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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노 아브라 전 페사로 집행위원장
글·사진 김은정(로마 통신원) 2005-07-21

“첫 한국영화 특별전은 흥미와 혼란 그 자체였다”

아드리아노 아브라 전 페사로 집행위원장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영화제를 꾸렸고, 1992년 당시 한국영화특별전을 기획한 인물이다. 현재 로마2대학에서 이탈리아 영화역사를 가르치면서, <이탈리아 영화역사전집>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올해 10주년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명예위원으로 초대되기도 했다. 다시 한국을 방문하게 돼 가슴이 들뜬다는 그를 만나, 92년 당시 한국영화특별전 기획 과정과 한국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물었다.

-당신은 1992년 한국영화를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첫 인물이다.

=1980년대 말, 프랑스 낭트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을 보았다. 그렇게 수준 높은 영화감독이 있다면, 그를 만들어낸 영화적 토대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때부터 한국영화에 관심을 두었다. 페사로영화제는 좌익의 길을 걸어왔다. 91년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나는 ‘남북한 영화제를 동시에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북한에선 좋다고 했고, 남한에선 안 된다고 했다. 예상과는 반대되는 반응에 무척 놀랐다. 북한영화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던 나는 남한부터 시작하자고 결심하고 한국을 방문했다. 영화진흥공사와 국립영화연구소를 찾아가, 많은 영화를 보았다. 그때 5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의 영화 중 30여편을 들고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92년 한국영화특별전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실망’ 그 자체였다. 흥미와 혼란의 영화제였다. 관객은 훨씬 현대적인 영화들을 기대했던 것이다.

-당시 재미난 일화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상영작 중에는 임권택, 배창호, 신상옥 등의 영화들뿐 아니라 <장산곶매>도 포함돼 있었다. 영화진흥공사쪽에서 그 사실을 알고는, 이런 영화를 해외에서 상영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나왔고, 특별전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영어를 잘했던 배창호 감독이 영화진흥공사와 나를 중재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하고, 간신히 영화제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이 일로 당시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올해 특별전의 주인공인 장선우 감독을 어떻게 보는가.

=95년 부산영화제에서 장선우 감독의 <서울 예수> <우묵배미의 사랑> 등을 보았다. 그의 영화는 구세대와 젊은 세대를 연결하고 있다. 특히 <나쁜 영화>는 놀라웠다. 정말 새로운 영화였다. 모든 면에서 모든 분류에서 유일한 영화이다. 그의 솔직함 때문에 그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다. 그의 영화는 매 작품이 다르다. 내가 보기에 <꽃잎>은 한국 관객과 만나기 위해 만든 것 같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처럼 유럽 관객에겐 생경해서 설명이 필요한 작품들도 있다. 내가 가진 그에 대한 느낌은 ‘그는 한국인이다!’라는 것이다.

-한국의 누벨바그는 누구라고 보는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96년 한국에서 보았다. 누벨바그의 대표는 홍상수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임권택 감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국제적인 감독으로 한국영화를 대표하면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하는 감독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사랑받고 있는 감독인데 나에게는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예술영화를 하기 위해 꾸미는 것처럼 보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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