨겠는가?

나는 못 날아도 내 애조가 저기서 날잖아요

로봇새 사이버드 만든 박운용씨

로봇에 대한 인류의 소망은 단지 ‘사람처럼’에만 있지 않다. ‘생체모방형 로봇’은 곤충, 새, 동물의 움직임을 기체에 실현하고자 하는 오랜 시도들을 지칭한다. 저 새는 어떻게 날까? 새가 새라서 나는 것일 뿐이라 답한다면 그저 가던 길이나 마저 가는 게 상책이다. 박운용 대표(스카이텍 인터내셔널)에게 이 질문을 중하게 여길 줄 아는 이는 누구나 그의 고객일 수 있다. 3년의 연구기간 끝에 나온 ‘세계 최초’로 날갯짓하는 로봇새 ‘사이버드’가 있기 때문이다.

“로보트 태권브이는 누구나 생각하는 열망이죠. 하지만, 로보트 태권브이도 걷거나 뛰기는 해도 날지는 않아요. 사이버드의 기술을 응용한다면 나는 태권브이도 만들 수 있어요. 어렵지 않지요.”

그렇다면 오랜 공방을 깨고, 로보트 태권브이가 마징가 Z를 무찌를 날도 머지않았다.

비행체 연구는 이제껏 주로 헬리콥터식 비행에만 국한되어왔다. 날갯짓(flapping)은 세계적으로 정립된 이론도 사례도 전무했기 때문에 사이버드를 개발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원리를 반대로 생각해야만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새는 관절운동을 통해 공기를 긁어모아 추력을 얻지만 관절이 없는 사이버드는 밀어내면서 추력을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안전과 가격을 고려하는 개발에만 1년이 더 걸렸다.

“어른은 물론이고 네살배기들도 안전하게 날릴 수 있는 게 사이버드죠.”

그렇다고 사이버드의 날갯짓에 황홀해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전국 동호회 3개와 동호인 700명에 이르고 이들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종종 ‘바람에 밀려 강에 빠뜨렸다’는 글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 아래에는 굴비 두름 엮이듯 ‘묵념’, ‘애도를 표합니다’하는 리플들이 달린다. 박운용 대표 역시 사이버드를 날리면서 마치 자신이 날고, 활공하는 듯이 느낀다.

사이버드의 날갯짓의 활용도는 앞으로 무궁무진하다. 고가의 배터리를 장착하게 되면 장시간 비행이 가능하므로 서울에서 인천까지 메신저로 활용할 수 있으며, 카메라를 장착하고 상공 200m까지 날리면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지역의 관측도 가능하다. 사람에게 장착하면 일종의 날갯짓하는 행글라이더가 될 것이며, 초소형으로 만들면 팅커벨이나 잠자리 등 앙증맞은 완구용품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당장 이 사이버드를 만지면서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비행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 나가 아이들과 날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아이들이 그래요. ‘이거 처음 한동안 혼자 날면 안 돼요?’ 날리자마자 조종기 잡는 데 마음이 급하니까 아이들이 투덜대는 거죠. ‘이거 밤에도 날리면 안 돼요?’ 이런 질문들을 들으면 사이버드는 진화하죠. 처음 날리자마자 약 10초간 수직상승하도록 개발하고, 날개에서 불이 나도록 만들죠.”

그는 무엇보다 ‘세계 최초’라는 말에 매력을 느낀다. 그의 ‘세계 최초’는 바로 이 아이들이 난생처음 던지는 질문들에서부터다.

"우리는 인간의 삶 깁숙한 곳에 들어갈 거다"

로봇새 ‘사이버드’와 청소로봇 아이클레보 가상 인터뷰

이 만남은 가상차원문 *** 문턱에서 문짝을 붙들고 이루어졌다. 이 문은 3천년에 한번씩 저쪽 차원의 환기를 위해 오직 3분 동안 열렸다 닫히기 때문에 인터뷰는 짧은 시간 동안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했다. 통역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도왔다(참고사항: “끼리릭” 사이버드의 날갯짓 소리, “우우웅” 아이클레보의 모터소리).

사이버드: (주파수 맞추는 소리) 끼리릭 끼리리리릭 우우우웅 치지지지지지지지 바아안… 가압… 다. 여러분. 나는 로봇새 사이버드, 이쪽은 로봇청소기 아이클레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는데 까마귀떼들이 자기네 영공 지나간다고 어찌나 따라붙는지 따돌리느라 힘 다 뺐다. 내 날갯짓 소리가 지들 말이랑 같다면서, 어디 사투리냐고 자꾸 쪼아댄다. 어떻게 따돌렸냐고? 사이버드는 까마귀보다 활공을 잘한다. 날갯짓을 멈추고 떨어질 때 까마귀는 뱅글뱅글 옆으로만 돌면서 떨어지지만 사이버드는 아래위로 돌면서 떨어질 줄 안다. 일명 트위스트 기술이다. 아, 이 친구? (아이클레보를 가리키며) 수줍음이 많아서 말을 잘 안 한다. 가끔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말동무 삼아 “얘야, 오늘은 어느 방을 청소할까? 작은방을 청소해도 되겠니?” 물어온다는데 몹시 쑥스럽단다. 침대 밑이나 소파 밑처럼 인간 손이 잘 안 닿는 곳의 묵은 먼지 청소가 특기로 알려져 있는데, 그게 다 그렇게 수줍음 타느라 자꾸 기어들어가 숨어 그런 거다.

아이클레보: 우우웅.

사이버드: 응? 아, 부탁이 있단다. 먼지를 알아서 찾아가 청소하는 것은 아직 능력 밖의 일이란다. 그러니까 부디, 청소가 느리다고, 먼지는 이쪽에 있는데 저쪽서만 왔다갔다하는 걸로 보인다고 구박 말아달란다. 자기 하는 거 쳐다보지 않고 할 일 하고 있으면 금방 다 치워준단다. (아이클레보가 옆구리를 찌르자) 아, 나도 내 말 좀 하자. 난 여러 분야의 인간들과 협업하게 될 것이다.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날고 내리는 데 방해되는 새들을 쫓을 것이다. 대포 300대로 안 되는 일도 내가 하면 된다. 국군 아저씨들하고는 시찰하는 게 재밌고, 기상청에서는 어디에 구름이 몰렸나 나를 높이 날릴 것이다. 때론, 자폐아들이 밖으로 나와 나를 날리면서 영혼의 건강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기쁨은, 내가 날면 지칠 줄 모르고 나를 쫓으며 황홀해하는 애들 표정이다. 다 나만 봐. 히히. (헛기침)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3천년 뒤에나 다시 얘기할 수 있을 거니까 지금 말하지 않으면 3천년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있어도 3천년 뒤에 당신들은 없을 테니까. 지금이 유일한 기회일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발 좀….

아이클레보: 우우웅.

사이버드: 문 닫힌다. 3천년 뒤 너희 먼 아이들한테 말할 버전으로 바꿔야… 끼리리리리리리릭 우우웅우웅 치지지지지지…. (문 닫힌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