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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길리엄의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저주> [1]
오정연 2005-11-21

현대영화의 돈키호테, 마녀를 만나다

옛날 옛적.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험악한 늑대와 흉악한 마녀가 숲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을 유혹하던 시절. 그리고 그 아이들이 사랑과 지혜와 용기를 무기삼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무렵. 현실 세계와 마법의 세계가 그처럼 완강하게 연결되어 있던 그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여년 전 막을 내렸다. 19세기 초반에 활동한 그림형제는 점차 힘을 잃어가던 그 마법의 흔적을 기록한 이들이다. 그들이 남긴 동화는 지금까지 전세계 어린이들의 꿈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누군가, 아직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채 우리의 무의식 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마법의 세계를 영화로 만든다면. 떠오르는 이름은 그리 많지 않다. 꿈이나 환각으로 희미하게 떠오르는 야성, 혹은 본능을 계기로 여지껏 알던 것과는 달라진 세계와 대면하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던 테리 길리엄. 그런 그가 그림형제를 주인공으로, 현실과 환상이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는 어떤 시대를 영화에 옮긴다는 소식은 길리엄과 그림형제 동화의 기괴한 매력에 사로잡힌 오랜 팬들 모두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성적 세계에 돌을 던져라

현실과 판타지라는 정반대의 세계에 경도된 윌(맷 데이먼)과 제이콥(히스 레저)의 명백한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하는 <그림형제>는, 가구를 부숴 장작을 삼을 정도로 가난했던 형제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한다. 유일한 장난감인 목마를 난로에 집어넣는 순간 뛰어들어온 아이는, 기대감에 가득 찬 엄마와 형에게 마법의 콩을 보여준다. 마지막 암소와 바꾼 그 콩이 지닌 마법의 힘을 굳게 믿는 동생을 향해, 일찌감치 현실에 눈을 뜬 형은 분노의 일격을 날린다. 그리고 15년 뒤. 마을에 깃든 귀신을 쫓아주고 돈을 받는 사기꾼 퇴마사, 그림 형제의 갈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 군대의 주둔으로 인해 사나워진 숲, 마르바덴을 길들여주겠다며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법 진지하게 연설하는 윌은 실리와 셈에 밝은 현실주의자. 어릴 적부터 각종 이야기들을 꼼꼼히 기록해온 제이콥은 언제나 덤벙대고, 여전히 마술을 믿는다.

이성과 판타지, 현실과 마법의 대립은 인물만의 것이 아니다. 그림 형제가 생존했고, <그림형제>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19세기 초의 독일은 계몽주의로 무장한 나폴레옹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곳이다. 언어학자이고 문헌학자였던 역사 속의 그림 형제는 독일 곳곳의 민담과 전설을 모아, 야만인 취급을 받던 독일인의 민족적 긍지를 살려주었다. 실제 그림 형제의 일생과는 하등 상관없이 이름만 빌려온(심지어 실존 인물인 빌헬름 그림은 야코프 그림의 형이 아니라 동생) 영화 속 그림 형제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성 앞에 꼬리 내리고 이야기 속으로 뒷걸음질치던 마술과 판타지를 현실과 동등한 대결 상대로 끌어들인다. 마을의 아이들이 한명씩 실종되는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윌과 제이콥은, 혹세무민하는 형제를 일망타진하겠다고 찾아나선 프랑스 군대와 실제로 숲을 지배하는 저주의 주인인 거울의 여왕(모니카 벨루치), 두 가지 모두에 맞서 싸움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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