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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우연의 법칙
2001-07-26

디즈니의 <아틀란티스>를 둘러싼 표절 논란

최근 하강국면을 체험하고 있는 디즈니도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89년작 <인어공주>를 시작으로, 매년 여름을 축제 분위기로 만들어내던 애니메이션들을 연달아 개봉시키던 그 몇년간은 그야말로 디즈니 시대였던 것. 특히 전세계적으로 약 8억달러라는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대의 흥행 기록을 만들어낸 94년작 <라이온 킹>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만을 위한 특화된 문화상품이 아니라는 인식을 전세계인들에게 확실히 심어주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 <라이온 킹>을 정점으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 특히 전통적인 셀애니메이션들이 차츰 빛을 잃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픽사와 공동으로 제작한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벅스 라이프>마저 없었다면, 디즈니의 쇠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한 상황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디즈니 전성기의 정점을 만들었던 <라이온 킹>이 한동안 <밀림의 왕자 레오>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였었다는 사실이다. 창의성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자, 전세계 시장을 이끌어가는 제작사인 디즈니에 그런 의혹이 제기된다는 사실 자체가 모욕에 가까웠을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딱 부러지게 디즈니가 데츠카 오사무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상태에서 유야무야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사건을 통해 디즈니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하고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드림웍스가 <슈렉>을 통해 디즈니에 결정타를 날리고 있는 이번 여름에도 디즈니는 <아틀란티스>의 표절시비에 휩싸여 있다. 특히 이번에는 <아틀란티스>가 개봉되기 이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표절의혹이 제기되어왔고, 개봉 이후 전세계적으로 그 의혹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었다는 사실이다.

<아틀란티스>의 표절논쟁의 핵심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디즈니가 <아틀란티스>를 제작하면서 일본의 제작사 가이낙스가 1990년부터 일본 에서 1년간 방영했던 <나디아>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표절했다는 의혹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어 10여개의 팬 홈페이지가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나디아>와 <아틀란티스>가 내용의 전개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구성과 외모에서도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물론 두 작품 모두 쥘 베른의 고전 <해저 2만리>와 에드거 케이시가 쓴 대표적인 아틀란티스 관련 서적인 <아틀란티스에 대해>(On Atlantis)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두 작품의 내용전개나 등장인물들을 1대1로 비교해보면, 단지 우연히 생겨난 공통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똑같은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두 작품의 의심스러운 공통점들을 일일이 비교해놓고 있다. 우선 <나디아>의 주인공인 쟝과 나디아, <아틀란티스>의 주인공인 마일로와 키다의 외모와 의상이 닮았다는 것은 그들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기에 결국 나디아와 키다가 모두 아틀란티스의 공주임이 밝혀지고, 그들이 차고 있던 푸른색 보석으로 된 목걸이가 아틀란티스를 움직이는 원동력임을 나중에서 알게 된다는 설정까지 똑같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남녀주인공의 외모와 설정이 비슷한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타는 잠수함과 그 잠수함의 선원들 모습마저도 거의 똑같다는 사실이다. 한 <나디아> 팬사이트 운영자가 “왜 <아틀란티스>의 의사가 <나디아>의 의사처럼 대머리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외칠 정도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나디아>조차도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왔을 정도로, 뻔한 구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안노 히데야키 스스로가 <아니메지>와의 인터뷰에서 “독창성에 열중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몇년 동안 독창적인 면에 집중했지만, 결국 지루하기만 한 애니메이션들을 많이 봤습니다. 나는 그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라며 인정을 한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지적인 남자주인공은 모험심이 강하며 대체로 안경을 쓰고 있다’는 식의, 이른바 영화 속의 뻔한 법칙(클리셰, Cliche)을 적절히 따르다보니 생겨난 필연적인 일치가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반론들은 그다지 폭넓은 공감을 얻지는 못하는 듯하다. 다만, 디즈니의 기획자나 애니메이터들이 뻔히 보이는 표절을 일삼았을 리 없다는 생각에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는 이상 무죄추정(Presumed Innocent)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만은 공감을 얻고 있는 듯하다.

여하튼 이렇게 인터넷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아틀란티스>를 둘러싼 표절 논쟁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지는 않다. 몇몇 신문과 잡지가 이에 대해 보도했지만, 과거 <라이온 킹> 때와 마찬가지로 가십거리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이는 <아틀란티스>가 <라이온 킹>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저조한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논쟁 자체가 그나마 남아 있는 디즈니에 대한 관심의 소산이라는 일부의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 설사 표절 자체가 사실무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할 때만 디즈니는 새로운 전성기를 꿈꿀 수 있다는 지적의 속뜻을 되새겨 볼 일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아틀란티스> 공식 홈페이지 http://www.disney.com/atlantis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일본 애니메이션> 홈페이지 http://www.newgrounds.com/lit/atlantis.html

<나디아 대 아틀란티스> 홈페이지 http://www.neomedia.it/personal/queensquier/nadia-atlantis-I.htm

<아틀란티스의 진실에 대한 여러 설들> 홈페이지http://atlantistheories.homestead.com/atlantis.html

<나디아> 한글 팬사이트 http://tohomeland.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