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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만화 즐기기
이다혜 2005-07-22

화제의 포털 만화 6 - <다세포 소녀> <위대한 캣츠비> <타이밍> <아이가 필요해> <1001> <라스베가스 디스코 익스프레스>

새로운 매체의 출현은 새로운 창작 방식을 만들어낸다. 인터넷 만화 서비스는 초기에 기존 종이책으로 출간된 만화를 인터넷으로 보는 형태에서 ‘인터넷으로 봐야 재미있는’ 형식을 발견했다. 스크롤하는 스릴, 스크롤하는 즐거움. ‘모르면 네티즌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다세포 소녀>와 <아파트>는 영화화가 결정된 인터넷 만화의 지존. 다음과 파란닷컴과 같은 포털에서 주로 만날 수 있는 인터넷 만화의 세계에 입문하면 메가톤급 즐거움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오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본문에 소개한 <위대한 캣츠비> <타이밍> <아이가 필요해>는 다음 만화(http://cartoon.media.daum.net) 페이지에서, <1001> <라스베가스 디스코 익스프레스>는 파란닷컴의 웹툰 서비스(http://game.paran.com) 페이지에서, 그리고 <다세포 소녀>는 다세포 소녀 홈페이지(http://www.dasepo.com)에서 볼 수 있다. 물론, 해당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 만화 연재 게시판에는 기발한 만화의 금광이 묻혀 있다는 점을 명심할 것. 스크롤하라, 그러면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다세포 소녀> (B급달궁)

만화판 <몽정기>라고나 할까

http://www.dasepo.com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이재용 감독이 영화화를 결정한 <다세포 소녀> 홈페이지에는 19세 미만은 돌아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다세포 소녀>는 파스텔톤의 옅은 채색나 몇몇 등장인물의 얼굴을 보면 순정만화 같고, ‘북북’, ‘퍼억’과 같은 의성어를 휘갈겨쓴 조악한 글씨체와 내용을 보면 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손수 그려 보급하는 만화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한명이 이야기를 끌어간다기보다는 24시간 섹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내녀석들과 그 몽상의 주인공(?)인 계집아이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재미있는 점은, 청소년이 아니라 그 시기를 지난 사람들이 공감하기 쉬운 내용이라는 것. 새로 온 영어선생이 실생활에서 많이 쓰인다며 가르치는 말이 “Oh, please~ really hurts!!!!!!!! Don’t hit me, Boss!!!!!!!!!!”(오, 제발~ 아파요! 때리지 마세요!!!)라거나 “Oh, please~ Give me my pay!!!!!!!!!!!!!”(오, 제발~ 제 월급 주세요!!!!)라는 대목을 읽으면 KBS2 <폭소클럽>의 블랑카가 연상되는 동시에 대책없이 낄낄거리게 된다. 선생님이 매독에 걸렸다는 말에 여자 반장이 후닥닥 짐을 챙겨 나가면서 남자 부반장을 주먹으로 날리자 녀석이 한다는 말은 “습진인 줄 알고” 그렇게 한명씩 사라진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 이야기는 원조교제를 나갔다가 번번이 변태들을 만나는 여고생의 좌충우돌을 그리는데, 이재용 감독이 가장 관심을 나타낸 이야기라고.

<위대한 캣츠비> (강도하)

사랑에 고민하는 청춘남녀들 모이시오

http://cartoon.media.daum.net

6년간 사귄 여자친구 페리수가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결혼식장에 하고 오라며 넥타이를 선물로 주었다. 26살 백수, 수컷인 캣츠비는 아버지에게서 “초등학교, 대학교 다 나왔으면 수컷 노릇을 해야지… 못쓴다”는 말을 듣는 게 하나 어색하지 않은 나이지만 기대에 걸맞게 살지 못하고 있다. 결혼을 해볼까 하고 결혼정보회사에 가입을 해보았지만 변변히 내세울 게 없는 ‘못쓰는’ 캣츠비는 ‘C급’ 판정을 받고 선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떠났다, 는 데서 시작하는 이야기 <위대한 캣츠비>는 제목이 연상시키는 피츠제럴드의 고전소설 <위대한 개츠비>와 비슷한 듯 사뭇 다른 이야기다. 캣츠비는 ‘그녀’를 얻기 위해 젊음을, 인생을 거는 대서사극을 취하는 대신 날 버린 여자가 내 운명이었는지, 지금 내 곁에 있는, 나를 좋아하는 여자가 내 운명인지를 끊임없이 묻는 루저의 드라마다. <위대한 캣츠비>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캣츠비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독자들. 한편 여자들은 한숨을 내쉰다. 페리수에 감정이입을 하기보다 선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이다. 내 곁에 있는 남자의 눈은 과거를 보고 있다는 괴로움에. 극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중인 <위대한 캣츠비>는 달동네 골목길처럼 얽힌 우리의 마음속을 고스란히 뒤집어 보여준다. <위대한 캣츠비>를 스크롤하면서 당신이 느끼는 것은 추억인가, 배신감인가. 당신은 페리수인가, 캣츠비인가, 선인가, 혹은 하운두인가.

<타이밍> (강풀)

시간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http://cartoon.media.daum.net

교실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리다 조용해지는 순간, 갑자기 정적이 찾아오는 순간을 다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묘한 순간이 실은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어떨까? 흔히 기시감이라고 부르는, 언젠가 한번 겪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일이 생기는 것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사람, 10분을 미리 볼 수 있는 사람, 10초를 되돌릴 수 있는 사람, 미래의 참사를 보는 사람. 시간과 관련된 기묘한 능력을 가진 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뭉치는 이야기, 미스터리 심리썰렁물 2부 <타이밍>이 연재를 시작했다.

미스터리 심리썰렁물 <아파트>의 후속 시리즈인 이 작품은 불과 5화 만에 영화사에서 입질이 온다는 인기 만화가 되었다.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를 아직 예측할 수는 없어도, <아파트>를 통해 독자의 신뢰는 이미 충분히 쌓여 있는 상태. 소시민 사이에 섞여 있는 영웅들, 기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 <타이밍>은 일상에서 느끼는 기이한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해 한편의 이야기로 엮어내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 단행본으로도 발행되었지만, 사실 이 시리즈의 진가는 ‘스크롤’에 있다. 작가가 마치 부비트랩을 심듯 미묘하게 조절한 컷과 컷 사이의 긴장은 스크롤을 통해 극대화된다. 스크롤을 하면 그에 따라 스윽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존재의 모습이라든가, 앞으로의 진행이 궁금해서 읽기보다 스크롤을 먼저 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 강풀의 강점이다.

<라스베가스 디스코 익스프레스> (메가쇼킹)

편견을 낼롬 버려!

http://game.paran.com

착한 청년 정욱은 어느 날,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얻게 된다. 돈이 생긴 정욱이에겐 곧 옴팡지게 섹시한 여자친구도 생겼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는 바로 방대한 스케일의 카드값에 시달리는 신용불량자! 그녀의 빚을 갚아주고자 정욱은 거위를 마취시켜 죽여 배를 가른다. 거위의 뱃속에는 엄청난 양의 금이 있었고, 정욱이는 그녀의 빚을 갚아주고 결혼을 한 뒤 강남에 아파트를 사서 잘 먹고 잘살았다.

염통이 발랑거리는 메가쇼킹의 옴팡지게 재밌는 유머는 이미 어록을 낳고 또 낳으며 잘 알려진 바. 그가 연재하는 <라스베가스 디스코 익스프레스>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시리즈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편견을 낼롬 버려!’라고 할 수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였더니 정말 그 안에 금이 많아서 부자가 되었다든가, 아들 삼형제의 불화를 종식시키기 위해 활 하나를, 그리고는 세개를 부러뜨리라고 한 아버지가 “남자는 힘이다!”라고 해놓고 식은땀을 흘리는 광경은 <라스베가스 디스코 익스프레스>의 세계에서는 낯선 게 아니다. 문제가 발생한다, 주인공은 우리의 예상에 들어맞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결과는 낯설다. 어딘가 틈이 있는 듯한 엉성한 맺음새가 빚어내는 치밀한 웃음. 무엇보다 모든 글을 꼼꼼하게 읽을 것. 오장육부가 따뜻해지는 훈훈한 휴먼스토리라는 설명 아래, “우라지게 추운 겨울날”이라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야기의 결말은 사악한 주인공이 공중변소의 차가운 변기를 따뜻하게 데웠다는 식이다. 옛날 신문에서 보던 네컷만화를 늘여놓은 듯한, 단정하고 균일하게 나뉜 컷이 주는 즐거움은 눈높이가 해발 8000m인 사람이라 해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살떨리게 재미있는 것이다.

<1001> (양영순)

<누들누드> 만화가의 천일야화

http://game.paran.com

성인 만화를 양지로 끌어내는 동시에 여성팬들까지 몸을 배배 꼬게 만든 <누들누드>의 양영순이 파란닷컴에서 연재 중인 <1001>은 <아라비안나이트>를 각색한 작품이다.

샤 리야르 왕의 ‘붉은 정원’은 왕과의 하룻밤 뒤 무고하게 살해당한 처녀들의 피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 밤마다 악몽을 꾸는 그가 죽인 처녀의 수가 1천명에 달하자 왕을 폐위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대장군은 다른 관료들을 말리다가 자신의 큰딸 세라쟈드를 왕의 1001번째 여자로 바치게 된다. 세라쟈드는 최면 상태의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 요법’을 왕에게 시도한다.

일단 양영순의 <1001>은 (에로로서의) 성인물 같은 구석은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다. 다만, 탄탄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이른바 액자식 구성의 이 이야기에는 액자가 아주 많지만, 멋대로 걸려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야기들은 서로 미묘하게 교차되는데, 각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할지 몰라도, 뻔하지는 않다.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있지만, 때로는 왕이 친구의 손에 불타죽기도 하고, 마신의 저주에서 풀려난 사내는 대신 세딸을 잃는다. 마치 독자에게 이야기 요법을 하듯,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어렸을 적 동화책을 넘기느라 잠을 잊었던 때를 고스란히 되돌린다. “같은 한 그루의 나무에서 한쪽 가지에서 꽃이 피면 다른 반대쪽 가지에선 꽃이 지는 나라에”라는 식의 묘사는 그림만 쓱쓱 보면서 스크롤하는 대신 컷과 컷 사이의 공백에서 숨을 참고 긴장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아이가 필요해> (김달님)

교실 밖의 아이에겐, 어떤 일이 있는 거지?

http://cartoon.media.daum.net

김달님의 <아이가 필요해>는 종이 만화의 형식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인터넷 만화에서 멸종해버린 칸 나누기가 아직 살아 있는 동시에, 그 칸을 통합하고 없애면서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캐릭터 상품 매장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깜찍한 그림체와 동화적인 느낌을 주는 달콤한 채색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그와 상반된 것.

시윤은 친구 해주에게서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는다. “뱃속의 아이, 지워버려”라는 말과 함께. 눈앞이 캄캄하다, 시윤은 이제 겨우 18살이니까. 아이 아빠인 우진이 해주와 사귄다는 말을 들은 시윤은 아이를 지우겠다고 마음먹지만 시윤의 귀에 고함소리가 들린다. “그럼 안 돼! 엄마! 엄마!” 귀를 막는 시윤의 앞에 “엄마가 무서워하니까, 귀여운 모습으로”라며 귀여운 인형이 나타난다. 18살 자퇴생,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음. 이제, 예비 미혼모까지…. 이제 시윤의 일상이 이어진다.

교실 밖의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작가는 시윤의 일상을 그저 평범하게 그려 보인다. 몸을 팔거나 아이를 지우는 대신 시윤은 그저 인생을 고민할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뭐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데 시윤의 선생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깻잎냄새나는 곳에서 50분을 버티”는 일은 선생님에게도 고역이다. “하기 싫어! 수업 싫어! 깻잎 싫어!”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할까? 그렇지 않다. 시윤 앞에 선 선생님은 그저 학생 하나 제자리에 앉히려는 ‘어른’일 뿐이고, 시윤은 “내게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니라고!” 속으로 외칠 뿐이다. 우리는 결국, 다른 사람과 소통이라는 걸 할 수 없다. 그걸 깨닫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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