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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창녀로 만든 여인
2001-07-31

<나쁜 남자> 촬영현장

<파리, 텍사스>에서 트래비스가 제인을 바라보던 핍쇼 장면을 기억하는지.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나쁜 남자>는 허름한 사창가의 한 밀실에서 그 일방적인 시선의 묘한 아픔을 재현해낸다. 붉은 불빛 속 살갗들이 북적대는 사창가. 그 어느 가게 속에 선화의 방이 있고 거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낡은 거울이 침대 곁에 걸려 있다. 그 거울이 유리가 되어, 한기(조재현)는 밀실에서 불을 끈 채 선화(서원)를 바라본다. 자신이 창녀로 만든 여대생, 사랑하는 여자. 거울에는 선화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비친다. 영화의 마지막쯤, 한기는 비로소 밀실에 앉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음, 영화사에서는 고품격 에로라고 하는데, (웃음) 제 입장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넘어서 운명적인 어떤 것에 이르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머릿속 그림대로 빠르고 민첩하게 현장을 지휘하는 김기덕 감독은, 지금까지 작품들에서 그랬듯, 이 영화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깊이에 도달하려고 한다.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 <신장개업> 세트를 개조해 만든, <공동경비구역 JSA> 판문점 세트 근처에 있는 <나쁜 남자> 세트는 밤을 맞아 더욱 홍조를 띄워갔다. 10월 중순, 한 나쁜 남자와 그의 약한 여자가 나누는 거칠고도 슬픈 사랑이 극장을 찾는다.

글 최수임 기자 sooeem@hani.co.kr

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