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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에 대한 예의, <제이미 스쿨 디너>

지난 7월7일에 첫 방송된 <제이미 스쿨 디너>를 보니, 열악한 영국의 급식 환경을 개선하려는 세계적인 요리사의 좌충우돌 스토리가 한창이었다. 최고급 레스토랑 운영자이자 요리 프로그램 인기 진행자인 제이미가 영국 요크셔의 한 초등학교 식당에서 해내야 하는 과제는 실로 국가적인 차원의 것이다. 첫째, 학생 한명당 한끼에 37펜스를 넘지 말아야 하는 재료비 규정을 엄수해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할 것. 둘째, 햄버거와 냉동감자튀김, 냉동피자가 주를 이루는 기존 식단을 ‘치킨 캐서롤’이나 ‘호박 포카치아’처럼 영양가 있는 ‘요리’로 채울 것.

“학교 식당에 신선한 재료는 없고 냉동박스만 있다”며 놀라고, “이렇게 형편없는 재료비로는 아무런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투덜대던 제이미는 곧 더 큰 난관에 부딪힌다. 아이들이 자신이 애써 만든 요리 대신 늘 먹던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제이미는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입맛을 바꾸기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정 좋은 음식이란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판이다.

영국 <채널4>의 이 독특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현지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모으면서 ‘학교 급식 개선’에 대한 영국인들의 대대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의 제대로 먹을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학부모와 관련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결국 영국 정부는 학급 급식 교육 예산을 늘리고 학생 한명당 급식 재료비를 2파운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제이미 올리버가 없는 한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나는 보았다. 값싼 소시지 부침과 양념이라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콩나물 무침, 정체불명의 멀건 국물이 전형적인 ‘군대 식판’ 위에 어설프게 얹혀 있는 모습을. 식당도 없는 그 학교에선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방금 전까지 북새통을 이루던 먼지 뿌연 교실에 ‘밥차’가 하나씩 배달되고, 배식 당번을 맡은 아이들이 뜨거운 국 국물을 아슬아슬 퍼담고 있었다. 식당이 있어도 상황은 더 나을 것이 없는 듯하다. 취재 중 만난 한 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식당으로 달음박질해 선착순으로 밥을 먹는 아이들을 보면 한끼 밥마저 ‘생존경쟁’이 되어야 하는가 싶어 가슴아프다”고 했다. 영양 만점인 급식을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자유, 점심 한끼만큼은 아이 부모의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평등은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 셰익스피어가 있는 영국을 부러워한 적 없는 나는, 제이미 올리버가 있는 영국을 질투하면서 몸서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