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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려주는 두 여자 이야기, <버진 블루>
김현정 2005-09-09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시간의 너머를 바라보는 작가다. 그녀는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걸이 소녀>와 태피스트리 <여인과 일각수>의 시대로 거슬러올라가, 여인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헝클어져 있던 감정과 사연을 걸작 미술품으로 응축한다. 소실점을 처음 발견한 화가의 시선이 그녀와 같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푸른 바탕 붉은 머리 소녀의 그림이 표지인 <버진 블루>를 보는 이들은 대부분 또 하나의 걸작 아래에서 감정의 그물을 건져올리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슈발리에의 데뷔작인 <버진 블루>는 무명의 성모상과 한장의 푸른 천에 얽힌 이야기다. 또한 불가해한 교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버진 블루>는 중세와 현대가 한장(章)씩 교차하는 소설이다. 어느 날 머리가 붉은색으로 변해버린 이자벨은 종교개혁 시기 프랑스 남부 세벤느에 살았던 위그노 교도다. 그녀는 성모를 부정하는 교리를 믿지만, 청금석을 녹인 성모의 푸른색 옷자락을 볼 때마다, 남몰래 마음의 위안을 얻곤 한다. 그러나 성모상과 닮은 그녀의 붉은 머리는 시댁인 투르니에 집안엔 불길할 뿐이다. 현대의 여인 엘라 터너는 자신의 성이 원래는 프랑스식인 투르니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남편인 릭을 따라 툴루즈 근교 작은 마을 리슬-쉬르-타른으로 이사온 엘라는 미국인을 냉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받다가 가문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투르니에 가문은 몇 백년 전에 스위스로 이주했고, 조상의 이름을 반복해서 쓰는 관습에도 불구하고 이자벨과 그녀의 딸 마리의 이름은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무렵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 엘라는 돌덩이가 떨어지는 듯한 굉음과 버진 블루 빛깔 옷자락이 펄럭이는, 이유없이 가슴이 아픈 악몽을 되풀이해서 꾸기 시작한다.

슈발리에는 창작 수업을 듣던 중 여동생과 동행해 프랑스에 갔고, 슈발리에 집안의 역사에 흥미를 갖게 됐다. 엘라와 달리 옛 프랑스어를 해독해줄 연인이 없었던 슈발리에는 족보 대신 소설의 영감만을 얻어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위그노 교도를 박해한 성 바르톨로뮤 학살, 인신공양 풍습, 니콜라 투르니에의 그림. 이런 것들이 푸른색 소용돌이처럼 녹아들어 누군가 어린 딸아이를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여인의 소원이 되었고, 이자벨과 엘라를 잇는 가늘고 질긴 전파가 되었다.

처음이라 흔들리기는 해도 슈발리에는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문체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문체는 간결하지만, 입술을 깨물면서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듯하여, 조용하게 물결치곤 한다. <버진 블루>에서 그런 특징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건 원하지 않는 삶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중세의 여인쪽이다. 일년에 단 한번 멀리서 눈길을 주고받는 양치기와의 인연이나 버진 블루 헝겊에 절망적으로 매달리는 이자벨의 이야기는 어둡고 조용한 연못 같다. 반대로 엘라는 그녀의 국적처럼 미국적인 편.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재미있지만, 서로 너무 달라서, 왜 한편의 소설로 엮어야만 했을까라는 의구심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