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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지성
김규항(출판인) 2000-01-11

밀레니엄의 의미를 적어 달라는 몇몇 원고 청탁에 밀레니엄이란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한몫 잡으려는 장사꾼들이나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현실의 문제를 덮으려는 정치꾼들에게나 필요할 거라는 독설을 채워 보냈다. 21세기가 된다고 파시스트의 뇌가 갑자기 민주주의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고 21세기가 된다고 결식아동에게 갑자기 밥이 생기는 게 아니며 21세기가 된다고 갑자기 예술에 대한 검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밀레니엄이니 21세기니 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나 역시 21세기 도입부는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지난 세기말 내 몸에 침입한 독감균은 여전히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

기억의 범주 안에서 몸이 아파 병원에 가본 일이 한번도 없는 나로선 지난해 독감이 두 번씩이나 내 몸을 점령했다는 사실이 영 개운치 않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식은땀을 흘리며 나는 이제는 사라진 어린 시절의 질병 공포를 떠올린다. 그 시절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필시 무슨 큰병에 걸려 있다는, 나는 이제 곧 죽고 말 거라는 공포에 시달리곤 했다. 그런 공포가 처음 생긴 건 병약했던 어머니 덕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까지 어머니는 늘 위독했다. 다른 조무래기들은 들로 산으로 몰려다니며 그저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면 되던 시절을 나는 위독한 어머니 옆에서 꼬박 보내야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늘 나를 바라보며 녀석 불쌍해서 어쩌나 니 엄마 얼마 못산다, 하곤 했다. 나는 서서히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막연한 공포가 더욱 구체화한 건 4학년 때 옆자리에 앉았던 녀석이 죽고나서부터다. 한동안 자리를 비우던 녀석은 결국 죽었다는 소식으로 돌아왔으며 담임선생은 빈 책상 위에 국화 한 송이를 얹어놓고 디프테리아라는 병을 설명해주었다. 가장 뚜렷한 증세는 목구멍에 하얀 막이 생긴다는 얘기였고 그날부터 나는 틈만 나면 거울 앞에서 입을 벌려 내 목구멍의 이상을 확인하곤 했다. 매일 그 일을 거듭하던 나는 결국 대체 죽음이란 뭔가라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따위의 의문은 초등학교 4학년짜리에게 벅찼지만 해가 바뀌도록 계속되었다.

독감에 점령당한 오늘, 나는 어린 시절의 질병 공포를 떠올리며 과연 내가 암 같은 병에 걸리더라도 현재의 정신세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를테면 민주주의니 파시즘이니 사회주의니 혁명이니 하는 사회개념들은 죽음에 직면한 내 머리 속에서도 여전히 긴장감을 유지할 것인가. 내 경험으론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고교 시절에 노장을 읽기 시작했다는 선배 O는 내가 아는 이들을 통틀어 독보적인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지만 몇년 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그의 지성은 대폭 생략되거나 매우 단순해졌다. 그가 끼고 살던 노장 철학은 그 기간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 발간되는 인문 분야의 교양서를 모조리 챙겨읽는 습관 때문에 교양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후배 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항암 치료를 받으러 들어가던 날 녀석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 부질없어 형. 아이하고나 많이 놀아줘.”

지성이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란 안온한 시절에는 사고의 축이다가 절박함 속에선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그런 것인 것 같다. 그 지성 속엔 분명 죽음을 포함한 모든 절박함이 포함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대개의 사람들, 특히 배운 사람들은 아마도 실제 필요한 양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지성을 갖고 있거나 꼭 필요하지 않은 종류의 지성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배운 사람들은 언제나 제 머리통 속에 수집해놓은 동서고금의 온갖 지성의 부스러기들을 조금씩 내비치면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구별짓곤 하지만 절박함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지성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란 대개 우리의 안온함을 장식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며, 현명한 사람이라면 죽음에 직면해서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지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