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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칼럼] 시청률 3%대 드라마에 대한 몇 가지 변명

“불륜을 다룬 통속 드라마를 밤 시간대에 누가 보겠나?” “불륜의 사랑을 지켜보긴 하겠지만 연서와 윤재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요즘 MBC의 <가을 소나기> 홈페이지는 이런 종류의 시청자 의견들이 줄을 잇는다. 둘도 없는 친구 규은(김소연)과 그 친구의 남자 윤재(오지호)를 사랑하는 여자 연서(정려원)에 대한 이야기다.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이 사랑을”이라는 카피에서도 짐작 가듯이, 눈물 꽤나 뽑기로 작정한 드라마고 실제로 나를 포함해 많이 울고 불고 하는 모양이다.

시청률이 한자리수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져있는 이 드라마의 ‘부진’은 오히려 드라마의 ‘히트’보다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현상까지 생겼다. 딴은 그렇기도 하다. 정려원이라는 인기절정 히로인이, 눈만 뜨면 왕방울만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캐스팅 몰이를 했으나, 이 방송사에게는 경악스러울 만한 사상 최저의 시청률이라는 결말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시청률은 복잡다단한 변수의 복합체

눈물의 여왕, 정려원이 무색한 시청률

요즘 드라마들이 여러모로 착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시절이 하 수상할수록 ‘건전’ 드라마가 대중의 정서를 파고든다는 것이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가을 소나기>가 불륜을 다룬 통속적인 이야기여서 “착한 드라마”를 원하는 대중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아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분석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드라마의 시청률은 드라마 자체로만 따질 수 없는 여러 가지 변수들, 예를 들면 그 시간대에 방송되는 다른 드라마들의 아우라(이걸 보고 요즘 대진운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특정 드라마를 화제로 만들만한 거리를 찾는 언론, 드라마 캐릭터와 출연 연기자들의 사적 생활과의 연관성, 하다못해 채널 고정이 결과적으로 유도되는 바로 전 프로그램까지가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만 하는 복잡 미묘한 현상이라 사료된다. 게다가 시청자들이 특정 드라마를 즐겨보는 이유들도 제각각이어서, 연기력 부족이라든가 구성의 허접함을 다 용서하면서까지 그것을 봐야만 하는 단 1%의 진실도 있다. 때문에 시청률을 가지고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좋아하네, 싫어하네를 운운하는 건 솔직히 못 믿겠다.

게다가 더욱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불륜 드라마라는 네이밍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불륜’이란,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의 ‘도가니탕’이다. 사랑하고, 미워하다가 또 안쓰러워지고 이해할만하고, 그러다 다시 지겨워지고 힘들어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아주 풍부하게 드러내줄 수 있는 소재란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진들이 이런 도가니탕을 포기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문제는 불륜 자체가 아니라, 그 관계에 얽혀있는 인간들의 감정을 얼마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가, 혹은 우리가 ‘윤리적’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풍부한 관계를 얼마만큼 진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가 아닐는지. <가을 소나기>의 등장인물들이 요즘 드라마 주인공들 같지 않게 하나같이 우울의 극단을 달리고 있지만, 우울이란 인생의 어떤 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 않은가?

자신도 어찌 못하는 사랑에 대한 세 사람의 감정

다른 건 몰라도 <가을 소나기>가 세 사람의 관계가 드러난 상황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는 성공한 듯싶다. 용서를 빌러 온 연서에게 “너에게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라며 친구를 계속 미워해야만 자기가 덜 아플 것 같은 마음을 표현하는 규은, 친구에게 용서를 빌고 싶지만 아이도 포기할 수 없는 연서, 마음 깊은 곳에 절절히 흐르는 연서에 대한 사랑을 잊은 척 규은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윤재, 이들 모두 삶과 사랑이 주는 아픔과 상처를 꾸역꾸역 부여잡고 살아가는 인물들로 느껴진다. 세 사람에게 ‘누구를 사랑하는 일’은 뻔한 각본에 따라 해결되어야할 불륜의 레파토리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내 마음은 아프지만 너는 안 아팠으면 좋겠는, 섣불리 이름 붙이기 무서운 상황이지만 잘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을까.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세상에서 말하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나의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불륜이야”라고 단정 짓기 이전에 끙끙 앓다가 포기할까, 혹은 끝까지 욕심부려볼까 고민하지 않겠냔 말이다.

‘불륜’이란 자신에게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고 ‘그 짓’을 저지른 두 당사자들은 벌을 받아 마땅한 나쁜 인간들이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그리 예측 가능하거나, 우리의 윤리가 그리 탄탄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윤재가 소위 ‘바람을 피워서’(그것도 아내가 죽을지 살아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와 정분이 난 ‘나쁜 남자’로 생각되지 않는 것만 봐도 이 드라마의 미덕은 있다. 그 미덕이 거기까지라 해도 그리 불만 가질 일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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