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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마 프로덕션과 로이드 카우프먼 감독
2001-07-27

추악한 그들, 거칠 것이 없어라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화끈한 섹스영화로 각색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줄리엣은 레즈비언이고 로미오는 자위에 심취한 사내라면? 콘돔이 남성 성기를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는 것은 어떤가? 방 안에 널브러진 남성 성기를 단서로 콘돔이 저지른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형사가 얼마나 고생할지 상상이 가는가?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된 지 오래되지 않은 두편의 영화 <트로미오와 줄리엣>과 <킬러 콘돔>은 트로마 영화의 실체를 ‘살며시’ 보여준다. ‘살며시’라고 말하는 이유는 두 영화가 트로마 영화 중에 약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장을 꺼내고 머리가 터지고 똥으로 범벅을 하는, 끔찍하고 혐오스럽고 더러운 장면들이 트로마 영화에선 빈번히 등장한다. 한눈에 싸구려 티가 철철 넘치는 특수분장과 진지한 구석을 찾을 수 없는 연기도 트로마 영화에선 흠이 아니다. 어느 모로 봐도 허술하고 어색하기에 트로마 영화는 일단 맛을 들인 관객에겐 유쾌한 경험이다. 양동이로 퍼담을 만한 피가 흘러도 가짜 티가 너무 나서 무섭거나 끔찍한 게 아니라 귀엽게 느껴지고, 포르노에 가까운 섹스장면도 너무나 ‘오버’하는 신음소리 때문에 몰입하기보다 낄낄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점잖은 관객을 당황하게 하는 트로마 영화의 엽기유머는 1984년 <톡식 어벤저>가 성공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톡식 어벤저>는 헬스클럽에서 청소일을 하던 멜빈이라는 청년이 유독성 폐기물 탱크에 빠진 뒤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영웅 톡식 어벤저로 변신, 환경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에 맞서 대걸레 하나 들고 싸우는 이야기다. 슈퍼맨이나 배트맨과 달리 한눈에 혐오스런 톡식 어벤저의 외모는 트로마의 생존전략인 비주류노선을 상징한다. 이런 트로마 영화의 모든 것은 거의 전적으로 감독이자 제작자인 로이드 카우프먼이 창조한 것이다. 60년대 예일대 재학 시절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존 포드 영화에 심취해 영화연출을 결심한 그는 1974년 대학 후배 마이클 허츠와 함께 영화사 ‘트로마 유니버스’를 만들었다. 초창기엔 몇몇 섹스코미디를 만들고 할리우드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그는 80년대 <톡식 어벤저> 성공을 계기로 할리우드 스타일과 결별한다.

카우프먼은 “할리우드가 절대 만들 수 없는 종류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컬트팬을 거느리게 됐다(쿠엔틴 타란티노, 케빈 스미스, 피터 잭슨 등이 감독이 되기 전 트로마 영화의 팬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의 활동영역은 영화연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에 다리오 아르젠토의 <스탕달 신드롬>을 배급하기도 했으며 비디오, DVD, 방송, 출판, 만화, 캐릭터 등 연관사업을 벌여나갔다. 특히 2000년부터는 선댄스영화제가 열리는 파크시티에서 트로마댄스라는 작은 영화제를 개최해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일도 하고 있다. 선댄스가 갈수록 상업화, 제도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로 기획된 트로마댄스는 트로마처럼 누구나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 트로마의 홈페이지(www.troma.com, www.tromaville.com)는 카우프먼이 벌이는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는 전초기지다. 국내에 비디오로 나온 트로마의 또다른 영화들로 원자력발전소 주변 고등학생들이 방사능에 오염돼 난폭해지면서 벌이는 소동을 그린 <누크족>, 힘을 쓸 때만 되면 가부키 분장을 한 것처럼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변신해 악당을 무찌르는 어느 뉴욕 경찰의 이야기인 <슈퍼 히어로> 등이 있다.

남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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