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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낭만, 해적 영화 열전

강한 것을 숭배하는 어린 시절의 소년들. 그들에게 있어 해적은 종종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극단적인 터프함, 자유분방한 생활 방식, 거친 파도를 헤치고 떠나는 끝 없는 바다로의 모험은 소년의 마음을 앗아가기 쉽다. 이것은 낭만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때의 얘기다. 그들이 저지르는 악행을 열거하면 타고난 '배드가이'가 아닌 다음에야 해적을 부러워하진 않는다.

해적에 대한 느낌은 지극히 고전적이다. 실제 활약했던 해적들에 대한 이야기나, 숱하게 만들어지는 많은 해적 영화들이 선택하고 있는 시대는 어김없이 옛시절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해적 영화로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캐리비안의 해적> 역시 영화는 첨단 기술의 경연장이었지만, 그 모든 기술은 과거의 시대를 재현하는데 사용이 된다. 그 만큼 해적은 현재나 미래의 시대와는 왠지 동떨어진 느낌이 강하다.

그 때문에 곽경택 감독의 블록버스터 <태풍>은 그간 봐왔던 여느 해적 영화들과는 다른 시대적 배경을 깔고 있어 또 다른 해적 영화의 탄생을 알린다. 사실 <태풍>은 정통 해적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때문에 흔히 보는 해적 영화들이 가진 모험물 성격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장동건이 연기한 해적 '씬'은 다른 해적 영화들에서의 그들과 다르지 않다. 약탈과 살인, 방화, 주체할 수 없는 터프함 등 해적이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요소는 모두 갖추었다.

DVD토픽에서는 <태풍>의 개봉으로 관심을 불러 모으는 해적들의 활약을 담은 영화들을 꼽아 보았다. 물론 이들 영화들의 리스트가 해적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선정 기준은 어디까지나 쉽게 볼 수 있는, 거의 대부분 국내 DVD 발매가 되어 있는 목록들이다.

후크 / 피터팬

해적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가운데 <보물섬>과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똑같은 원작에서 출발하지만 두 영화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스필버그가 연출을 맡은 <후크>는, 원작 그 이 후의 이야기로 각색을 해서 처량할 정도로 동정심이 가는 해적들이 등장한다. 기세등등하게 활개를 치다가 피터팬이 다시금 능력을 가지면서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는 과정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기본적으로 가족용 영화이기 때문에 해적으로서 마땅히 쏟아내야 할 거센 폭력의 쾌감이 별로 없다. 약탈과 살인은 후크 선장과는 거리가 멀고, 영화 말미에는 허약한 노인네의 모습으로 강인한 해적의 이미지를 모두 갉아 먹는다. 해적을 기대하기 보다는 어른이 된 피터팬이 다시금 동심을 되찾고, 화려한 특수효과로 재현된 환상적인 네버랜드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반면 그 후에 나온 <피터팬>에서는 좀 더 멋진 해적들을 만날 수 있다. 피터팬과 대등 혹은 때론 압도하는 후크 선장의 매력을 잘 살려내고 있다. 외모 또한 역대 피터팬 영화중 최고이며, 라스트의 대결 시퀀스도 멋지게 장식을 한다. 다른 해적 영화와 비교해서 지나칠 정도로 신사적인척(?) 하는 것이 해적 후크 선장의 매력 포인트! (소니 픽쳐스 발매)

컷스로트 아일랜드

<나이트메어 4> <다이 하드 2>로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레니 할린 감독이 필생의 프로젝트로 매달렸던 본격 해적 영화. 당시 그의 부인이었던 지나 데이비스가 여성 해적 선장으로 등장하여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다.

개봉 즉시 악평에 시달렸고 1억 달러에 달하는 제작비를 그대로 바다 속에 쳐 박았던 실패작이기는 하나, 실물 크기의 범선이 벌이는 포격전과 선원들끼리의 백병전은 아날로그식 액션 연출의 극치를 보여주며 너무나 시대착오적(이 영화는 1995년에 만들어졌다)이어서 오히려 낭만적이기까지 할 정도다. 또한 스토리 구성과 의상, 미술 등 모든 요소가 왕년의 해적 영화에 대한 열렬한 오마주와 인용, 패러디로 가득 차 있어서 해적 영화를 즐기는 팬들에게는 그 하나하나가 즐거움일 것이다.

국내판 DVD는 시장 초창기에 발매되었는데, 드물게 우리말 더빙이 수록된 타이틀이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구니스

평범한 장난꾸러기 꼬마들이 해적선장 ‘애꾸눈 윌리’의 보물 지도를 우연히 손에 넣게 되면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모험을 그린 영화. 대부분의 이야기가 보물을 찾기 위한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정작 해적선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야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꼬마들과 보물찾기 경쟁을 벌이는 강도단 가족 프라텔리 가 사람들이 마치 현대판 해적과 같은 역할을 거뜬하게 해 낸다. 작품의 코믹 터치에 어울리게 악랄하면서도 꼬마들에게 된통 당하는 어수룩한 모습이 재미있다. 여기에 클라이맥스의 해적선 위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대결 장면이라든가 섬에서 해적선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망망대해로 출항(?)하는 모습 등은 제작진이 고전 해적 영화에 갖고 있는 낭만적인 향수를 그대로 드러낸 듯하다. (워너홈비디오 발매)

워터월드

먼 미래를 배경으로, 극지의 얼음이 모두 녹아 문명이 물속에 잠긴 이후의 거친 시대를 그린 영화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는 황금이나 보석보다도 흙과 민물이 가장 중요한 보물로 여겨지며, 일부의 인간은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갖게 되어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이 워터월드의 ‘해적’은 스모커즈라는 집단. 범선 대신 거대한 유조선을 타고 럼주를 들이켜는 대신 담배를 입에 문 이들은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무자비하고 잔혹한 자들. 스모커즈의 우두머리인 디컨은 해적의 대명사인 ‘애꾸눈’이며 연설 장면에서는 아예 해적 복장을 입고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어딘가에 있을 ‘약속의 땅’에 대한 예언을 들먹이며 부하들을 선동하는데, 영화의 주인공 마리너의 일행인 소녀 이놀라의 등에 약속의 땅 지도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배경은 미래지만 영화 속의 스모커즈는 오히려 진짜 해적보다 더욱 해적 같은 이미지로 묘사되어 흥미롭다.

2억 달러에 육박하는 막대한 제작비, 바다 위에 대규모의 요새 세트를 세워 촬영한 무모할 정도의 뚝심, 갖은 스캔들로 점철된 제작 과정 등이 화제를 부른 SF 대작으로, 마치 <매드 맥스>를 바다 위로 옮긴 것 같은 느낌의 작품이다. 줄거리가 엉성하긴 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액션 연출과 망망대해라는 배경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촬영이 시원스럽다.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장쾌한 음악도 인상적이다.

은하철도 999 / 하록 선장

최고의 낭만파 해적이라면 마츠모토 레이지가 창조한 만화 캐릭터 하록 선장을 꼽을 수 있겠다. 무법자로서 지구 정부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외계 침략자와 맞서 싸우는 그는 다른 어떤 해적들보다도 영웅적인 풍모를 보여준다.

국내 정식 발매된 DVD 가운데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메텔과 함께 기계 행성으로 향하던 철이는 우주전사 도치로와 만나는데, 사실 그는 하록 선장에게 전함 알카디아호를 만들어준 친구였던 것. 이후 하록 선장은 친구의 마지막을 지켜봐 준 철이를 도와 기계 제국을 무너트리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과거 국내 방영된 TV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었던 사람이라면 ‘우주를 나의 바다’로 여기며 굳건한 표정으로 타륜을 돌리는 그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보물섬

해적과 보물 그리고 모험으로 가득한 스티븐슨의 원작을 가장 멋들어지게 영상화한 작품은 1978년 데자키 오사무가 연출한 TV 애니메이션 <보물섬>이다. 바다에 대한 소년의 동경심을 세밀하게 포착하였으며 원작 이상으로 카리스마적으로 그려진 외다리 해적 롱 존 실버의 모습 등, 나름의 재해석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추억의 작품으로 남고 있다.

영상미면에서도 탁월한데, 데자키 감독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하모니 연출(정지 화면으로 오히려 움직임을 강조하는 기법)과 실제 태양 빛을 담은 듯한 투과광 효과는 TV 애니메이션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총 26화로 만들어졌으나 국내 소개된 DVD는 90분짜리 극장용 편집본. 오리지널에 비해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성인이 된 주인공이 백발의 실버와 재회하는 엔딩 장면은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신밧드 3부작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대가 레이 해리하우젠이 시각 효과를 맡은 판타지 어드벤처 3부작으로, 모험가 신밧드가 겪는 각양각색의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그렸다. 신밧드는 물론 아라비안 나이트나 기타 여러 가지 버전으로 각색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숙한 캐릭터.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흥미로운 것은 신밧드 자신보다는 해리하우젠이 애니메이션으로 숨결을 불어넣은 다양한 괴물들일 것이다. 거인 사이클롭스와 괴조 록, 칼리, 용 등의 이들 환수들은 스톱 모션 특유의 단절이 있는 움직임으로 표현되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제작된 지 30~40여년이 지난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상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은 여전히 가치 있다.

스폰지밥 극장판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결코 이해 못하는 <보글보글 스폰지밥>의 매력. TV 시리즈에 이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스폰지밥 극장판>의 첫 장면은 난데없이 실사 장면으로 시작된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떠있는 해적선에는 일군의 지저분한 해적들이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마침내 누군가가 작은 보트에 보물 상자를 실어오자 선장들을 비롯해 모두들 흥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본 결과, 그 안에는 다름 아닌 <스폰지밥> 극장 티켓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열광에 빠진 그들은 신나게 만화 주제가를 부르며 극장으로 직행,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신나게 <스폰지밥>을 감상한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도입부지만 <스폰지밥> 팬들에게는 이만한 오프닝이 없다. TV판 방영 당시에도 <스폰지밥>의 왕팬 ‘누더기 선장’이 종종 등장해 작품 소개를 하곤 했었는데 그 연장선상에 있는 실사 개그인 셈이다. 또한 작품 중간에 깜짝 등장하는 데이비드 핫셀호프 등 기상천외한 장면들에 앞서 관객들을 적응시키기 위한 장치 역할도 한다. 어쨌거나 만화영화에 환장한 해적들이라니 정말 귀엽지 않은가.

프로젝트 A

성룡, 홍금보, 원표 골든 트리오가 모두 참여한 액션 영화의 걸작. 동시에 아시아 지역에서 나온 그 어떤 해적 영화들보다 재미있고 박진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홍콩의 개국 초기를 배경으로 섬 주변을 오가는 상선을 약탈하는 해적단과 그들을 섬멸하는 해경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대개 해적이라고 하면 서양인들이 자연스레 연상이 되지만, <프로젝트 A>의 동양인 해적도 그에 못지않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해적들은 서양의 그 어떤 해적들과 비교를 해도 무엇 하나 뒤짐이 없다. 그들은 대단히 거칠며 살인과 약탈을 하는데 있어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싸움 역시 일류급이다. 특히 두목의 카리스마는 대단한 수준. 이들이 가짜 어선을 미끼로 처음 배를 약탈하는 장면은 뛰어난 액션과 스턴트의 조화로 약탈의 진수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해적 소탕이란 내용 때문에 단순히 바다에서만 해적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동굴 속 본거지와 그들의 음주가무, 약탈한 재물을 차곡차곡 저축을 해 나가는 과정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해적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해적 영화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봐야할 작품. 국내 발매된 DVD 타이틀은 단품 혹은 속편인 <A계획 속집>과 하나로 묶은 박스로도 구매할 수 있다. (스펙트럼 발매)

천공의 성 라퓨타 / 붉은 돼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 가운데에는 무법자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해적들이 종종 등장한다. 1971년 <동물 보물섬>에 스탭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본격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TV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에서 다이스 선장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낸다.

문명도시 인더스트리아에 소속돼 있던 다이스는 의장 레프카에게 반기를 들고 바라쿠타호를 타고 도주를 하는데,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선원들과 함께 해적이 된 셈이다. 탐욕스럽지만 바다 사나이로서 낭만적이고 인정 많은 인물로 묘사된 그는 후에 미야자키 감독이 연출한 장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와 <붉은 돼지>의 해적들로 발전된다.

물론 위 작품들에 나오는 도라 일가나 맘마유토 단의 캐릭터들은 엄밀히 말해 해적이 아닌 하늘을 주름잡는 ‘공적’(空賊)들. 비행에 남다른 관심을 품고 있는 미야자키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해적의 변형이다. 비록 주인공들에게 밀려 결정적인 활약을 하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예측불가능한 행동과 어울리지 않게 순진한 모습으로 작품에 재미를 더하는 감초 캐릭터들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해적영화들

<카리브의 해적>

위에서 소개한 해적 영화들 외에도 많은 명감독과 배우들이 해적 영화를 거쳤다. 세실 B. 드밀(1938)과 앤소니 퀸(1958)에 의해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는 <부캐니어>는 1812년 영미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뉴올리언즈에서 의적으로 떠받들여진 해적 장 라피트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1976년작 <카리브의 해적>은 로버트 쇼가 해적선장으로 등장, 장쾌한 모험을 선보인 수작이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도 1986년 <대해적>이라는 작품으로 해적 영화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튀니지 올 로케 등 막대한 물량이 투입된 대작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정작 흥행에서는 대참패를 기록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해적 영화들의 인지도가 낮은 국내 실정 탓에, 모두 국내에서는 아직 DVD로 출시되지 않은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