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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딱하게 보기] 벗겨진 일기장의 모호한 욕망, <치터스>

<치터스>의 한 장면

배우자나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면? 물어본다고 말할 리 없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뒤를 캐는 것이다. 직접 할 수도 있겠지만 해외에서는 주로 탐정들에게 부탁한다. 탐정이 없는 한국에서는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이용한다. 그런데 미국에는 <치터스>라는 아주 유용한 프로그램도 있다. 의심이 가면, 그저 전화해서 부탁을 하면 된다. 부정이 확실하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얼마나 기특한 프로그램인가.

일단 상대를 미행하고 확실한 심증을 잡으면, 도청기나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여 물증을 확보한다. 상대가 바람을 피우는 순간, 의뢰인이 전화를 하여 어떤 거짓말로 둘러대는가를 보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모든 증거가 갖추어지면 의뢰인과 함께 현장을 급습한다. 진행자는 바람 피운 이유를 물어보고, 당사자들은 대부분 재빨리 자리를 뜬다. 시간이 흐른 뒤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인터뷰도 한다. 완전히 관계가 끝장나는 경우도 있고, 상대를 용서하고 행복한 삶을 꾸리기도 한다.

불륜이야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니, 그 풍경을 보는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치터스>의 놀라움은 그 관계의 다양함이다. 친구의 배우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은 다반사. 가족, 친척, 친구, 직장 동료 등등 사랑에는 어떤 장벽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성 애인의 뒤를 캐보니, 상대가 바로 남동생인 경우도 있다. 곰곰 생각해보니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이성애자라는 것이다. 토크쇼인 <제리 스프링거 쇼>가 더욱 엽기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리얼리티쇼인 <치터스>는 보통 사람들의 연애 지형도가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얼굴 대부분이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의뢰인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럴 경우는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다. 그런데 수없이 봐도, 촬영을 거부한 사람은 극소수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은 물론, 그들의 얼굴이 TV에 나오는 것도 허락한다. 자신이 바람을 피운 것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자신의 성정체성이나 타락이 공개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혹시 모르겠다. <서바이버>의 출연자 일부가 대중스타가 된 것처럼 <치터스>의 누군가도, 적어도 자신의 마을 어딘가에서 스타가 되었을지도. 하긴 악명으로도 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니까.

<치터스>는 미디어가 모든 이의 일기장을 대신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일기에만 적어야 할 은밀한 것들도, 이제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모두 알려진다. 물론 사적인 영역이 창피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은밀한 욕망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적인 영역이 허물어진 세상은 그러나, 어딘가 위험해 보인다. 모든 것을 내보인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보여지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