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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고 인간에 버려진 로봇 소년의 사랑찾기
2001-08-03

<에이.아이.(A.I.)>는 스탠리 큐브릭이 브라이언 앨디스의 단편소설을 1983년에 접하고서 영화화를 결심한 아이템이다. 큐브릭은 94년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감독을 맡을 것을 제의했고, 둘은 짬짬히 이 작품에 대해 상의해오다 99년 큐브릭이 죽은 뒤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고 영화로 완성했다. 영화 속에 큐브릭 영화의 이미지들을 넣어 그에게 헌사를 바치는 대목은 있지만, 자막에 그 이름은 올라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전적으로 스필버그가 책임져야 할 스필버그의 영화일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고나면 큐브릭이 애초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것일지가 궁금해진다. 영화가 완전히 스필버그적인 데다, 좀더 나쁘게 말하면 인간의 감정까지 지닌 로봇을 만들어 놓고는 굳이 이전부터 해왔던 이야기를 다시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정에 입양됐다가 버려진 소년 로봇이 엄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인간이 되고자 애쓰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 안에서 인간에 대한 불신을 내뿜는 큐브릭의 독설이나 아이러니를 찾기가 힘들다.

먼 미래. 하비 박사(윌리엄 허트)는 한 연구발표회에서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다른 참석자가 묻는다. “그러면 인간은 로봇의 사랑에 대해 어떻게 책임지죠?” 하비 박사의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 때도 인간에게 사랑받고 싶어서였을 거야.” 그러면 영화는 창조주가 돼서도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간을 그릴까, 아니면 인간을 닮아 피창조물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로봇의 비극 또는 어리석음을 그릴까?

2년 뒤 하비 박사는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소년 로봇 데이비드(할리 조엘 오스몬트)를 만들고, 데비이드는 한 가정에 팔려 `입양'돼 엄마의 사랑을 받지만 이런 저런 사연으로 숲에 내다 버려진다. 여기까지 영화는 앞의 질문에 화답을 하는 것일 수 있지만, 할리 조엘 오스몬트의 징그러울 정도의 연기까지 가세해 소년 로봇에게 너무 많은 감정이입을 의도한다. 그게 로봇이건, 피노키오이건, 외계의 집에서 버려진 `이티'이건 관객의 마음 속에선 다 같은 불쌍한 한 소년이 돼버린다. 그 뒤부터는 이 소년이 가정을, 엄마의 사랑을 되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말하는 전자 인형 곰 테디, 남창으로 만들어진 로봇 지골로 조(주드 로) 등 유순한 데이비드의 동반자들은 이상한 나라를 방문한 앨리스 일행 같기도 하다.

큐브릭이 쓴 초고에서는 데이비드를 입양한 엄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데이비드를 싫어했고 로봇 지골로 조도 공격적이고 비꼬인 성격이며, 그 초고대로라면 관람등급이 `R'(미성년자 관람 제한)이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에이.아이.>는 미성년자도 볼 수 있는 `PG-13'이다). 스필버그는 행복한 가족을 찾기 위한 소년의 모험담으로 80년대 이후 미국 사회의 가족회귀 정서를 대변하는 감독이 됐다. 큐브릭의 속뜻은 알 수 없지만 스필버그가 각색한 방향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것만으로 영화를 단정할 수 없다. 데이비드의 여정에 등장하는 미래의 도시 루즈 시티, 물에 잠긴 맨하탄의 모습에서는 낯선 스펙타클을 연출하는 데 전공인 스필버그의 솜씨가 여실히 살아나며, 144분 동안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 이야기가 공간과 리듬을 바꿔가며 긴장감을 이어간다. 또 해피엔드라고 부르기 힘든 결말이 스필버그 영화답지 않게 서늘하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는지 미국에서도 이 로봇 소년 이야기는 개봉 두째주부터 1등에서 물러났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