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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딱하게 보기] 중산층 일상의 악몽, <위기의 주부들>

지난해 미국 드라마 최고의 화제작이 <로스트>와 <위기의 주부들>이란 소식을 들었을 때, 관심이 갔던 것은 전자였다. 낯선 섬에 떨어져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모험극 <로스트>에. 교외에 사는 가정주부들의 일상을 다루는 <위기의 주부들>은 그냥 잘 만든 소프 오페라 정도라고 생각했다. <다이너스티>와 <달라스>의 영광을 재현한 정도가 아닐까, 라고도.

<위기의 주부들>을 4회 정도 보고 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너무나 궁금해서, 순식간에 마지막까지 구해서 다 봤다. 그리고 확신했다. 최근 나온 드라마 중에서는 가히 최고의 드라마라고. 한 가정주부가 자살하고, 친구들이 이유를 밝혀나가는 이야기인 <위기의 주부들>은 일반적인 소프 오페라에 범죄스릴러를 얹은 정도가 아니다. 데이비드 린치가 교외를 중산층의 악몽으로 그려낸다면, <위기의 주부들>은 주부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전투를 <라이언 일병 그리기> 이상의 리얼함으로 묘사한다. 결코 승리할 수 없는, 항복을 받아낼 수도 없는, 그러나 모든 상흔과 장애를 끌어안고 가야만 하는 일상. 처음에는 수수께끼를 밝혀가는 과정이 궁금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더 눈이 갔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것이 더 알고 싶었다.

<위기의 주부들>이 파고드는 것은, 교외의 일상 그 자체다. 그들은 모두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을 비극으로 이끄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가치관이나 태도 때문이다. 기우뚱거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은 자신을 바꾸려고 한다. 뭔가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모두 보수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리네트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반드시 중심이 되어야만 하고, 브리는 행복한 가정이란 이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라도, 그 태도만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결말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회피하고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나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들의 평범한 본성이 그들을 추락시킨다.

결코는 아니지만, 인간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자신은 변할 것이라고 흔히들 말하면서도, 결국은 동일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자신의 자리에 머무르면서,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모래가 되어 빠져나가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로. 인생에서 무언가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하나를 버리면 하나를 얻는다는 것도. <위기의 주부들>은 평범한 이기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비극으로 추락시키는 서늘한 풍경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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