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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콘티 영화미학의 출발점, <흔들리는 대지>

<EBS> 10월8일(토) 밤 11시40분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는 탐미주의와 리얼리즘이라는 두 세계의 충돌로 읽힌다. 귀족 출신이면서 공산주의에 몰입했으며 사랑과 삶에 대한 기묘한 탐미적 유희가 담긴 비스콘티의 영화들은 오래전부터 평자들과 관객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은 바 있다. 초기작 <흔들리는 대지>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정수라고 할 만한 작품이다. 어렵게 살아가는 어부들의 삶을 다루는 이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와 함께 비스콘티 영화미학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는 걸작이다. 토니는 이미 세상을 뜬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 세 여동생과 남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이다. 토니는 상인들의 횡포에 대항해 어부들끼리 힘을 합치자고 주장하지만 토니의 의견에 동조하는 어부들은 없다. 직접 생선을 팔기 위해 그는 집을 담보삼아 배를 산다. 한동안은 생활이 나아지지만 엄청난 폭풍에 배를 잃고 겨우 목숨만 건지게 된다. 남동생은 미지의 이방인에 이끌려 집을 떠나며 할아버지는 죽는다. 집마저 잃은 토니의 가족에겐 빈곤과 굶주림만 남게 된다.

“이 영화엔 내면적 불꽃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기독교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가장 경탄할 만한 프레스코 벽화를 무리없이 제작할 수 있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들을 연상케 한다.” 언젠가 비평가 앙드레 바쟁은 <흔들리는 대지>에 대해 이렇게 논한 적 있다. 언뜻 독설로도 읽히는 이러한 언급의 행간에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적 재능에 대한 찬탄이 숨어 있을 것이다. 영화는 어느 섬 주민들의 생활을 거의 현실에 근접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민들의 삶이 자연과 상인들, 그리고 어민들간의 뒤얽힌 관계를 바탕으로 움직이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전문배우들의 현실적인 연기, 그리고 토속적인 방언의 사용은 이 영화를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한다. 어민들의 일상을 좀더 자연스럽게 화면에 담기 위해 비스콘티 감독은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나 배우들의 집단적 움직임을 한 장면에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토니는 고난의 연속이다. 토니는 애인으로부터 버림받고 가족들은 하나같이 생활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렇지만 결코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흔들리는 대지>는 개봉 당시 감독의 복잡한 출신이나 세계관 못지않은 거센 찬반양론을 받기도 했다. 좌파와 우파의 비평가들은 각기 멜로드라마와 계급적 배신이라는 이유로 영화에 흠집을 내기도 했다. 사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에게 <흔들리는 대지>는 완성된 미학보다는 하나의 출발점에 가까웠다. 이후 그는 <로코와 그의 형제들>이나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 영화사에 남을 작품을 계속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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