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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21세기로 걸어나오다 [1]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기생에 대한 여섯 가지 진실

옛날, 기생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처럼 보름달 같이 둥근 얼굴에 백지장 같이 새하얀 피부, 앵두 같이 작은 입술을 가진 나긋나긋한 미인들이었을까? 아쉽게도 이런 이미지는 단지 우리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기생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사대부와 정치를 논하는 논객에다가, 소리와 춤에 능한 예능인이요, 당당하게 연애를 즐기던 신여성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 기생에 대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6가지 진실들을 공개한다.

첫째, 기생은 다소곳한 미인이었다?

반만년 한민족 역사 이래 기생들을 몽땅 무덤에서 불러내어 일렬로 세워놓고 평균을 따져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미인이 기생의 기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기 황진이라고 딱히 미인은 아니었다. 대단한 미인들이야 구중궁궐로 불려 들어갔을 테고, 저잣거리의 기생들은 서화에 능했고 소리와 춤이 반할 만했지 박색 기생이 허다했다. 또한 여성스럽고 단아하기보다는 통이 크고 거침없이 괄괄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매일 밤 술자리가 질펀했을 텐데 내숭을 부려본들 그 하 많은 날을 버틸 장사가 어딨냐 말이다. 믿지 못하겠다고? 사람 후리는 매력이야 얼굴만 요소가 아닌 터에, 요즘 같은 얼짱 각도로 조선 선비 치켜봤다간 귀싸대기 한판에 매운 코끝 잡고 돌아서기 딱 좋지 않겠는가.

둘째, 장금이가 기녀였다고?

의녀 장금이

내의원은 왕의 약을 조제하고 왕실의 병을 돌보는 기관이고, 혜민서는 서민의 질병을 돌보는 일을 맡는데, 드라마 <대장금>을 꼼꼼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의원과 혜민서의 의녀, 우리의 장금이가 왕 앞에서 술을 따를 뻔한 대목이 있다. 중종 때 기묘사림들이 기생 혁파를 주장해서 한때 기생제도가 폐지된 탓에 의녀가 궁중 연회에 불려다니게 된다. 기생제도는 나중에 기묘사림이 권력을 잃자 다시 생겨나지만 이때는 이미 의녀를 기생 취급하는 세태가 만연했다. 게다가 기생을 정기적으로 궁에 바치는 제도가 무너지면서 더욱 본격적으로 의녀가 궁에서 기생 역할을 하게 된다. 원체 잘나서 갖은 풍파 요리조리 잘 피했던 장금이만 민정호랑 잘 먹고 잘살았다네.

셋째, 기생과 권력의 밀월 관계는?

단발한 모습의 기생, 강향란(1900~?)

조선시대 기생은 관의 노비, 즉 천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양반을 상대했다. 궁궐을 드나들기도 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몸을 팔기도 했지만 왕의 무릎에 턱을 고일 수도 있었던 존재, 철통같은 조선의 계급사회를 지그재그로 가로질렀던 유일한 존재가 기생이다. 기생들이 상대하는 계급이 천양지차인 만큼, 또한 정치적인 식견도 풍부할 수밖에 없었다. 유학자들과 대화가 될 정도이니 뭐 긴말로 새삼 토 달 필요도 없겠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기생들의 식견과 소양은 시대의 역동성과 함께 급물살을 탄다. 분명 기생은 봉건시대의 서비스 업종으로 당시 신여성과 여학생이 급부상하는 1910년대 경성의 주변부였다. 하지만, 조선의 요릿집이 지식인들, 모던 보이들의 친교 마당, 아지트였던 만큼 그들의 술잔을 채우며 대화의 장에 함께했던 기생들은 새로운 문명에 쉽게 젖어들었다. 기생 강향란이 단발로 스캔들을 일으켰듯, 20, 30년대 대중문화를 선도하면서 유행가 가수와 영화배우로 세간의 비난과 이목이 집중됐다.

기생잡지 <장한>

이 와중에 기생잡지 <장한>(長恨)의 출판은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용감한 시도였다. 기생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 혼란을 극복해보자는 의도였는데, 표지 그림에는 “조롱 속에 이 몸을 동무여 생각하라”는 카피와 함께 조롱 속에 갇힌 기생의 모습이 보인다. 창간호가 폐간호가 된 것으로 짐작되지만 “외국인이 본 조선의 기생”이라는 큰 제목으로 ‘조선적(朝鮮的)의 기생이 되라’ ‘고상한 품격을 가지라’ ‘예술적 기생이 되라’ 각각 일본인, 미국인, 중국인의 글을 게재하고 앙케트를 할 정도로 잡지의 구색을 고민한 양이 역력하다. 이 시대 기생들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가장 먼저 한복에 우산을 받쳐들고 서양식으로 머리를 틀어올리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대적 질문으로 경성거리를 오염시켰다. 이때의 기생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사회 안에 자리매김하려 한 것이다.

1920∼30년대 문인♥기생 러브스토리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문인과 기생 사이의 연정은 낯선 소재가 아니다. 하물며 ‘연애’라는 말이 처음 수입, 번역되고 사용되기 시작했던 1910년대에는 ‘로망’을 타고 각종 연애담이 봇물을 터뜨린다. 혹자는 본격 연애의 시대가 열리기에 앞서 스타일은 있으나 소통 문법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여학생’의 전초전으로 기생이 연애 도마에 먼저 뛰어든 셈이라는데, 이치상으로 따져 들어가려들면 사랑이야 비듬도 안 날리는 신기루 같은 것. 자신의 기생 ‘여친’에 대해 뒷담화부터 순정 바친 예찬 및 열띤 스토커 행각까지 문인, 기생간 애정 구걸이 이러저러했으니.

김유정

박녹주

박녹주와 김유정_ <봄봄>의 천재작가 김유정은 기생 박녹주를 열렬히 짝사랑했다. 명기명창으로 송만갑의 사사를 받고 각종 레코드사에서 음반을 취입하는 유명인이었던 박녹주는 자신보다 연하인데다 학생인 김유정을 받아주지 않았다. 김유정은 매일 한통씩 편지를 보내며 안달했다. ‘간혹 길가에서 나는 당신을 보았소…’, ‘목욕을 하고 오는 자태는 정말 이쁘게 보였노라…’,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결국 김유정은 33살의 나이에 결핵으로 죽게 됐고 박녹주에게는 부음과 함께 ‘니가 죽였지’라는 김유정 친구들의 저주가 전해졌다.

이효석

왕수복

왕수복과 이효석_ 기생 왕수복은 본명 ‘왕성실’이라는 이름값을 하느라, 평양 기생학교에서 부지런히 노래 연습을 한 끝에 16살에 직업 가수가 되더니, 서른장이 넘는 음반을 내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나 요란한 언론과 세인의 주목에도 불구하고 그의 꿈은 시인이나 소설가 남편을 만나 낭만적인 살림을 내어보는 것이었다. 훗날 그는 평양 ‘방가로’ 다방 마담이 되는데, 이때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을 만나 연인으로서 그의 임종을 지켰다고 하니… 약간 허탈하긴 해도 반쯤 소원성취한 셈.

금홍이와 이상_ “십팔가구에 각기 밸너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안해는 특히 아름다운 한 딸기의 꽃으로 이 함석 지붕 밑 볓 안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 이상의 <지주회시>

1935년 초 금홍이의 두 번째 가출 이전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에서 이상이 금홍이를 염두해둔 묘사다. 배천온천에서 만난 이상과 기생 금홍이의 관계는 2년 반 정도로 추정된다. 금홍이는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이상이 본격 교제한 첫 여인이자 가장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여인이었으며, 이상이 유일하게 ‘안해’라는 표현을 쓰면서, “내 의지대로 작용하지 안”아 속을 태웠던 요부로서의 여성상을 그의 작품에 드리웠다.

길상사

자야와 백석, 그리고 길상사_ 이상과 금홍이가 종로 우미관 뒤편에서 동거를 하고 있던 즈음 시인 백석과 기생 진향이 명륜동에 살림을 차렸다. 백석은 어느 날 <당시선집>을 뒤적이다가 이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 ‘자야’라는 이름을 그녀에게 지어주는데, 훗날 연인 백석과의 회고담을 그린 책 <내 사랑 백석>(1995년, 문학동네 펴냄)의 필명 ‘김자야’가 이때 탄생한 것이다. 백석 부모의 반대로 혼인을 치르지는 못했지만 백석은 자야와 살던 이 3년 동안 그 사랑에 기대어 여러 편의 서정시를 쓴다. 서울과 함흥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던 그가 이북에 가 있는 사이에 분단이 되면서 자야는 백석을 잃는다.

자야는 이후, 3공화국 시절 3대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의 주인으로 기세를 날리다가 1999년 여든세살로 숨지기 전 1천억원대의 부지와 건물을 길상사 회주이자 <무소유>의 저자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다. 지금의 길상사다. 성북동 고즈넉한 언덕에 자리한 길상사 한켠에는 성모 마리아와 관세음보살의 영성, 영상을 합친 자애로운 불상이 연인을 잃었지만 영원보다 깊은 사랑을 간직해온 자야, 기생 진향의 마음을 닮고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중에서

관련영화

도움말: 작가 이현수, 중앙대 신현규 교양학부 강사 참고자료: <말하는 꽃, 기생>,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꽃을 잡고> <연애의 시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펴냄, 200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