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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새해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씨네21>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주부터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난에 격주로 글을 쓰게 될 신현준입니다. “와, 신현준이다. 영화배우가 글도 쓰는구나” 하고 좋아하실 분들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 면구스럽습니다. 변변한 직업도, 흔한 박사학위도, 소속된 운동단체도 없는 은둔형 인간이 이 난을 맡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달력 한장 넘어가는 것이 새삼스러운 요즈음 뉴페이스도 아닌 사람이 등장하는 점도 좋은 그림은 아닌 듯합니다.

겸손 떨지 말라구요? 그런 건 아닙니다. 학문적 깊이 있는 연구 업적이 있는 아카데미션도, 비수처럼 꽂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저널리스트도, 그렇다고 아무 글이나 써도 되는 유명인사도 아닌 사람이 여기 글 쓰는 일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을 가립니다. 오죽하면 10매짜리 원고 쓰는 데 사흘째 골머리를 앓고 있겠습니까. <씨네21> 기자들 중 알고 지내던 친구와 후배가 있다는 죄로 이 고생이라니(이때 속으로 드는 생각은 ‘위대한 대한민국, 연줄 만세!’일까요?), 샤브샤브와 국수전골로 향응을 받은 뒤 제의를 받았고, ‘고사’란 것도 할 만한 사람이나 하는 거라는 생각에 사양의 뜻을 ‘완곡히’ 표현했는데 잘 전달이 안 된 모양입니다

이 지면이 그때그때 시평을 쓰는 곳일 텐데, 저는 시류를 따라갈 능력도 없고 솔직히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앗, 들켰다. ‘그래봤자’였다는 자탄의 감정이라니). 이 지면이 글쟁이들의 ‘신변잡기’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잡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것도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럴 능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되는 대로 비틀비틀, 더듬더듬 적어나가겠습니다. 그것도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새해의 다짐 몇 가지를 나열하는 걸로 때울까 합니다. 몇개 분야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에, 그러면 2000년 저의 다짐은….

-정치 분야

1. 총선 때 신문이나 뉴스 보지 않고, 투표하지 않기. 단, 투표하는 사람 말리지 않기.

2. 합당, 분당, 창당, 탈당 등의 용어에 신경쓰지 말기.

3. 8월 범민족대회 즈음해서 한총련 애들이 삽질하면 침묵하지 않기.

4. 남북관계 개선된다고 그럴 때는 국내 정치판 변화에 조금 신경쓰기.

-경제 분야

1. ‘경기회복’되었다고 나의 생활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기.

2. ‘올해 경제정책 최대 역점사항은 물가’라는 말 절대로 믿지 말기.

3. 주식투자에 손대거나 보증서지 말기. 주식 투자로 돈 번 사람 보고 배아파하지 말기(단, ‘진보 지식인’이라면 예외).

-문화·예술·학술 분야

1. 장선우가 감독을 맡은 영화나 한석규가 출연하는 한국영화 안 보기.

2. 박노해나 서갑숙이 쓰는 책 안 사고, 그들이 쓰는 모든 글 안 읽기.

3. 아카데미 내 지식인들 말에 귀 기울이지 않기(이건 ‘제 얼굴에 침뱉기’인가? 모르겠다). 지식인 ‘싸잡아’ 욕하는 말도 마찬가지.

4. 담론 시장의 장기 침체에 미리미리 대책 세워놓기.

-음악 분야

1. 서태지가 컴백한다거나 신해철이 새 음반 발매한다고 해도 신경끊기.

2. 댄스그룹 ‘싸잡아’ 욕하지 말고 옥석을 가리기.

3. 델리 스파이스를 제외한 인디 밴드들 음반들 무조건 좋다고 그러지 않기.

-일상 분야

1. 휴대폰 번호 쓸데없이 011로 바꾸거나 자동차 괜히 바꾸지 말기.

2. PC통신 오래하지 않고, 홈페이지 없애고 지원이 홈페이지 만들어주기.

3. 퍼스널 컴퓨터 괜히 업그레이드한다고 난리치지 말기.

4. <조선일보>에서 원고 청탁 들어오면 ‘위험수당’ 따블로 요구하기.

이런, 주로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있네요. 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누가 물어봤냐’라고 할까봐 말하기 쑥스럽지만, ‘문화산업의 지구적 전개와 한국 대중음악의 시스템 변화’에 관한 논문 쓰기가 있습니다. 아 참. 그리고 2월중에 대만에 온다는 ‘심’의 박수영과 함께 그곳의 인디 심 관련자들을 만나보고 ‘아시아 인디 음악’ 연대가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타진하는 일도 있습니다. 비행기표 구하려면 50만원 모아야 할 텐데(편집장님, 출장비 주시거나 아니면 원고료라도 좀 미리 줄 수 없나요?)

아 참 어떤 분이 저보고 ‘공인’이라고 그러던데(그분의 정의는 ‘1천명 이상이 아는 사람’이더군요. 그런가? 단순하기도 해라). 이건 사인이든 공인이든 개인의 의견입니다. 혹시나 불쾌하거나 같잖더라도 ‘저런 인간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 주시길. 2000년대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여유로운 ‘취향’이 만개하길 바라면서 꾸우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