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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윤종찬 감독 판타스틱영화제 초청
2001-08-07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윤종찬 감독(38)의 장편 데뷔작 <소름>이 올해 한국영화의 발견으로 꼽히고 있다. 장르로 따지면 일단 스릴러 공포물로 봐야겠지만, 이것만으로 <소름>의 독특한 색깔을 다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다. 또, 빛과 어둠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실사조명이나 스릴러 형식에 걸맞지 않는 롱테이크(길게 찍기)같은 기술적 시도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실험이지만 완성도는 높다. 스페인의 시체스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가 일제히 <소름>을 초청했다는 최근 소식도 이 영화가 지닌 별스런 개성을 뒷받침해준다. 아무튼 `다음에는 도대체 어떤 걸 찍을까'라는 궁금증을 일으키는 예측불가능의 감독은 많지 않다.

이야기 전개에서 인간과 인간이 맺은 우연이 지독한 악연으로 바뀌는 순간이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 내부 공간이 끊임없이 내뿜는 냉기가 <소름>이 주는 심상치 않은 공포다. 이건 윤 감독 개인의 경험과 느낌이 '전이된 결과'다. 지난 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사랑하던 아내를 잃으면서 '자신과 무관해보이던 사회 문제나 폭력의 실체가 눈 앞에 닥쳐오는 당혹과 무서움'을 겪었다. 이후 영화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98년 여름에는 사회의 이상한 공기가 유난스러워 소름이 돋았다. "한 집 건너 매춘이 행해지고, 먹고 마시는 쾌락의 극단이 있는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한정없이 냉소적인 이들이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이런 게 영화 속 아파트 복도의 이상한 기운으로 옮겨졌다."

한국영화를 지배하는 한 흐름에 대한 '반발'도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낸 기폭제였다. "지난 10년 동안의 주요 데뷔작들은 일상 혹은 소시민이란 화두에 지나치게 집착해왔다. 이 주제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신인 감독의 패기와 도전이란 점에서 나는 달리 가고 싶었다. 앞으로도 그럴거다."

<소름>은 한국영화가 지닌 제작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냄과 동시에 극복했다. 이 영화로 배우의 위상을 새로 세운 장진영씨나 촬영·조명 등의 스태프들은 윤 감독의 촬영 방식에 꽤 오래도록 곤혹스러워했다. "조명의 경우, 오버로 찍고 색보정 단계에서 어둡게 해 위험부담을 줄이는 방식이 한국영화의 관례이지만 보통보다 네 단계 정도 낮게(어둡게) 갔다. 장면 전환도 보통 영화문법과 달리 했다. 인물의 뒷모습을 찍으면 그 다음 앞모습으로 가는 게 일반적인데 뒷모습만 찍고 끝내는 식이었다. 해본 적이 없는 걸 하니 스태프가 불안해하는 건 당연했다."

실험을 위한 실험은 아니었다. 허름한 아파트 공간은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소시민의 애환을 담는 게 자연스럽지만, 영화 내용은 기이할만큼 극적이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결과는 다행스러웠지만, 질을 높여주기는 커녕 오히려 깎아먹을 것만 같은 현상 등의 후반작업이 윤 감독을 애태웠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아쉬움도 물론 남아있다. "어떤 장면에 이르면 아찔할 정도로 장르 영화에 기울어 있음을 느낀다. 좀더 냉정했어야 하는데…. 기법적으로 좀더 과감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얼굴에는 자신감이 흐른다. 그건 오만함이 아니라 믿음직스러운 종류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