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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아깝네, 저 신은 그냥 넣지’
2001-08-01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

2000년,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자막 영어/한국어/태국어/중국어 화면포맷 2:35:1 지역코드 3

<식스 센스>를 재미없게 본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된다. 내 주변에서도 극장에서 보다가 잠이 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대단히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100%에 가까운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아낌없이 들어줬던 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전작을 등에 업고 차기작을 만들게 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아마도 최고 수준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물론 차기작에 대한 관객의 기대 수준이 너무나도 높을 것이 뻔하다는 사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기작이 아무리 재기 발랄하게 만들어졌다고 해도 만족하기가 힘들어진다. 나도 나름대로는 기대 수준을 낮추자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극장에서 <언브레이커블>을 봤지만, 아쉽게도 상당한 실망감에 휩싸였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억누르고 있던 브루스 윌리스가 끝내 초능력자임을 인정하며 신 비스무리한 무적의 영웅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에서는, 맥이 탁 풀리면서 한숨이 절로 나와버렸을 정도였던 것. 그 부분을 제외하면 스토리 전개도 별 무리가 없고, 각각의 캐릭터도 나름대로 생명력을 갖추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불우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DVD로 출시되자마자 <언브레이커블>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감독에 대한 이상한 믿음 때문이었다. 솔직히 <식스 센스>와 <언브레이커블>이라는 두 작품을 보면서 나는 이 인도계의 젊은 감독이 꽤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전에 언급했듯이 치밀하고 복잡한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에 꼭 극적인 대반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할리우드의 영화 공식에 좀 집착하고 있어 보인다는 점 외에는, 시나리오의 치밀함도 그렇고 관객의 머리를 슬슬 조여오는 내용의 전개도 그렇고 기교 아닌 기교를 부리는 듯한 이미지들도 매력적인 것이 사실인 것이다. 결국 그런 생각은 영화의 제작과정을 담은 서플먼트를 놓치면 왠지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만들어냈고, 결국 나로 하여금 <언브레이커블> DVD를 보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언브레이커블> DVD에 담긴 제작과정과 삭제장면에 대한 서플먼트들은 나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시나리오가 처음 기획되는 단계에서부터 이 영화가 가져야할 구체적인 특징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전체적인 구조를 치밀하게 잡아나가는 단계까지 빠짐없이 보여주는 제작과정은 아주 돋보인다. 더욱이 영화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비주얼 요소인 만화와 관련해서는, 만화 캐릭터들을 등장인물들과 어떻게 접목시켰는지까지 꼼꼼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또 하나의 서플먼트인 삭제장면 모음에 황송하게도 감독이 직접 등장해 잘린 신들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삭제장면을 보면서 ‘흠, 아깝네, 저 신은 그냥 넣지’라며 아쉬워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그중에서도 너무 극단적인 성격이라 이해하기에 약간의 무리가 따랐던 엘리야(새뮤얼 잭슨)라는 캐릭터에 대한 삭제장면 하나는 아주 흥미롭다. 유년기의 엘리야가 놀이기구에서 겪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영화 전체의 이미지를 한 신으로 압축시켜놓은 듯한 위력을 느끼게 될 정도. 이런 풍부한 매력을 가진 서플먼트들 때문에 <언브레이커블>의 DVD 감상은 절대 후회되는 일이 아니었다.

김소연/ 미디오 칼럼니스트 soyou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