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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진정 더 나은 세계를 위한 길
유재현(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신용호 2005-07-29

평화봉사단(Peace Corp)이라는 조직이 있다. 저개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들을 파견하는 미국의 정부기관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날 때까지 남한에도 적잖은 인력이 평화봉사단의 이름으로 파견되어 활동한 바 있어 우리에게도 귀에 익은 이름이다. 1961년 설립 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동안 평화봉사단은 온갖 추문에 시달려왔다. 그중 가장 교과서적인 것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끄나풀이라는 것이었다.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정권을 붕괴시킨 쿠데타의 전야에 가장 악명을 떨친 파시스트 그룹 중의 하나였던 ‘조국과 자유’(Patria y Libertad)는 CIA의 반아옌데 조직 중 하나였고 이 조직을 직접 이끌었던 인물이 전직 평화봉사단원이었던 마이클 타운리였다. CIA의 아옌데 정권 붕괴작전에는 전직뿐 아니라 칠레 전역에서 봉사(?)하고 있던 현직 평화봉사단원 중 일부도 동원되었다. 평화봉사단의 이같은 활약은 칠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평화봉사단의 깃발이 드리운 곳이면 예외없이 찾아볼 수 있다(남한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화봉사단의 이런 역할에 대해 지나치게 분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점에 대해서 미국은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 냉전이 본격화되던 1961년 설립 당시 평화봉사단 헌장 제1조는 ‘공산주의는 우리의 적이다’라는 문구로 장식되었다. 평화봉사단은 자신들의 헌장에 충실했던 것일 뿐이다. 이 때문인지 냉전의 종식 이후 평화봉사단은 별로 인기가 없어 매년 예산과 파견인원이 줄어들다 뉴욕의 9·11 사태 이후 아들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평화봉사단 규모를 5년 내 두배로 늘리겠다고 밝히면서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평화봉사단의 적이 공산주의에서 테러로 바뀐 셈이다.

미국이 젊은이들의 해외봉사를 이념적,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면 경제적 활용의 사례로는 일본이 단연 앞장서 있다. 전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일본이 동남아에 퍼부은 막대한 원조자금은 고스란히 일본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불어 일본은 패전으로 물거품이 된 대동아공영권을 시장으로 부활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활용한 인적자원 중의 하나가 미국의 평화봉사단을 본떠 1965년 만든 일본해외협력봉사대(JOCV)였다.

2차대전 뒤 이른바 선진국들에 의해 주도된 해외봉사의 역사는 무조건의 봉사였던 적은 없었다. 국가 이익, 이념의 선전, 체제의 우월성, 경제적 침탈, 심지어는 정보 차원의 공작이 언제나 봉사를 우선하는 가치였다. 이 대열에 언제부터인가 남한이 끼어들었다. 1987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설립이 그 시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는 대외원조 금액이 최하위를 달리고 있고, 개발원조위원회(DAC)의 가입국도 아니지만 인력파견만큼은 뒤지지 않아 올해는 1천여명의 봉사단원(KOV)들이 파견된다.

원조를 조금이라도 한다는 나라 중에서 남한은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에서 자유롭다. 오히려 식민지 수탈을 경험한 나라인 것이다. 제국주의적 원죄에서 자유로운 남한은 아마도 지난 반세기 동안 이념적, 정치적, 경제적 오점으로 점철된 해외봉사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남한은 진짜(!) 더 나은 세계(better world)를 향한 국가간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멕시코는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과의 협력관계에서 자금을 앞세우지 않고 지역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국제협력사업들을 효율적으로 벌이고 있다. 다자간이 아닌 양자간 협력에서도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보이고 있는 발전적 협력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남한의 OECD 가입이 별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남한이 경제적 수준에 걸맞지 않게 원조금액에 인색하다는 부자 나라들의 비난 역시 귀담아들을 가치가 없다. 자금과 자본은 국제협력에서 모순을 심화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대외경제협력기금처럼 일본을 흉내내 앞으로 원조하고 뒤로 국내기업들을 동원해 준 돈을 빼내는 따위의 원조보다는 사람을 통해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남한을 떠나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 가는 젊은이들의 건투를 빈다. 봉사가 아닌 협력이 되기를. 국가 이익이 아닌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몫을 다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