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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친구와 남자친구 사이, 토마의 <남자친9>

밍고의 물음은 짧고 분명하다. “헤어진 남자친구 제리와 ‘그냥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눈썹 짙고 팔다리 짧은 3등신의 주인공으로 연애만화를 그린다는 것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만, 그 하나의 멜로디 라인을 변주하면서 독자들을 질리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반복되는 멜로디의 조금씩 틀어지는 부분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그 사소함이 작으면 작을수록 더욱 감격하게 된다.

<남자친9>는 토마의 첫 만화책이지만, 그녀는 이미 <선생님과 나> <크래커> 등의 인터넷 만화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그녀가 보여주는 낙서처럼 가볍지만 정갈한 선, 원색에서 한톤 다운된 부드러운 컬러, 신경쓰지 않은 듯 잘 배치된 패션 소품들과 같은 여러 요소들은 최근의 일러스트레이션 경향과 통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친근하고 예쁜 이미지만으로는 얻어낼 수 없는 공감이 소소한 생활의 묘사로부터 우러나오고, 그로 인해 우리는 좀더 애정어린 눈으로 제리와 밍고의 ‘연애 이후’를 따라가게 된다.

그냥 ‘쿠-울’(cool)한 옛 남자친구와 옛 여자친구. 말은 쉽지만, 누구든 고무줄 끊듯 한순간에 그 상태로 접어들 리가 없다. 안 그런 척하면서 제리의 소개팅에 신경을 쓰는 밍고, 태연한 척하면서 살쪘다는 밍고의 말에 주눅드는 제리. 질투와 서운함과 두근거림과 낯뜨거움이 뒤섞인 주인공들의 모습은 항상 독자들보다 조금 아래의 위치에 놓여져 있다. 그들의 작은 몸집과 어리숙한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숱한 연애만화들처럼 자신들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들이대거나 폭발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심심함이 충분한 빈칸과 더불어 심심한 웃음을 만들어내고, 독자들은 심심하게 웃은 뒤 남은 부분에 자신의 ‘이해’를 채워넣는다.

‘연애 이후’에도 둘에게 감정의 게임을 강요하는 사건들은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 남자처럼 허세를 부리지만 제리를 좋아했던 과거가 부끄러운 쌤과 모범생 스타일의 로맨티스트 진진이 끼어들며, ‘그냥 친구’와 ‘연인’과 ‘남남’의 주사위는 끊임없이 메리-고-라운드한다. 연애도 어지럽지만, 연애 이후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 제리와 밍고는 차차 깨달아간다. 언제까지 빙글빙글 돌고만은 있을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