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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편법 있으면 소개시켜줘, <행복주식회사>
강명석 2005-11-24

롤 플레잉 게임이 된 ‘만원의 행복’

MBC <행복주식회사>의 ‘만원의 행복’은 매우 ‘교육적’인 프로그램이다. 연예인 게스트가 1만원으로 일주일을 나는 과정을 통해 절약정신을 가르친다는 따위의 얘기는 물론 아니다. 절약정신을 보여주겠다면 안 먹고 안 쓰면 된다. 하지만 그런 게스트는 거의 없다. 대신 어떻게든 공짜로 먹을 방법을 연구한다. 동료 연예인들한테 먹을 걸 달라고 하는 건 기본이고, 출연 프로그램 중에 나온 음식을 정신없이 먹기도 한다. 그러자 그것을 규제하는 룰이 생긴다. ‘출연 프로그램에 나온 음식은 촬영 중에만 먹을 수 있다’는 식으로 식사 기회를 제한하는 것이다. 하지만 게스트들은 끊임없이 룰을 어기지 않는 선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 하고, 덕분에 룰은 점점 복잡해진다. 최근에는 아예 ‘행복법’이라는 것까지 만들어졌다. ‘행복법 9조 1항 빌붙기(다른 사람들에게 식사를 신세지는 것) 허용권이 당첨된 도전자에게는 1회에 한하여 빌붙기가 허용된다’는 식이다.

즉, ‘만원의 행복’은 어떻게 ‘편법’이 생기고, 어떻게 그것이 룰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예상하지 못한 편법이 등장하자 그것을 규제하는 룰이 생기고, 그 과정이 반복되자 아예 ‘법제화’된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성격은 연예인이 얼마나 많이 배고픔을 참으며 절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연예인들의 선택이 중요해지는 롤 플레잉 게임이 된다. 처음에는 안재환처럼 산과 들로 나가 먹을 걸 구하는 구두쇠형 연예인이 무조건 이겼지만, 갈수록 룰을 잘 이용하는 연예인들이 이기게 된다. 또 단지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룰을 어떻게 활용해서 자신의 어떤 모습을 시청자에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해진다. 너무 절약만 하면 짠돌이처럼 보이고, 너무 편법을 즐기면 약삭빠를 수 있다. 때론 이민우처럼 상대방을 속인 것이 미안하단 이유로 ‘거금’을 들여 초콜릿을 사주는 게 게임엔 불리해져도 자신의 캐릭터를 보여주기엔 더 좋을 수 있다. 카리스마적인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은 ‘떨어진 음식은 먹을 수 있다’라는 규칙 앞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까. 선택에 따라 자기 이미지가 달라진다. 요즘 ‘만원의 행복’은 연예인들이 2주 내내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숨겨진 ‘좋은’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는 은근히 복잡한 게임이다. 그리고 애초의 주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쪽이 훨씬 더 재밌는 게 사실이다. 편법은 법의 테두리에 들어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법은 애초의 목표 대신 ‘어기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든다. 뭐,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걸지도 모른다. ‘만원의 행복’도 ‘돈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취지로 시작한 <행복주식회사>의 한 코너였지만, 이젠 <행복주식회사>란 ‘명분’만 유지한 채 한 시간 내내 ‘만원의 행복’만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됐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