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포커스
<카트라이더>는 어떻게 국민 게임이 되었나 [2]

승자가 다 가져가지 않는다, ‘성취감 강력’

온라인 게임의 시대에도 여럿이 하는 게임을 싫어하는 게이머는 여전히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역시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남이랑 해서 지는 것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이겼다고 기고만장하면 그 꼴을 어떻게 봐줄 것인가.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을 찾아놓고도 대기실에서만 버티며 정작 격전의 현장으로는 못 들어가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선은 연습을 하고 싶다. 충분한 연습 게임을 통해 실력을 키우고 다른 게이머와 멋지게 붙어보고 싶다. 하지만 남들이랑 대결하지 않고는 실력을 늘릴 기회가 없다. 악순환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튜터리얼 모드가 제공된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면서 실력을 키우고 기술을 익힌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 지겹다. 어떻게든 빨리 이 과정을 마치고 당당한 게이머가 되고 싶은데, 지루한 튜터리얼 모드가 길기는 또 되게 길다. <카트라이더>가 다른 게임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 여기다. 이 게임의 튜터리얼 시스템은 몇 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는 라이선스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한번에 모든 기술을 익힐 필요는 없다. 주어진 간단한 과제들을 플레이하며 각 단계를 익혀나간다. 단순 과제를 반복하다보면 느낄 수밖에 없는 지루함은, 단계별로 라이선스를 따다 보면 깜빡 까먹는다.

또한 각 단계가 플레이 채널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튜터리얼은 튜터리얼이고, 게임은 게임이다. 반면 <카트라이더>에서는 이 양자를 결합해놓았다. 게이머는 튜터리얼에서 한 단계를 마치고 익힌 스킬을 곧장 다른 게이머들과 플레이하며 테스트해볼 수 있다. 그리고는 다시 튜터리얼로 돌아와 다음 단계의 트레이닝을 받으러 간다. 이 두 과정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은 동시에 두려울 것도 없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이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시도이고, <카트라이더>만이 지닌 독특한 느낌을 보여준다. 이른바 캐주얼 게임들은 누구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기도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격차가 벌어지고, 이는 점점 더 커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게임들은 비슷한 레벨의 게이머들끼리 플레이하도록 채널 시스템을 도입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약자는 있게 마련이고, 만날 지는 게임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임이, 곧 누구나 재미있는 게임은 아닌 것이다. 좌절하고 떠나는 게이머들을 붙잡을 방법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네트워크 게임- 여러 명의 게이머들이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 의 근본적인, 그리고 치명적인 한계다. 어떤 모임이건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 <카트라이더>는 네트워크 게임의 한계를 재치있게 해결한다. 이 게임에서는 승자에게 몰아주기가 없다. 1등이 모든 점수를 가져가지는 않는 것이다. 꼴찌만 면하면 누구나 자기 실력에 맞는 보상을 받는다. 다른 캐주얼 게임들은 승자나 혹은 일정 등수에 들어야만 대가를 받는다. 패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진 경기는 무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카트라이더>에는 자기 수준에 맞춰 보상을 받고, 이를 차곡차곡 쌓아나가 성장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게임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열심히 게임에 참여하고, 자신의 역할을 할 이유가 있다. 팀플레이를 한다면 더욱 그렇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게임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은 강한 성취동기로 이어진다. 다음 단계로 조금씩 나아가면서 게이머가 얻게 되는 성취감이야말로 <카트라이더>의 재미 중 하나다. 다른 게임에서는 더이상 승리하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다시 승리하지 못하면서 게임 자체를 싫어하고 떠나게 되지만 <카트라이더>에서는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시간을 양껏 투자할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 중요하다. 직장인은 일을 해야 한다. 대학생이나 그 밖에 시간을 융통성 있게 굴릴 수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밤새 게임해서 피곤하다고 직장을 땡땡이칠 수는 없다.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적으니 만날 지고, 어린애들한테 무시당해서 슬프다. 하지만 자신만의 발전 속도를 가질 수 있다면 언젠가는 볕들 날이 온다. 조금씩조금씩 성장하면서 회심의 칼날을 갈 수 있다.

<카트라이더>의 빛과 그늘

<카트라이더>는 혼자서 놀아야 하는 스탠드 얼론 게임의 단점을 네트워크 플레이로, 끊임없는 경쟁에서 도태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는 네트워크 플레이의 단점을 스탠드 얼론 느낌의 성장 시스템으로 성공적으로 풀어놓았다. 성공한 게임이라면 자주 문제가 되는 폭력성이나 선정성 시비도 적은 편이어서 사회적 평판도 좋다. 하지만 문제점 역시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표절 논쟁이 있다. 게임 진행의 전체적인 느낌이 세계적 게임회사인 일본 닌텐도의 간판 게임인 <마리오 카트>와 유사하다는 주장에서 시작된 표절 논쟁은, 개발사 넥슨과 PC방 점주들의 모임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사이의 요금제 갈등과 맞물리면서 꽤나 폭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카트라이더>의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은 반박하기 힘들다. 하지만 표절이란 또 다른 문제다. 게임에서의 표절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이 있는지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겉보기에 똑같은 것보다는 ‘동일한 경험을 주는 것’, 즉 재미를 주는 논리를 베껴온 것을 표절이라고 정의해보자. <카트라이더>의 매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친근한 조작계, 그리고 네트워크 게임의 딜레마를 스탠드 얼론 게임 스타일로 해결한 방식을 고려해본다면, 게임이 주는 경험이 <마리오 카트>와 같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논쟁의 빌미는 분명 존재하고, 실제 표절이냐 아니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게임과 개발사의 이미지를 훼손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문제가 된 것이 유료 아이템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값비싼 아이템을 사용해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게임의 공정성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게임이 곧 바람직한 게임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특히 초등학생 이하의 저연령층을 적극적으로 겨냥한 유료화 시스템은 비난의 소지가 있다. 그래도 여전히 <카트라이더>는 국민 게임인가? 물론이다. 다른 게임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이 유독 <카트라이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실은 이 게임이 ‘국민’ 게임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계층들이 광범위하게 즐기는 게임이다보니 모든 부정적인 면들이 좀더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늘이 짙은 것은 빛이 밝기 때문이다. 다음 국민 게임이 등장할 때까지, <카트라이더>를 둘러싼 찬사와 논쟁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