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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장마 끝 갠 하늘, <미술관 옆 동물원>의 심은하
사진 정진환조종국 1998-12-22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써먹는’ 만만한 송년기획이 있다. 올해의 10대 뉴스 따위를 뽑아서 우려먹는 것이다. 심심풀이로 영화계의 10대 사건이나 뽑아보자.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새 정부의 영화진흥정책이 어쩌고, 몇가지 뉴스를 떠올리는데 ‘춘희’가 슬그머니 얼굴을 디민다. 저 여자 누구야? 고개를 갸우뚱할라치면 뒷머리를 한가닥으로 단정하게 묶은 주차단속원 다림이도 배경처럼 서 있다. 저 여잔 또 누구야?

영화배우 심은하(26)의 ‘발견’, 올해 한국영화계의 두드러진 수확 중 하나다. 세밑 극장가에 훈풍을 몰고온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춘희를 연기한 그에 대한 관계자들의 평가는 거의 만장일치에 가깝다. ‘가뭄의 단비’라거나 ‘장마 끝의 갠 하늘’ 같다는 상찬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심은하의 가능성과 그의 연기 패턴에 ‘물이 올랐음’은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심은하가 이 영화에서 흐뭇함을 느끼는 것은 관객들의 환호와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다. 관객들이야 심은하라는 이미지와 겉모습에 대한 기대치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겠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는 심은하의 연기가 보이기” 때문이다. “예쁘고 화려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통쾌”했다. 심은하는 1994년 MBC의 <마지막 승부>로 데뷔해 <M> <사랑한다면> <아름다운 그대> 등 여러편의 TV드라마와 영화 <아찌아빠> <본투킬>에 출연했고, <8월의 크리스마스>로 올해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멜로영화가 많이 나오고 흥행성적도 좋은 까닭은 뭘까

=사회적인 분위기와 환경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인간미나 정이 느껴지는 포근하고 따뜻한 영화를 찾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영화는 사랑받아야 한다. 더 많이 나오고 더 잘됐으면 좋겠다. 영화로 대리만족이라도 하면 정서가 순환되는 구실도 할 거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관객이 울기도 전에 배우가 먼저 우는 진부함’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자부심도 느낀다.

-<미술관 옆 동물원>에 출연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시나리오가 신선했다. 영화의 매력에다 춘희 캐릭터에 대한 내 욕심까지 부가됐다. 감독도 여자이고 스탭 중에 상대적으로 여자가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여자 감독은 왜 좋을까

=이정향 감독이 워낙 섬세한 데다 대화가 잘 되고, 감독의 담백한 느낌은 확신으로 다가왔다. 여러가지 잔신경 안 쓰도록 배려해줘서 너무 좋았다. 여자끼리 통하는 게 있었다고나 할까.

-실제 성격이 춘희와 비슷하냐는 질문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내 성격을 파악하게 되더라. 나의 감성이나 또다른 모습을 찾게 되고, 그렇게 찾다보면 그런 성격이 키워지는 것 같다. ‘춘희와 비슷하지 않다고는 말 못한다. 내 성격에도 그런 모습이 있을 거다.’

-극중 철수와 인공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기대면 편할 것 같은 인공과 젊고 순수한 철수 둘 다 매력있다. 하지만 솔직히 인공의 무시하는 듯한 말투는 싫다.

-어떤 영화 하고 싶나

=도발적이고 도시적이고, 퇴폐적인 느낌의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여성적인 매력이 큰 영화. <베티블루>의 베아트리체 달 같은? 예로 들 만한 더 멋있는 영화 없나….

-TV출연도 병행하나. 다음 영화는

=영화만 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하지만 내게는 ‘의미있는’ 작품이라 꼭 하고 싶은 TV드라마가 한편 있다. 굳이 영화·TV 구분하지 않고 작품따라 정하고 싶다. 영화는 <이재수란>이 있고, 다음 작품은 시나리오 기다리는 게 있다.

-<이재수란>은 비중이 크지 않은 배역인데

=원작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를 읽은 엄마의 권유와 박광수 감독에 대한 호감이 컸다. 제주 4.3항쟁지 답사를 다녀온 동생들의 ‘의미있는 작품인데 꼭 출연하라’는 권유도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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