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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4] - 부산의 발견 ②
이영진 2005-10-25

<시티즌 독>의 위시트 사사나티앙

상상의 갑옷을 입은 로맨티스트

지난해 말, 타이에서 개봉한 <시티즌 독>은 일찌감치 부산행이 결정된 영화다. 올해 초 방콕영화제에 참석했던 김지석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감독인 위시트 사사나티앙을 만나 초청 의사를 수차례 전했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로테르담과 토론토를 거쳐 프린트를 들고 부산에 다다른 그에게 “올해 출장이 잦은데 회사에서 허락을 해주더냐?”고 물었더니, “영화제 참석은 회사에서 눈감아준다”고 답한다.

타이 최대 규모의 광고회사 필름 팩토리의 일원인 그가 처음 세계 영화계에 존재를 알린 것은 <검은 호랑이의 눈물>(2000)로 밴쿠버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예술대학 동창이기도 한 논지 니미부트르의 <낭낙>의 시나리오 작가로 타이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이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이 초청되면서 유럽의 환대를 받았고, 이후 펜엑 라타나루앙,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등과 함께 타이영화를 이끄는 삼두마차로 꼽히고 있다.

데뷔작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그의 두 번째 영화 <시티즌 독>은 방콕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영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군상이 연거푸 등장하는 이 영화를 두고 그는 “대도시의 소인들(Big City, Small People)에 관한 스케치”라고 말한다. “상품에만 브랜드가 달린 것이 아니다. 도시에 사는 인간들에게도 브랜드가 매겨져 있다.” <시티즌 독>의 인물들은 허풍에 들떠 있거나 강박에 시달리거나 우울에 빠져 있거나 독선에 사로잡힌 인물들이다. 그런 인간들을 바라보는 일이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닐 텐데, 그는 재기발랄한 상상으로 콤플렉스 뭉치들을 포근하게 감싸안는다. “방콕 외곽의 쓰레기장에 한 송이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쓰레기산은 거기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거대한 쓰레기산은 이들의 콤플렉스가 치유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설령 현실에선 가질 수 없는 판타지의 열매라고 해도, 욕구결핍이던 폿과 욕구과잉이던 진이 서로를 껴안는 장면에선 위안의 메시지가 전해져온다. 배우나 관객 모두 가릴 것 없이 서로가 서로를 어루만지는 한편의 사이코드라마처럼, <시티즌 독>은 비정상 궤도를 달리다 폐기처분되는 도시인들을 위한 안정제다.

<시티즌 독>

그가 만들어낸 2편의 영화는 천연염료를 뽑아내서 스크린에 일일이 덧칠한 듯한 강렬한 원색의 조합이지만, 각각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있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의 색감은 일부러 이국적인 정서를 강조했고 또 뮤직비디오처럼 찍었다. 반면 <시티즌 독>은 간판으로 도배된 방콕의 풍경을 과장하기 위해 형형색색의 컬러들을 사용했다. 플롯은 TV 상업광고를 염두에 뒀다.” <시티즌 독>은 광고에서 쓰는 다빈치 프로그램을 활용, 전작의 2배인 6개월 동안의 후반작업 기간이 필요했다고. “전작이 과거의 사랑 이야기였고, <시티즌 독>이 현재의 사랑 이야기라면, 혹시 다음 작품 <님플리 소스>는 미래의 사랑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과거로 거슬러올라간다”며 흥미로운 설정 몇 가지를 슬쩍 들려준다. “태어날 때부터 손 대신 요리도구가 달린 어떤 남자가 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운명에 따라 해적들의 왕이 되고, 동시에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게 된다.” 타이의 온갖 민담을 뒤섞어 네버 엔딩 스토리처럼 묶어낼 것이라는 그의 신작은 약 100만바트(3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대작. 프랑스 뤽 베송이 투자하기로 한 이 작품은 2년 정도의 제작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을 구원한다고 믿고 있다.” 상상의 갑옷을 입고 나선 이 로맨티스트의 환상록을 언제쯤 맛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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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동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