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스포트라이트
나는 더이상 두렵지 않다, <프라임 러브>의 우마 서먼
박은영 2005-12-12

솔직히 고백하자. 할리우드 배우들과의 서면 인터뷰가 주선되는 일이 종종 있다. 무엇을 물어볼까, 너무나 신나게 질문을 만들어 보내면, 누군가의 통번역을 거친 답변이 돌아오는데, 열에 아홉은 ‘들으나마나’일 만큼 심드렁한 이야기들이다. 그런 경험상, 우마 서먼의 인터뷰가 일주일 안에 성사될 거라는 기대도, 답변이 충실할 거라는 예상도 하지 않았다.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우마 서먼은 지금 무척 바쁜 몸이다. 멜 브룩스의 <프로듀서> 리메이크부터, 슈퍼히어로로 등장하는 <슈퍼 엑스 걸프렌드>까지 미국에서 개봉 준비 중이거나 촬영 중인 영화가 줄잡아 네댓편이다. 설상가상으로, 질문을 보낸 때는 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이었다. 팔짱을 끼고 기다리는데, 입이 떡 벌어지는 일이 생겼다. 우마 서먼은 정확하게 약속을 지켰고, 이 간단한 서면 인터뷰에서도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길 주저하지 않았다. 우문현답의 향연.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에서 맹한 금발 미인으로 분했던 것 이외에 로맨틱한 영화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던 우마 서먼이 <프라임 러브>에서 보여주는 사랑과 이별은 진솔하고 성숙하다. “사랑과 인생에서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30대 여성”의 보편적인 모습을 체현하려 했다는 우마 서먼은,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고백을 들려주기도 한다. 답변을 읽는 내내, 영화의 엔딩에서 그녀가 지어 보이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난 행복해, 아무 후회없어, 우리 함께한 시간에 감사해, 라고 말하는 듯한.

-<프라임 러브>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서, 출연을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늘 로맨틱코미디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정말 들떴었다. 로맨스는 항상 나의 관심을 끈다. 원래 로맨스가 있는 드라마와 코미디를 좋아한다. 폭력적인 영화보다 로맨스 속으로 탈출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 <프라임 러브>는 단순한 로맨틱코미디 이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유머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 재미가 담담하게 표현된다. 동시에 무척이나 감동적이고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감독 벤 영거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상상한 주인공 라피의 모습을 당신이 완벽하게 재현해냈다고 전한다. 당신은 라피를 어떤 인물로 이해했고 어떻게 표현해내려고 했나.

=벤 영거 감독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이 작품을 직접 썼는데, 완성하는 데 8년이 걸렸다는 건 이 작품에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걸 의미한다. 이 작품엔 친밀한 느낌들이 있다. 가슴과 영혼을 움직이는 감정들이 있고, 또 관계에 대한 훌륭한 성찰들이 있다. 나는 30대 전문직 여성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 중에는 결혼을 안 한 이들도 있고, 결혼을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이들도 있고, 일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은 이들도 있다. 반면 가족을 꾸린 이들도 있다. 이들 모두 충분히 안정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난 25살 이후로 혼자였던 적이 없다가 갑자기 35살이 되어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이 캐릭터를 볼 수 있도록 나를 움직였다. 나는 ‘라피’를 단순히 영화 속 캐릭터로 보지 않는다. ‘라피’는 내가 알고 있던 사랑과 인생에서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30대 여성의 현실적인 모습이 담겨 있는 인물이다. 물론 내 모습일 수도 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내가 연기하는 것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재미난 상황 중 하나는 라피(우마 서먼)가 리사(메릴 스트립, 상담가)에게 데이브(리사의 아들)와의 성경험을 상세하게 들려주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특별히 힘들었다거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나.

=라피는 리사가 애인의 엄마라는 사실을 모르는데다 새로운 인생이 찾아온 것처럼 그렇게 멋진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세하게 털어놓는 건 당연하다. 현장은 항상 영화만큼 즐거웠다. 메릴 스트립은 늘 존경해온 배우다. 내가 배우가 되고 싶다고 결심하게 할 만큼. 그래서 처음엔 그녀와 연기하면서 정말 긴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적으로도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고 그래서 감정을 쉽게 끌어낼 수 있었다. 어색하거나 힘들기보다는 모든 신을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라피가 도달한 결론에 공감했나? 라피는 연인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면서도, 현실적인 한계를 돌아보며, 그를 놓아버린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나? 데이브가 라피에게 주지 못한 결정적인 무엇, 사랑할 때 꼭 필요한 그 무엇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무모하고 젊고 멋진 남자와의 순수한 사랑은 그녀에게 큰 치유제가 되어주는 것 같다.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바뀌고,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도 달라지게 된다. 그게 여러 가지 면에서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 하지만 데이브는 결국 가질 수 없는 사람이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며,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털어놓지 않고, 너무 많은 것을 원하기 시작하면 관계는 나빠지게 된다. 반대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 시작하면,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그들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나눴고,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간 시대극, SF, 스릴러, 액션 등의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반면, 범상한 멜로나 로맨스영화에는 잘 출연하지 않았다. 대개의 감독들은 그 안에서 당신을 ‘여신’ 혹은 ‘전사’의 이미지로 표현해내곤 했다. 완벽한 외모에서 풍기는 신비롭고 강인한 이미지 때문에 배우로서 선택의 폭이 좁다거나 하는 식의 손해를 본다고 느낀 적은 없나.

=난 로맨스영화를 좋아하고 이런 역할을 맡는 것을 좋아한다. 단지 그런 배역을 따내는 게 힘들 뿐이다. 사람들의 편견에 호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타란티노가 <킬 빌>을 내놓기 전에 사람들은 내가 영묘한 느낌을 풍기기 때문에 검을 들고 뛰어다니는 역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우스꽝스러워 보일 거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아주 터프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아무렇지 않은지 묻는다. 창백한 금발, 큰 키, 푸른 눈 등등 나를 따라다니는 몇 가지 수식어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진부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진부한 생각에 빠져든다. 이러한 것들에 좌절감을 느낀 적은 없다. 물론 조금은 지겹기도 하다. 이제 <프라임 러브>를 본 사람들은 순한 미소의 피해자 같은 이미지가 나를 구속하지 않냐고 물어올 것이다.

-<킬 빌>처럼 온전하게 ‘당신의, 당신에 의한, 당신을 위한’ 작품을 하고 나면, 이후 다른 작업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나 성취감이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킬 빌> 이후 무엇이 변했다고 느끼나.

=<킬 빌>은 내게 도전이자 전환점이자 위기이자 모두였다. 그만큼 힘들었고, 그만큼 충족되었다. 그래서 더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간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훌륭한 감독들과 작업했다. 그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은 어떤 것인가.

=새로운 감독, 새로운 영화, 새로운 캐릭터와 만나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경험을 통해서 깊이를 더하게 된다. 그래서 작품을 하는 동안은 모든 작품 하나하나에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그래서 항상 변화한다. 어느 순간 필요로 하는 것은 또 다른 순간에 필요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지금 내가 한 작품을 꼽는다 해도 어느 순간 그 작품은 또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 자연인으로서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가.

=난 쌀쌀맞고 콧대 높은 사람이다(It’s true that I’m frightenigly Arctic and cold). 지우고 싶은 순간들과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아무리 그 일이 후회스럽고, 아무리 그들이 싫더라도, 그와 별개로 내가 진실로 사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고, 내가 세운 목표를 따라 열정적으로 달려갈 것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제공 영화사 도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