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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의 <형사 Duelist> [1]

영화의 근본주의자임을 다시 천명한 <형사 Duelist>

이명세의 일곱 번째 영화 <형사 Duelist>가 드디어 찾아왔다. 이명세 특유의 많은 영화적 시도가 종횡으로 화면을 채우며 눈을 즐겁게 한다. 조선시대판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될 것이라는 그의 장담은 화려하게 지켜졌다. <형사…>는 다양한 상상적 이미지의 집결이자, 21세기를 찾은 활동사진의 초절정이다. 활동, 율동, 감동이라는 키워드로 이 영화의 맥락을 생각해보고,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이명세 감독이 직접 고르고, 그와 이형주 미술감독이 함께 전하는 영화 속 명장면 베스트 10컷 포토 코멘터리는 <형사…>를 상상하고 있는 당신에게 즐거운 지름길이 될 것이다.

활동이 있으매, 비주얼은 찬란하리라

활동(活動). 이명세는 험난한 시대에 영화를 시작했지만,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고 영화의 미학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만 끈질기게 작품을 채워왔다. 80년대 후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여 ‘코리안 뉴웨이브’라는 말로 같이 묶였던 장선우, 박광수의 길과는 엄연히 달랐다. 오직 그만이 영화의 성질 자체를 궁금해했다. 그는 세트 공간에서 더 유력할 수 있는 세계를 따로 창조하였고,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와 일견 무시하려는 태도로 동시에 갈렸다. 하지만 여섯 번째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대중적 액션장르영화”로 건너뛴 다음 그의 세계를 반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일곱 번째 영화 <형사 Duelist>는 그 지점에서 한폭을 더 몰고 나간 영화다.

<형사…>를 준비하면서 이명세는 분명 마음에 새긴 것이 있다. “움직임”이다. 지금까지 어느 자리에서나 그걸 이 영화의 주안점으로 꼽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움직임이고, 그것이 리듬을 만들고,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이 <형사…>를 설명하는 그의 요지다. 아닌 게 아니라 <형사…>의 모양새는 그 서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움직임이고, 움직임은 영화의 본성이다. 이명세는 <형사…>에서 영화의 본성을 담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의 본래주의로서, 현대에 태어날 수 있는 값비싼 고전주의(이 영화의 예산은 마케팅비를 제외한 78억원이다)로서의 영화가 바로 <형사…>다. 영화가 이미지 놀이의 상태로 인식되던 그 규정을 그는 지금 다시 거대 예산의 장르영화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그 이미지의 놀이를, 영화를, 우리는 오래전에 사진이 움직인다는 뜻으로 ‘활동’사진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에서 방점은 다름 아닌 활동이고, 또한 활동은 영화 <형사…>의 중요한 형식적 방점이다. 활동은 <형사…>에서 이명세가 전달하고자 하는 첫 번째이며,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이다.

상평통보가 화폐로 쓰이던 조선의 어느 시기. 나라에는 위조 화폐가 성행하고, 남순(하지원)과 안 포교(안성기)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형사들은 그 범인을 추적해나간다. 금불상과 위폐를 둘러싸고 한바탕 벌어지는 장터에서의 난장판 추격장면 중에 남순은 슬픈눈(강동원)을 만난다. 남순은 첫 만남에 넋을 잃는다. 그들의 연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던 남순과 안 포교는 위폐 사건의 중심에 병조판서(송영창)가 깊게 관여되어 있음을 알게 되지만, 또한 슬픈눈이 그의 수하에 있음도 눈치 챈다. 남순과 슬픈눈은 적과 적으로서 쫓고 쫓기며 대결구도에 서고, 실제로도 복잡한 장터와 돌담길 등에서 칼을 겨누고 대결을 벌인다. 하지만, 그 대결은 그 이야기를 전하는 대장장이 봉출의 말에 따르면 남녀의 정사나 진배없는 사랑의 몸짓이다.

<형사…>에서 드라마투르기가 허약하다느니 하는 말은 말이 안 된다. 이명세의 드라마는 언제나 서툴렀다. 대신 그는 시각적인 소통을 즐긴다. 공들인 소품들로 가득 차 다양하게 공간활용되는 장터, 감정이 오르내리는 조선식 상상의 돌계단, 어둠과 빛으로 이분되어 뻗어 있는 남순과 슬픈눈의 대결장소이자 연애의 장소인 돌담길이 대표적인 공간이고, 하지원과 강동원이 입은 명맥없는 의상이 대표적인 자유분방함이고, 검정색 포복과 흰 눈과 붉은 천이 섞여 휘날리는 안 포교와 병판의 색색별 대결장면도 화려한 비주얼의 한순간이다. 게다가 현대의 틀에서 훨씬 벗어나 있는 상상의 섬을 구축하기 위해 오히려 옛 시대를 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사…>는 모든 자료와 당대의 생활방식에서 자유롭다. 일부러 사극이라고 부를 까닭이 없을 정도다. 그 자유로운 가상의 시간을 인물들은 활동하며 누빈다(그러나 이 초역사성이 역사순정만화를 상기시키는 것도 일면 사실이다).

무엇보다 초반 장터장면이 <형사…>의 직접적인 활동(성)을 대표한다. “집단의 혼란스런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불상과 위폐를 사이에 두고 남순과 안 포교의 형사 일행과 범죄자 마축지 일당과 슬픈눈이 서로 엉키고 설켜 벌이는 쟁탈전은 달리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솟아오르면서 럭비를 하듯 전개된다(실제로 럭비를 하듯 장면을 연출했다). 그 모습들을 영화는 저속촬영, 고속촬영, 프리즈 프레임 등을 오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잡아낸다. 활동하는 인물들의 집합과 분산 그 자체를 역동적으로 포착한다. 꽤 긴 시간이 초반 이 활동의 난장에 공들여 소요된다. 그 의도를 따라 관객은 마치 사진 속 사람이 처음 움직인 것인 양 그 활동의 시후감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율동이 있으매, 정서가 전달되리라

율동(律動). 움직임은, 활동은, 초반 장터에서의 난장처럼 물리적으로 인물들이 처한 상태일 뿐 아니라 이 영화의 영화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또는 주인공들의 자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형사…>에서의 활동은 말 그대로 두 가지 ‘율동’을 타고 분화된다. 하나는 영화의 ‘리듬’이고, 또 하나는 주인공들의 ‘안무’다.

<형사…>의 영화적 리듬은 여러 영화기법의 사용으로 그 율동을 탄다. 그중에서도 와이프와 디졸브가 가장 돋보인다(아마도 <형사…>는 한국영화 역사상 와이프 기법이 가장 많이 사용된 영화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와이프는 원래 장면전환시에만 사용되는, 예컨대 구로사와 아키라처럼 특별한 애용자들에게서만 자주 쓰여왔던 그런 것이다. 하지만 <형사>에서 와이프는 장면의 전환, 즉 신의 전환이라는 기능을 넘어선다. 적어도 관객은 남순과 슬픈눈의 러브스토리의 정점에 이르기 전까지 와이프 기법이 일으키는 현란함을 견뎌내고 쫓아가야만 한다. 예컨대 신의 전환은 물론이고, 같은 장소에서 여러 번 와이프가 밀고 지나가면서 그때마다 숏이 전환된다. 그렇게 바뀌는 숏들은 가상선에 구애받지 않고 여기저기 자리를 바꾼다. 게다가 빠른 와이프의 속도와 같이 움직이는 카메라의 트래킹 이동, 그리고 숏의 전환에 따라 인물들은 순식간에 눈앞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공간의 상상적 거리감을 확보한다. 물리적 공간이 영화적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봉출이 들려주는 어느 요강 깬 여인과의 술래잡기 이야기는 영화 본편에 들어서기 전에 입맛을 돋우는 에피소드일 뿐이지만, 이미 이 장면의 화면 구성은 이후의 모든 걸 지시할 정도다.

공간 안에서의 활동에 적극적인 촉매가 되는 와이프에 비하면 적게 쓰이는 편이긴 해도, 디졸브 역시 지속적으로 서로 들어섰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며 주인공 남순과 슬픈눈의 심리적 교감을 표현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디졸브는 인물들의 움직임을 서로 다양하게 포개놓으며 활동의 유연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남순과 슬픈눈의 경우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도 사랑이라는 관계로 묶여 있는 그들의 상태를 표현해준다. 서로의 감정과 기억을 시공을 건너뛰어 한 화면 안에 같이 있도록 해준다. 와이프가 공간의 구성에 주로 관련되어 있다면, 디졸브는 주로 감성에 닿아 있다. <형사…>를 볼 때 호흡을 맞춰야 할 영화적 율동은 그 밖에도 많지만 이 두 가지가 대체로 주축이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묶여 있는 <형사…>의 두 주인공이 칼을 들고 피가 튀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서적 안무를 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촬영 전 선무도에서 탱고까지 수련한 하지원과 강동원은 서로 무술을 한다기보다 춤을 춘다. 칼을 든 주인공들은 상대방을 앞에 두고 말 그대로 율동을 한다. 달빛이 가득한 밤, 길게 뻗은 돌담길은 어둠과 빛으로 양분되어 있고, 슬픈눈과 남순은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서로를 뒤쫓다가 돌담길을 무대 삼아 화려한 대결 또는 검무의 호흡을 선보인다. <형사…>에서 남순과 슬픈눈의 사랑도 그 율동을 통해 표현된다.

이런 점들을 들어 생각해보면, <형사…>가 단순히 시끌벅적한 속도전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어떤 정서적 활동에 매진한다고 할 때의 그 의미는, 영화적 율동(리듬)과 인물들의 율동(안무)을 공존시키려는 그 노력 속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감동이 있으매, 그 새로움에 감탄하리라

감동(感動). 활동이, 그리고 율동이, 결국 감동을 향해 있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형사…>는 서사의 의미 자체가 발붙일 곳이 없다. 서사 운운하는 관습의 참견을 틀어막는다. 대신 활동적 이미지로 넘쳐난다. 그건 이명세의 오랜 추구점이다. 그중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어느 한국영화도 아직 시도하지 못한 장면들이 있다. 가령 이미 한물간 교과서적 영화기법인 와이프와 디졸브를 그토록 유연하고 과감한 리듬 안에 살려놓는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못할 일이다. 남순과 슬픈눈이 보여주는 율동의 시학의 경우, 썩 다가오지는 않지만 분명 새로운 개념의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남순과 슬픈눈의 아름다운 대결장면을 제외한다고 해도, 형형색색의 겹겹 안에서 안 포교와 병판이 영화의 후반부에 맞붙는 장면은 조연들조차 그 시각의 천국 속에 버젓이 있음을 증명한다. 78억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이 마음에 걸리지만, <형사…>는 내러티브가 아닌 활동의 이미지만으로 이뤄지는 새로운 액션영화의 가능성을 선보인다.

그러나 <형사…>는 끝내 마음의 일부를 움직이지는 못한다. 쉽게 말해 <형사…>의 주인공인 남순과 슬픈눈의 사랑에는 아련함이 없다. 우선 화려한 몸(들)의 추임새를 따라갈 때는 신천지에 빠지지만, 멈춰 서서 대화를 나눌 때의 인물들을 보는 것은 곧잘 어색하고 지루하다. 병조판서 연회장 이후 남순과 슬픈눈의 대화가 그렇고, 슬픈눈이 남순에게 거래 장부를 건네주는 장면 등이 그렇다. 예컨대 그 이유는 서사의 고정관념을 따돌리다보니 덩달아 잃어버린 일부 캐릭터의 상실에 있을 것이다. 남순은 이해할 수 없이 딱딱하고, 안 포교는 너무 평이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형사도 범인도 모두 제각각의 존재감으로 살려놓은 사람이 이명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일퇴다. 또는 후반부 감정의 정점(돌담길 암부 속에서의 결투와 정사장면)에서 남순과 슬픈눈의 대결이 서로를 향해 있지 않고 오히려 관객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감정의 초점을 흐린다. 그 순간 그들의 감정이 율동의 전시성에 눌려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의 감정보다 그 동작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감정이 되레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역전된 착각을 심어준다. 율동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지만, 그 순간 관계의 희구는 막혀버린다. 어쩌면 형제처럼 붙어 있는 활동(성)과 전시(성)의 관계이기에 그 전시는 자기 모토에 충실한 <형사…>의 운명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이명세는 오랫동안 ‘사물의 상태’에 대해서 주목해온 감독이다. (사람을 포함하여) 사물의 상태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에 많은 관심을 쏟아왔다. 일반의 액션영화와 달리 <형사…>가 본성적인 영화 활동(성)의 의미 자체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그 작가적인 고집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움직이는 사물의 상태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이 세상에 움직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을까. 이명세는 그걸 영화 안에서 표현해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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