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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부산국제영화제 미리보기 [6] - 현실 ②

선택받은 땅 What a Wonderful Place

■ 이스라엘의 로버트 알트먼식 블랙코미디

<선택받은 땅>은 신에게 ‘선택받은 땅’ 이스라엘의 인생군상을 로버트 알트먼의 화법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경찰일을 그만두고 러시아 여자들을 인신매매해 아랍과 이스라엘의 집창촌과 마피아에 팔아넘기는 프랑코. 그의 손에 의해 팔려왔지만 몸을 파는 일을 거부하고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러시아 여인 야나. 아내의 부정행위를 알게 된 소심한 농장주인 젤트처. 그의 땅에서 농부로 일하며 ‘왕의 날’을 준비하는 타이 노동자들. 영화는 그들을 중심으로, 인신매매 단체와 팔려온 여인들과 그들의 가족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하며 현대 이스라엘의 고루한 초상을 블랙코미디의 기운에 실어낸다. 2005년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남우주연상 수상작인 <선택받은 땅>은 신랄한 리얼리즘 속에서도 시적인 정서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기자로도 활동했고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영화를 시작한 에얄 할폰 감독의 시선은, 캐리커처와 정밀소묘의 중간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듯하다.

호텔 르완다 Hotel Rwanda

■ 르완다 쉰들러의 죽음의 참회록

<호텔 르완다>는 1990년대 중반 르완다를 피로 물들였던 후투족의 투치족 인종말살의 한가운데로 관객을 데려간다. 수도 키갈리의 호텔 지배인이자 후투족인 폴 루세사바기나는 1천여명의 투치족들에 호텔을 피난처로 제공해 1268명의 생명을 구했다. 영화는 ‘르완다의 쉰들러’ 호텔 매니저 폴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쉰들러의 리스트>처럼 감상적인 어조를 품지는 않았다. <어느 어머니의 아들>로 북아일랜드 분쟁을 이면을 다루었던 테리 조지는, 극단적인 폭력을 행하는 후투족의 만행을 까발리는 동시에 르완다를 외면했던 서방국가들에 원죄를 묻는다. 르완다의 사회주의화를 두려워하던 통치자 벨기에와 프랑스는 후투족에 무기를 건넸고, 미국과 유엔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100일 만에 100만명이 생을 잃은 고깃덩어리로 화했다. <호텔 르완다>는 그 소름끼치는 죽음들을 위한 참회록이다.

저자세 Low Profile

■ 저자세를 가진 소년의 무심한 일상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민은 취업 면접을 볼 때마다 실패한다. 그는 예쁜 여자친구에 좋은 직장을 가진 형과 비교되고, 좋아하는 소녀 카챠가 다른 남자의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집 근처 교통사고 현장에서 부서진 차의 부속품을 집어온 아민은 경찰에 이메일을 쓴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저는 **월**일 **에 일어난 교통사고의…” 주범이라고 거짓말하는 그 메일을 아민은 익명으로 쓰면서도 여러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저자세>는 영화저널지 <리볼버>의 창간멤버이기도 한 독일 감독 호크호이슬러의 두 번째 장편이다. 감독은 주인공을 지나친 저자세의 인물로 설정해놓았지만, 그가 왜 그러한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그로 인해 그가 겪어야 하는 불합리나 모순을 끌어들이지도 않는다. 아민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들은 개별적이며 평범하다. <저자세>는 마치 어떤 사건 기사의 중간 단락처럼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판단의 여지가 없는 영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민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을 통해 존재를 규명하려던 아민이 참아낼 수 없는 우연적인 폭력 앞에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전혀 동참하지 못했다는 무력감 외에 보는 이에게 남는 것은 없다. 충격적이지만 감정을 느낄 수 없고, 시비의 구별은 해도 어느 편을 지지할 수는 없다. 한 소년의 인생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무심한 기술. <저자세>의 냉정함은, 최후의 결심을 보여주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민보다 관객을 더 저자세로 만들 만큼 세다.

백 보컬 Back Vocal / 오프 비트 Off Beat

■ 이란에도 여성 팝, 언더그라운드 록은 있다

<백 보컬>

이슬람 혁명 이후 24년이 지난 이란, 여성이 솔로나 리드 보컬을 맡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듀엣이라면 노래할 수도 있으리라는 풍문이 퍼지고 있다. 모지타바 미르타마숩은 이슬람 영웅의 아내를 맡은 오페라 가수와 여성 듀엣 음반을 녹음 중인 가수, 이슬람 혁명 이후 첫 번째 콘서트를 가진 여성 팝가수 등을 만나면서 “우리의 목소리도 남성의 목소리와 같다”는 여인들의 의지를 기록했다. 또 다른 음악다큐 <오프 비트>는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들을 다룬다. 펑크, 메탈, 얼터너티브 등 다양한 색깔을 지닌 록밴드들은 록음악을 금지하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가정집 창고나 지하실에서 독자적이며 비밀스럽게 음악 활동을 유지해간다.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표현활동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라고 되묻는 그들은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음악을 소개할 기회를 얻는다.

라자레스쿠씨의 죽음 The Death of Mr. Lazarescu

■ 불통의 시대, 소멸해가는 한 인간의 기록

주정뱅이에, 거의 약물 중독에, 게다가 괴팍한 성격으로 건너집 이웃에게는 폐만 끼치는 63살의 독거 노인 라자레스쿠. 그는 고양이 세 마리와 혼자 산다. 오늘밤 그는 몸이 아프다. 머리가 깨질 것 같고, 구토는 멈출 줄 모른다. 이웃이 그를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보내지만,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의사는 아무도 없다. 이 영화가 전하는 단 한 가지 전언은 오늘밤 라자레스쿠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그의 사인을 아무도 모르고, 그를 죽음에서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옴니버스영화 <커피와 담배> 중 한편을 연출하기도 했던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 푸이유는 불통의 시대 속에서 한 인간이 소멸해가는 153분간의 기록을 그린다. 그래서 불편한 라자레스쿠 노인의 몸을 따라 거의 리얼타임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의 갑갑함은 현실의 반영에서 온다.

연애 Love Is Crazy Thing

■ 벼랑 끝에 선 여자, 마지막 연애를 상상하다

몇백만원의 빛을 갚지 못해 가압류 딱지를 붙이고 사는 30대 초반의 주부 어진.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그녀는 밤마다 수화기를 들고 거친 남자들의 헐떡임을 감내해야 한다. 얼마 후, 밀린 전화방 도우미 월급을 받게 도와준 김 여사에게 이끌려 어진은 2차를 강요당하는 술집에까지 나가는 처지가 된다. 수렁에서도 희망의 빛줄기는 보이는 것일까. 어진은 그곳에서 “우리 친구할래요?”라고 묻는 남자 민수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너무 늦게 찾아온 연애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실행한 마지막 연애의 상상은 과연 파국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백한번째 프로포즈> 이후 12년만에 신작을 내놓은 오석근 감독의 세번째 영화. 수컷들의 으르렁거림에 뒷걸음질치다 벼랑 끝에 선 한 여자의 내밀한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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