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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몽골, 키르기스스탄 등 3개국 변방 감독들의 영화만들기
2005-10-13

그래도 우리는 도전한다

지난 10년,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제로 발돋움했다. 아시아 각국의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성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올해 영화제가 아시아필름아카데미(AFA) 등 그동안 거둬들인 성과를 아시아와 함께 나누겠다는 취지의 프로그램과 행사를 마련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기에 기특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영화제에는 할일이 남아있다. 아시아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변방이라 불리는 나라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아낌없이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산을 찾은 세명의 감독에게서 변방에서 영화만들기에 대한 어려움을 들었다. 이는 앞으로 10년을 준비해야 할 부산의 숙제이기도 하다.

1. 스리랑카_ 방송국이나 할리우드 스탭들에게 카메라 대여

<하늘에서 내려온 산>(ppp)의 비무크티 자야순다라

스리랑카 라트납푸라 출생. 인도의 영화 tv학교 수학. 2003년 칸 영화제 시네퐁다시옹 선정. 2005년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

“<버려진 땅>은 프랑스쪽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대략 90만유로를 지원받았는데, 그것만으로는 예산이 부족해서 촬영회수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촬영 기간은 25일 정도가 걸렸는데, 하루에 평균 2시간씩 수면을 취하면서 촬영을 강행했다. 부족한 예산은 5년동안 인도에서 광고 일을 하면서 벌었던 돈과 부유한 친구들에게 손을 벌려서 해결했다. 스리랑카의 극장가는 할리우드 영화와 발리우드 영화가 상영관을 독식하고 있다. 관객 수가 많진 않다. 일례로 최고 흥행작인 <수리야 아라나>라는 영화의 경우, 고작해야 1만명 정도가 봤다. 스리랑카 영화는 장르가 그리 많지 않다. tv에서도 볼 수 있는 멜로 드라마이거나 액션물, 아니면 아이들을 등장시킨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외곽에서 제작되는 독립영화들이 연간 50편에 이른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지만, 이들은 영화를 찍기 위해 tv방송국에서 카메라를 빌리거나 아니면 로케이션을 온 할리우드 스탭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어렵게 만들어진 이들 영화 중 극장에 걸리는 건 불과 4~5편이다. 내 경우,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 상을 수상했고, 이후 여기저기서 주목을 받긴 했지만, 체계적인 영화산업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영화제작에 있어 주 정부의 권한이 막강한데, 많지도 않은 그 지원금을 받을 경우, 간섭에 시달리기도 한다. 현재 젊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주 정부에 지원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2. 몽골_ 90년이후 몽골 영화계와 교육은 전무상태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아시아영화의 창)의 비암바수렌 다바아

몽골 울란바토르 태생. 1989년부터 94년까지 몽골 공영tv에서 아나운서와 조감독으로 활동. 몽골 영화아카데미를 거쳐 독일 뮌헨영화학교에서 다큐멘터리 공부.

“나는 체계적인 영화교육을 받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수업비가 무료인 독일로 유학을 갔던 것도 그 때문이다. 몽골에서 영화 교육을 받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몽골에도 영화를 가르치는 학교가 서너군데 있기는 하지만, 자본과 기자재가 부족해서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의 체계적인 교육은 어림도 없다. 게다가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1990년부터 공교육이 사라지면서, 반년에 3~4천 달러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학교들이 돈값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1990년도 이전에는 국가 지원으로 다수의 영화가 만들어졌고, 많은 학생들이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공산체제가 붕괴하자 몽골 영화계와 교육도 한번에 무너졌다. 물론 몽골에도 여전히 영화가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도 없을 뿐더러, 제작비를 충당할 방법도 없는게 현실이다. 몽골의 영화인들은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값이 저렴한 디지털로만 영화를 만든다. 간혹 나처럼 외국 자본을 지원받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매우 드문 일이다. 신작인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2005)는 뮌헨 영화학교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든 작품이다. 졸업후에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는 말이다. 하지만 졸업후에도 내가 몽골로 돌아가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비록 영화를 만드는 내 영감의 원천이 몽골의 대지이긴 하지만.”

3. 키르기스스탄_ 자국영화 1년에 1편정도, 자국에서의 재원 마련 꿈도 못 꾼다

<사라탄>(아시아 영화의 창), <신부납치>(ppp)의 감독 어니스트 압디자파로트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켁 출생. 러시아 언어 문화학교 졸업. 1988년 키르기스스탄 영화 스튜디오 입사. 첫 장편 <사라탄> 2005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

“소련의 붕괴는 키르기스스탄의 독립을 의미했다. 동시에 러시아의 영화인력들과 기자재들이 모조리 빠져나갔다. 소련의 경우, 영화를 교육·계몽의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지배아래 있을 때는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이 무려 2500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수도 비슈켁에는 상영관이 고작 10∼12개 정도일 뿐이고, 키르기스스탄 전체로 따져도 20개 밖에 되지 않는다. 비단 키르기스스탄만의 상황은 아니다. 중앙아시아 전체를 보면, 1년에 제작되는 자국영화는 모두 합해서 5∼6편 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많아야 1년에 1편 정도다. 촬영에 들어갔다 중단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내년에 제작에 들어가는 영화가 고작 3편 정도라고 알고 있다. 나의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악탄 압티칼리코프, 마랏 사룰루 등 정도만이 촬영 계획이 어느정도 잡혀 있는 상황이다. 제작비의 일정 부분을 소련에 내야만 제작이 허용됐던 과거와 달리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지만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허사다. 편수가 저조하다 보니 상업영화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아예 없다. 국내 시장이 없으니, 자국에서 재원을 마련할 수가 없다. 그러니 해외영화제들을 돌 수밖에 없다. 해외로 눈을 돌려야만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다. 부산을 찾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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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데일리 취재팀·사진 최호경, 소동성, 인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