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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구로키 가즈오의 ‘전쟁 레퀴엠’ 3부작, 도쿄에서 재상영

평화를 외친다, 죽을 때까지

구로키 가즈오

구로키 가즈오(75) 감독의 ‘전쟁 레퀴엠’ 3부작이 9월 초까지 도쿄 이와나미홀 극장에서 재상영됐다. <망국의 이지스>가 히트 중이고, <남자들의 야마토> <나는 너를 위해서만 죽으러 간다> 등 호전적이고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대작 전쟁영화가 줄줄이 개봉 대기 중인 종전 60주년의 일본에서, 한 70대 노장 감독의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는 각별하다.

한국에 그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원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출발한 구로키는 줄곧 ATG(아트 시어터 길드)를 기반으로 독립영화를 만들어왔다. 열광적인 팬들을 낳았던 극영화 데뷔작 <날지 않는 침묵>(1966)에서 전후 일본의 모습을 부감했던 그는, 1988년 <내일>에 이어 15년 만에 <아름다운 여름 키리시마>(2003), <아버지와 산다면>(2004)을 잇따라 내놓으며 전쟁 레퀴엠 3부작을 완성했다.

<내일>은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하루 전 1945년 8월8일의 나가사키를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준다. 한 커플의 결혼식과 참석한 손님들의 하룻동안의 사연이 다음날 아침까지 차례차례 그려진다. 연인들의 이별, 임신한 여성의 슬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 세상에 태어난 아가의 웃는 얼굴…. 사람들은 핵폭탄이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일상이 영원히 계속될 듯 무심하게 살고 있다.

<아름다운 여름 키리시마>와 <아버지와 산다면>은 최근 2년간 각종 시상식의 작품상, 감독상, 연기상을 휩쓸었던 작품들. <아름다운 여름 키리시마>은 감독의 어린 시절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1945년 여름의 남규슈의 키리섬, 동원된 공장에서 친구가 공습에 죽는 걸 내버려뒀다는 죄책감에 자신의 세계로만 틀어박히는 15살 소년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연을 맡은 17살 에모토 다스쿠는 배우 에모토 아키라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산다면>은 동명의 연극을 영화로 옮겼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3년 뒤, 가족과 친구들을 보내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딸 앞에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딸의 연애를 ‘응원’한다. 2인 무대극과 같은 작품에서 딸 역은 미야자와 리에가 맡았다.

<아버지와 산다면>

<아버지와 산다면>

구로키의 전쟁영화는 전투를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냈던 서민의 일상을 통해 전쟁을 이야기한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전쟁 중임에도 전쟁에 대해 무자각,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던 이들을 통해 ‘일상의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일본인들에 대한 경종과 자기비판이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일상을 한순간에 파괴해버리는 전쟁의 잔인함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고발로 보인다. 구로키는 올 들어 평화헌법 9조 개헌을 반대하는 영화인 모임에 참여해 정열적인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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