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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뉴웨이브영화제 마스터클래스 [3] - 차이밍량 ①
정리 이종도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5-09-13

차이밍량이 말하는 대만영화의 현실 그리고 내일

대중의 의식 향상이 보편적 문화 향상을 만든다

내가 한국에 오기 전 대만에 대스타 배용준이 왔다. 한류가 정말 온 아시아를 정복하고 있는 것 같다. 대만 영상산업 종사자들에겐 한류가 스트레스고 압박감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대만영화는 활발한 시기였으나 그뒤로 하강기에 접어들었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한류까지 겹쳤다. 적어도 여러분은 공항에 가서 배용준을 마중할 분은 아닐 것 같다. (웃음)

2001년부터 지금까지 대만의 거의 모든 대학을 순회하며 내 영화를 상영했다. 직접 프린트를 들고 영사기를 빌려서 대학을 돌아다녔다. 커피숍에 앉은 서너명의 손님을 위해 프린트를 들고 간 적도 있다.

돈이 없어서 차를 빌리고 포스터로 차를 뒤덮었다. 마치 표를 파는 기계처럼, 사람을 볼 때마다 티켓을 사지 않겠습니까, 이러고 다녔다. 영화가 직면한 가혹한 현실을 맞닥뜨리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멀티플렉스가 생기고 와이드 릴리즈가 일반화되면서 이런 상황이 초래됐다. 예전엔 예술영화, 상업영화를 구분하지 않고 봤는데 요즘은 구획이 확연한 것 같다. 여러분은 어떤 게 상업영화인지 아는가. 할리우드영화는 내러티브와 장르와 스타가 확실해 관객이 쉽게 볼 수 있다. 예술영화는 팔리지 않는 것이고 말이다. 내 영화들은 상영하면 할수록 흥행이 나빠졌다. 대만에서는 왜 나 같은 감독이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드러냈다. 일본의 두 회사가 번갈아가면서 내 영화를 사줬는데 <안녕, 용문객잔>부터 사지 않기 시작했다. 두 영화사의 사장은 사고 싶지만 살 수 없다고 하더라. 두 회사가 살 수 있던 배경은 방송사가 지원을 해준 덕분인데, 그 지원이 끊긴 것이다.

현실을 말하는 이유는 앞으로 창작 기회가 줄어들 것이고 전망도 어둡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이건 누구의 책임인가. 관객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사는 수입업자나 관객, 제작자 모두 포기를 해서 이런 결과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관객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관객에게는 이런 영화를 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대만은 정말 없다.

천 사장이란 분이 2주 동안 110석 규모의 작은 상영관을 빌려준 적이 있다. 그 사장은 돈이 안 될 걸 아니까, 매일 나에게 60만원 정도를 달라고 했다. 현실은 잔혹했다. 상영 전 예매된 건 다섯장밖에 없었다. 네명의 스탭과 배우를 불러 거리로 나가 표를 팔기 시작했다. 대형서점 앞에서 두 시간 만에 300여장을 팔았는데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다. 대부분 나를 동정해서 샀겠지만, 나 역시도 그분들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2만장을 팔아 큰 수익을 거두었고 천 사장에게 약속한 돈을 줄 수 있었다. 그는 무척 후회했다. 배급 지분을 나누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뒤로는 남쪽에 있는 외딴 곳의 극장업자까지 제발 영화를 틀어달라고 한다. 올해 만든 <떠다니는 구름>은 미국의 폭스영화사에서 배급을 도와주어 43개 영화관에서 상영을 해 13만의 관객을 모았다.

기억나는 질문이 하나 있다. 13만명 가운데 진정으로 내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는 질문이었다. 영화는 정욕에 대해, 섹스산업에 대해 얘기했는데 대만 정부가 한컷도 자르지 않았고 이슈화되어 많이 알려졌다. 당시 내 답변은 5만여명 정도가 내 고정적 관객이며 우리가 길러낸 관객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였다. 나머지는 처음 보러 오거나 옷 벗는 걸 보러 온 사람들일 것이다. 처음 보러 온 사람들은 이상했을 것이다. 벗는 걸 마음껏 봤는데도 왜 쾌감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어떤 관객은 내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그러나 처음 내 영화를 보고 나서 내 관객이 된 사람도 있다. 관객 중 기억나는 분 하나는, 연기를 가르치는 대학교수였다. 2001년의 대학 순회 때 일이다. 그는 상영이 끝난 뒤 내게 사과를 했다. 듣기로도 안 좋다고 해서 내 영화를 안 봤고, 학생들에게도 보러 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영화에 이야기도, 음악도, 대화도 없는데 아무도 이런 걸 영화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다른 내 작품들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안녕, 용문객잔>

<떠다니는 구름>

<떠다니는 구름>의 홍보를 위해 30여 대학을 돌았는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강연마다 항상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예전에 학교 순회 때 만난 1학년이 4학년이 되거나,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다시 학교로 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인사를 건넸을 때 굉장히 기뻤다. 한번은 세명의 사범대 학생에게 500여장의 티켓을 팔았다. 그들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강연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왜 늘 이강생만 쓰느냐, 왜 음악이 없느냐, 물의 의미는 뭐냐’ 이런 질문을 다시 묻지는 않는다. 이제 내 영화에 곤혹스러워하거나, 의혹을 가지고 보는 게 아니라 내 영화의 가능성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니면서 순회 강연할 때마다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공간을 창조했고, 그것이 계속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민중의 의식 수준이 향상되지 않는 한, 보편적인 문화의 수준이 향상될 수는 없다. 여러분들도 지금 나눈 이야기를 주위에 널리 퍼뜨려달라.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자기만의 창작의 공간을 창조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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