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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외투를 입은 작가, 오토 플레밍거 회고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0월18일부터 열흘간 열려

촬영현장의 오토 플레밍거(맨 왼쪽) 감독.

1930년대 말 유럽 전역에서 전쟁의 위협이 증대되고 유대인 학살이 계속되면서 수많은 유럽 감독들은 할리우드로 향해야 했다. 이 시기 미국으로 건너온 프리츠 랑, 빌리 와일더, 리처드 시오드막, 더글러스 서크, 막스 오퓔스 등은 당시 유럽의 모더니즘 미학을 장르영화에 결합시킴으로써 할리우드의 40년대와 50년대를 풍요롭게 했던 이들로 손꼽히며, 이들과 함께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이 바로 ‘오토 플레밍거’(Otto Pleminger)이다. 안정보다는 충돌을, 정착보다는 개척을 추구했던 플레밍거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야 했고, 1950년대 중반부터는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활동으로 자신의 영화 경력을 이어간다. 촬영현장에서는 언제나 독불장군이었고, 스튜디오 시스템과의 마찰뿐 아니라 청교도적인 검열에 맞서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도 일조한 감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플레밍거는 그 어떤 감독들보다 고전 할리우드영화의 안정적인 규범(norm)이 확립되는 데 크게 기여한 감독이다.

미장센에 자신의 서명을 새겨넣다

오토 플레밍거는 자신과 함께 유럽에서 할리우드로 건너간 빌리 와일더의 <제17 포로수용소>에서 독일 나치군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실제의 그는 유대인이었다.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플레밍거는 법률가였던 아버지의 길을 따라 법률을 공부하다 연극에 매료되었고, 17살부터 막스 라인하르트의 극단에서 배우와 연출가로서 경력을 쌓아간다. 20대 중반에 획득한 연극연출가로서의 높은 명성과 영화데뷔작이었던 <위대한 사랑>(Die Grosse Liebe, 1931)의 성공은 ‘이십세기 폭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플레밍거는 할리우드 데뷔작인 <언더 유어 스펠>(Under Your Spell, 1936)을 비롯해 몇 편의 작품을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의 천성적인 반골 기질은 할리우드 시스템과 쉽게 조화될 수 없었고, 영화연출의 기회마저도 박탈당한 그는 연극무대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할리우드로 다시 돌아와 자신의 재능을 보여줄 기회를 얻긴 했지만, 이는 그가 5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낸 뒤였다.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

50년대 연출했던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Arm, 1955)와 <살인의 해부>(Anatomy of a Murder, 1959)와 함께 플레밍거의 흑백영화 걸작으로 손꼽히는 <로라>(Laura, 1944)는 그의 할리우드 재기작이자, 이후 그가 보여줄 작가적 재능을 작품 속에 각인시킨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수수께끼 같은 매력을 지닌 여성인 로라와 그녀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노년의 저널리스트,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로라에게 점차 매혹되어가는 한 젊은 경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필름누아르 스타일로 담아낸 <로라>는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비평가로 활동하던 자크 리베트나 <무비>의 빅터 퍼킨스가 플레밍거의 미장센을 극찬한 이유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연극연출가 출신답게 배우들의 대사연기 지도에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플레밍거는 <로라>에서 각 배우의 캐릭터에 맞는 대사연기를 이끌어낼 뿐 아니라, 로라의 아파트 거실에 걸린 그녀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공간 배치와 움직임, 그들간의 시선 교환 등을 로앵글과 흘러가는 듯한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담아내는 화면 연출은 ‘오토 플레밍거’라는 작가의 서명이라 불러도 좋을 미장센의 정수를 보여준다. 플레밍거는 인물의 심리나 감정, 그리고 인물간의 관계를 미장센된 공간 속에서 보여주려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스타일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감독은 아니었다. 오히려 플레밍거는 표면적으로는 작가의 자의식을 감추고 내러티브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철저하게 동기화(이것이 고전 할리우드영화의 스타일을 규정짓는 규범이다)하는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적 스타일을 두고 ‘보이지 않는 미학’을 구현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가장 할리우드적인 반(反)할리우드 감독

<로라>부터 플레밍거의 또 다른 누아르 걸작인 <타락천사>(Fallen Angel, 1945)를 거쳐 <천사의 얼굴>(Angel Face, 1952)에 이르는 시기는 그가 필름누아르의 시각적 양식과 스릴러의 내러티브 결합시키면서 흑백 화면의 매력을 펼친 시기이기도 하지만, 할리우드 시스템과 결별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한 <로라> 덕분에 안정적인 연출 기회를 얻었으면서도, 섹스와 폭력의 영화적 재현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였던 당시의 검열에 정면으로 맞섰던 <포에버 엠버>(Forever Amber, 1947)를 시작으로 플레밍거는 다시 할리우드의 제작자들과 심한 갈등을 일으켰고, 결국 1950년대 독립영화사인 ‘카를리 프로덕션 컴페니’를 설립하고 제작자와 감독을 겸하기까지 한다. 이후 그의 영화는 더 논쟁적으로 변모하는데, 50년대 플레밍거의 대표작인 <황금 팔을 지닌 사나이>는 마약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해 논란을 일으켰고, <살인의 해부>는 ‘강간 사건의 해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법정에서의 사실적인 대사와 강간 사건에 대한 분석적 태도로 당시의 영화적 관습을 넘어선다. 또한 이 작품은 당시 금기시되는 강간(rape)과 팬티(panty)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검열과 또다시 충돌해야 했다. 플레밍거는 스튜디오의 간섭이나 창작의 자유를 가로막는 검열뿐만 아니라 매카시즘의 광기가 휘몰아치던 분위기 속에서도 공산주의자로 분류되어 영화 활동을 금지당했던 이들과도 함께 작업하는 대담함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특히 <영광의 탈출>(Exodus, 1960)은 당시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대규모 자본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로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시나리오 작가인 달튼 트럼보(Dalton Trumbo)의 실명을 크레딧에 올릴 정도로 그는 할리우드 시스템에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이단아였다.

제작자보다 뛰어난 제작자의 재능

<타락천사>

<로라>

플레밍거가 1940년대와 50년대 초반에 필름누아르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스릴러영화를 주로 만들었다면, 1950년대 이후는 자신의 재능을 다양한 장르나 시네마스코프 같은 새로운 기술과 조우하면서 원숙미를 발휘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 1954)은 모험영화에 서부영화를 결합시킨 시네마스코프영화였고,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 1958)은 멜로드라마, <살인의 해부>는 법정영화, <영광의 탈출>과 <위험한 길>(In Harm's Way, 1965)은 전쟁영화, <버니 레이크의 실종>(1965)는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들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영화를 거치면서도 플레밍거는 언제나 캐릭터를 영화의 중심에 세우고, 이들의 심리와 정서를 보이지 않는 스타일로 묘사하는 초기의 미덕을 버리지 않았다. <영광의 탈출>과 <추기경>(The Cardinal, 1963), <버니 레이크의 실종>을 끝으로 6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들은 그의 영화적 명성에 비해 미흡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작가의 만신전에 오른 시기 역시 바로 이때였다. 미국에 작가 이론을 정착시켰던 앤드루 새리스는 “그의 적들(할리우드 스튜디오 제작자)이 플레밍거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이룬 감독으로서의 성공에는 제작자로서의 개성이 짙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제작자보다 더 뛰어난 감각을 지닌 제작자이자 감독으로 두 가지 모두에서 재능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인물이었지만, 영화 속에서의 플레밍거는 이러한 자신의 능력을 뽐내기보다는 숨길 줄도 아는 미덕을 지닌 감독이었다.

10월18일(화)부터 27일(목)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오토 플레밍거 회고전’은 총 9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그의 최고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로라>와 함께, <타락 천사> <인도가 끝나는 곳>이 필름누아르의 양식미가 두드러졌던 초기 시절의 플레밍거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와 <슬픔이여 안녕> <영광의 탈출>은 그가 다양한 장르 속에 그의 스타일을 결합시켜나가던 시기의 작품들로 프레밍거의 성숙된 연출력이 돋보이던 시절의 작품이다. 끝으로 <워싱턴 정가>(Advise & Consent, 1962)와 <위험한 길> <버니 레이크의 실종> 등은 플레밍거가 냉전의 사회적 분위기를 정치적 소재를 통해 풀어냈던 후기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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