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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을 지배한, 너! <터부>

이장호 감독이 젊은 시절에 자기를 몹시 괴롭혔던 두 가지 중 하나가 성욕이었다고 말한 걸 어디선가 읽었다. 하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하나가 성욕이었다는 게 뚜렷이 떠오르는 건 너무나 공감가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10대와 20대의 너를 지배했던 8할은 성욕이었다”고 신이 말한다면, “좀 과장하셨네요”라고 항변할지언정 부인할 재주는 없을 것 같다. 그 성욕의 기억을 거슬러오르다보면 맨 앞자리에 포르노영화가 도사리고 있다.

81년 봄, 중학 2학년의 까까머리는 포르노라는 충격적인 ‘유사 기록영화’에 발을 디뎠다. 화창했던 토요일 오후 어쩐 연유로 그다지 친하지 않던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갔다. 그 집 안방에는 VCR이란 처음 보는 기계가 놓여 있었고, 친구는 장롱 속 와이셔츠 상자에 가득 찬 테이프들 가운데 하나를 꺼내서 한 토막을 보여주었다. 오오, 이럴 수가. 저걸 저기에 저렇게 넣고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 앞으로, 뒤로, 서서, 앉아서…. 이럴 수가, 입으로도 하는군. 나에겐 ‘전율’이란 단어를 쓰기에 딱 적절한 상황이었다. 멍하고 있던 사이, 옆에 있던 외교관의 아들이라던 친구의 친구는 돈까지 쥐어주며 “좀더, 좀더 보자”며 조르고 있었다. 욕구를 몸으로 발산하는 현장을 목격한 뒤 내 몸은 달라져 있었고, 대학에 들어가서 첫 여자친구와 첫 경험을 하기까지 그 긴 시간을 자위로 버티는 건 확실히 고역이었다. 그 사이 나에게 포르노를 본다는 건 부족하나마 성욕의 대리충족이었다.

이때부터 길고도 처참한 ‘포르노 순례’가 시작됐다. 그 친구의 집에서 올리비아 뉴턴 존이 기막히게 예쁘게 나오는 <그리스>나 사이버 캐릭터가 처음으로 등장한 <트론> 등의, 당시로서는 진귀한 영화도 볼 수 있었지만 그런 걸 제대로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8mm 영사기를 가진 또다른 친구의 집으로(친구의 부모님이 다른 용도가 전혀 없는 이 기계를 왜 구입했을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오락실 뒤편 구석방에서 500원에 한편씩 틀어주는 사설 비디오방으로, 심지어 겨울날 젊은 아줌마가 1천원을 받고 틀어주던 평범한 가정집의 싸늘한 냉방으로 전전하고 다녔다. 물론 포르노를 악마적 바이러스로 취급하는 법망을 피해 지하 유통망에 선을 대고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평일에는 교과서를 붙잡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여학생들과 건전한 친교시간을 보내는 우등생이자 모범생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 와중에 어디선가 마주쳤던 게 포르노의 걸작 <타부>였다. 행위 자체에 몰두해 그 짓을 지루하게 반복하던 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캐릭터와 스토리, 화면의 속도 등 영화의 온갖 요소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근친상간이라는 주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웃집 남자와 부정을 저지르는 엄마는 자기 가족에게 한없이 엄격한데, 반항적이던 딸이 이웃집 남자의 은밀한 타액을 가져다 엄마에게 모욕을 주고는 아빠와….

그건 성욕을 무작정 착취하려드는 여느 포르노와 분명히 달랐다. 웬만한 영화 못지않은 연출력을 보여준 <타부>는 ‘포르노에서 누가 스토리를 찾아’라는 상식을 깨주었고, 누군가 정해준 금기를 ‘요것 봐라’ 하며 과감히 깨버리는 현장을 목격한 첫 사례가 되었다. <타부>를 모작한 수많은 포르노가 쏟아져나왔지만 <타부>를 능가하는 작품을 이제껏 보지 못했다. 금기의 선을 넘는 행위에서 고혹적인 쾌감을 치환해내는, 이렇게 고도로 계산된 영화를. 제도와 도덕을 이렇게 무섭게 조롱하는 영화를.

<쉘 위 댄스>와 <으랏차차 스모부>를 만든 수오 마사유키 감독을 비롯해 일본의 몇몇 뛰어난 감독들이 핑크영화로 불리는 소프트 포르노에서 영화인생을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자연스레 받아들였던 건 <타부>에 대한 기억이 컸다.

누군가 나름대로 기구한 우리 집안을 들여다보고는 “4남매 중 한명은 초록물고기가 나올 만한데 신기하게 그렇지 않네”라고 감탄한 적이 있다. 나를 여전히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유물론이지만, 인간이란 게 참 오묘해서 환경이 사람을 완벽히 좌지우지하지는 못한다고 믿는다. 포르노의 세계에 빠졌으면서도 강간 충동을, <타부>에 감탄사를 연발했으면서도 근친상간의 욕구를 느껴본 기억이 없다.

포르노 순례기가 나만의 특별난 경험이었을 리 없지만, 특별난 믿음은 갖게 해주었다. 청소년을 그리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는 거다. 누구나 겪어봐서 알겠지만 청소년의 감수성은 격정적이어서 그만큼 위태로워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들을 무조건적인 보호와 격리의 대상으로 보는 건 또 하나의 파쇼로 보인다. 청소년의 욕구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건 위선이다. 어른스럽게 대접한 만큼 어른스러워지는 게 아닐까.

서른이 넘어서야 나를 마구 휘둘러대던 성욕과 친구처럼 지내게 됐다. 삐딱한 성교육 선생이 되어준 포르노에서도 비로소 풀려났다. 그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