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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토록 쓸쓸한 것, 레이첼 야마가타 <Happenstance>

<Happenstance>는 미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레이첼 야마가타(Rachael Yamagata)의 정규 데뷔 음반이다(소니BMG 발매). 이 신인 가수의 바이오그래피를 간단히 살펴보면, 일본계 부친과 독일-이탈리아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시카고를 기반으로 한 인디밴드 범퍼스에 합류하면서 음악인의 길로 들어섰다. 밴드 활동으로 20대 전반기를 보낸 뒤 솔로로 독립해 2003년 셀프타이틀 EP음반을 내놓아 호평받았고 리즈 페어, 데미안 라이스, 고메즈 등의 공연에 오프닝으로 선 바 있다.

파이스트나 넬리 매케이의 데뷔 음반과 마찬가지로, <Happenstance>도 원래 2004년작이지만 라이선스로는 올해 지각 발매된 경우다. 파이스트와는 음악적으로뿐 아니라, 무명 시절 전혀 다른 성향의 밴드에서 오래 활동한 점에서도 유사하다. 펑크(punk) 록 밴드 출신인 파이스트와 달리, 레이첼 야마가타는 훵크(funk) 밴드 출신이란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물론 레이첼 야마가타가 이 음반을 통해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제2의 노라 존스’란 레테르다. 이는 소속사의 홍보전략이 먹혀든 결과이지만, 음악 자체로 일정 부분 공감을 자아낸 결과인 것도 사실이다. 음반을 여는 두곡 <Be Be Your Love>와 <Letter Read>는 노라 존스와 피오나 애플을 연상시킨다는 세간의 평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좋은 본보기다.

음반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리드하는 것은 레이첼 야마가타의 매력적인 보컬이다. 허스키한 음색은 템포와 무관하게 안개처럼 먹먹하고 더러 관능적인 속살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녀는 사랑을 열망하는, 하지만 대부분 슬픔과 쓸쓸함과 안타까움으로 귀결되는 노랫말들을, 속삭이듯 읊조리거나 한숨처럼 내뱉거나 때로 분노 어린 외침으로 표현한다. 빙빙 돌리지 않고 꾸밈없이 솔직한 노래는 재즈, 포크·컨트리풍의 사운드와 삼투한다.

확실히 음반의 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Quiet>이나 <Meet Me by the Water>처럼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가 서정적으로 깔리는 음울하고 느린 트랙들이다. 달리 말하면 ‘무드있는 발라드’라고 아우를 만한 곡들 말이다. 하지만 훵키한 버스(verse) 부분과 화려한 훅(hook)의 코러스가 대비되는 <Letter Read>, 드물게 밝고 경쾌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1963>, 댄서블한 뮤지컬 음악 같은 <I Want You> 같은 곡들도 사이사이 배치되어 있다. 귀에 착 달라붙는 멜로디에 U2를 연상시키는 ‘방송 친화적’ 인디 록 <Worn Me Down>은 아마 가장 이질적인 넘버일 것이다.

레이첼 야마가타와 종종 비교된다고 앞서 언급한 싱어송라이터들(개인적으로 케렌 앤을 추가하고 싶다)의 데뷔 음반처럼, <Happenstance>도 흔치 않은 재능을 밀도 높게 갈무리한 데뷔작이다. ‘개성없다’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주목할 만한 음반임에 틀림없다. 마음이 헛헛한 깊은 밤의 사운드트랙으로도 제격이다. 짝사랑이나 실연으로 우울할 때 들으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될 테니, 주의! 혹은 원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