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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정복 따위는 관둬버릴까, <개구리 중사 케로로>

제군들. 만약 당신의 집에 외계인 병사가 침입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케로로 중사는 지구 침략을 목적으로 케론 성에서 파견한 소대의 지휘 책임자로, 투명 배리어와 전기충격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외계 흡착 괴물과 심해 잠수함까지 불러들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물론 오랜 방첩 교육과 민방위 훈련을 받은 제군들이 즉각 가까운 경찰서나 군부대에 그를 신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잠깐. 혹시나 방심과 호기심을 섞어 적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행동은 금하도록. 자칫 케로로 중사의 귀여운 얼굴과 찡긋하는 눈빛을 보았다간, 당신은 신고는커녕 그에게 지구 침략의 전초 기지를 제공하는 이적 행위를 벌일지 모른다. 그래봤자 별 손해는 없겠지만 말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인기가 일본시장을 휘감더니 서서히 국내에도 상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 먼저 소개된 출판 만화의 파괴력은 예상보다 미흡했지만, 최근 투니버스에 TV애니메이션판이 방영되기 시작했고 내년 봄 일본에서 개봉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열기까지 더해진다면 <짱구는 못 말려> 이후 국내에도 형성된 유소년 중심의 전 세대 만화 캐릭터 시장의 새로운 주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케론 행성의 지구 침략을 위해 파견된 케로로 중사는 사전 조사를 목적으로 히나타 집안에 잠입하지만, 본대가 침략을 포기하고 돌아가자 어쩔 수 없이 그 집에 빌붙는 신세가 된다. 자기 몸집의 다섯배나 되는 청소기를 끌고 집안 청소를 하고 싱크대 안에 들어가 목욕 겸 설거지를 한 뒤에 자기 방에서 취미 생활을 즐기는 주부 모드의 케로로. 원체가 태평한 녀석이라 이대로 지구 정복 따위는 관두고 적당히 살아볼까 생각하는데, 흩어졌던 그의 소대원들이 하나둘 나타나면서 하루하루가 대모험인 나날이 펼쳐진다. 주인공 소년 후유키를 짝사랑하는 재벌가의 딸 모모카의 헬기를 타고 남해 섬에서 럭셔리한 휴가를 보내고, 온천탕에 놀러간 글래머 주인 부녀를 쫓아가기 위해 무모한 지저 대탐험을 벌이고…. 아무래도 지구는 침략당하기 전에 다 부서질 것만 같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도라에몽>처럼 유소년을 주대상으로 한 만화이지만, 개그의 수준이나 디테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구일본군의 계급과 복장을 한 개구리 병사들을 내세워 지구 침략을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설정은 그들의 유아적인 행태와 엇갈리고, 케로로의 취미인 건담 프라모델이나 병사들의 활동 장비인 인간형 모빌슈트 등 SF 취향의 아이템들은 성인 마니아들의 정서를 자극한다. 무엇보다 다섯 마리의 개구리 병사가 각각 인간들과 만나 결성하는 커플들의 기묘한 개성의 충돌은 세대를 뛰어넘는 웃음을 만들어낸다(만화 번역판은 <개구리 하사 케로로>로 나오지만, 원래 계급은 군조(軍曹)로 구일본군의 중사 계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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