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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최초의 블록버스터 <나이트 워치>의 티무어 베크맘베토프
김도훈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5-12-16

“구세대는 러시아영화가 아니라고 하더라”

때로는 영화 한편이 한 국가의 영화산업을 뒤흔들어놓는다. 러시아산 판타지영화 <나이트 워치>(Ночной Дозор)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이트 워치>는 수세기 동안 전쟁을 치러온 빛과 어둠의 대변자 ‘나이트 워치’와 ‘데이 워치’의 보이지 않는 전투를 다루는 판타지영화. 2004년 러시아에서 개봉한 이 작품은 약 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러시아 흥행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고, 쿠엔틴 타란티노를 위시한 서구의 영화광들에 의해 열광적으로 재발견되었으며, 이십세기 폭스에 의해 영어로 리메이크될 예정이다. 러시아의 첫 번째 블록버스터라는 영예를 발판 삼아 러시아판 <반지의 제왕>을 꿈꾸는 티무어 베크맘베토프와의 대화.

※인터뷰는 티무어 베크맘베토프가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지난 7월에 성사되었다. 현재 그는 모스크바의 어스름 속에서 후속편인 <데이 워치>의 후반작업과 시리즈의 최종편인 <더스크 워치>의 준비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나이트 워치>의 전례없는 성공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가.

=국제적인 성공은 꿈꾸지도 못했다. 러시아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난 뒤 보여줄 흥미진진한 반응을 고대했을 따름이다. 물론 현대 모스크바의 생생한 모습과 생활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성공도 더불어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인과 러시아영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러시아 관객의 열광 이면에 주류 러시아 비평가들의 반응은 어땠나.

=예상했겠지만(웃음), 전쟁이 일어났다. 구세대들은 <나이트 워치>가 러시아영화의 전통을 완전히 없애버렸다며 길길이 날뛰며 혹평을 했다. 그들은 심지어 <나이트 워치>는 러시아영화가 아니라고도 했다. (웃음)

-서구적인 개념으로 따지자면, <나이트 워치>는 CG를 대량으로 이용한 러시아의 첫 번째 블록버스터다. 할리우드식의 대중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식의 벤치마킹을 시도했나.

=(담뱃갑을 가리키며) 여기에 할리우드라는 장난감이 있다. 처음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 존재를 보았고, 다음에는 그런 장난감을 어떤 식으로 가지고 놀아볼까를 연구했고, 그러면서 할리우드식의 장난감을 우리도 만들어보겠노라 결심했다. 야생의 미개인이 문명의 이기를 처음 봤을 때의 기분처럼, 이리저리 뜯어보기도 하고, 해부도 해보고.

-원시인에서 문명인이 된 기분인가.

=(웃음) 할리우드영화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존경보다는 좀더 차원이 높은 선망을 품고 있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성스러운 기분으로 동경했던 것을 마침내 스스로 해낸 기분이다.

-특수효과는 어떻게 창조한 것인가. 러시아에도 특수효과만을 위한 전문 스튜디오가 존재하는가.

=<나이트 워치>를 만들 때는 겨우 두세개 정도의 열악한 특수효과 스튜디오가 있었다.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우리팀은 인터넷을 통해 150여명에 달하는 특수효과 멤버들을 구했고, 얼굴도 모르는 채 가상공간의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그 커뮤니티를 기본으로 작업을 분배하고 소프트웨어도 만들고 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열악하고 초보적으로 들리겠지만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다.

-첫 모험에 투자할 자본가는 흔치 않다.

=<나이트 워치>는 생각하는 것처럼 막대한 자본이 든 영화가 아니다. 300만달러의 제작비는 러시아에서도 평균 영화제작비 정도다. 물론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다양했고, 그것을 도와줄 인맥이 충분했기 때문에 적은 자본으로도 이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나이트 워치’와 ‘데이 워치’의 대결을 다룬다. 그들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선이 악이기도 하고, 악이 선이기도 하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사회,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 정치·사회적 혼돈상태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요즘 러시아인들은 정치적인 소재를 꺼려한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인들은 정치에 지속적으로 기만을 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나이트 워치>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나이트 워치>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사회적인 환경에 따라서 개인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개체의 선택이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러시아의 전통적인 철학이다. 톨스토이가 어린아이의 눈물 한 방울이 세계 전체의 메시지보다 더 귀하다고 했듯이.

-소비에트연방 시절을 지나오면서 러시아영화의 서사적인 전통은 리얼리즘에 밀착해 있었다. 그래서 <나이트 워치>는 기존 러시아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생경한 영화적 경험이다.

=러시아 영화사에도 판타지의 장르적 특성은 존재한다. 첫째로 커뮤니즘이라는 판타지가 있고, 둘째로는 <솔라리스>를 비롯해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꿈꾸었던 우주적 판타지가 있다. 셋째로는 전통적인 동화로부터 나오는 판타지가 있다. 물론 북한처럼 오랜 1인 우상숭배에 대한 판타지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좁게 한정해서, <나이트 워치>를 미국영화와 구분짓는 러시아 환상문학의 전통은 무엇인가.

=<나이트 워치>를 비롯한 러시아의 판타지는 미국과는 생성 배경부터 다르다. 미국은 짧은 역사로 인해 전통적인 동화가 없으며,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판타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한국이나 러시아는 오래된 동화적 전통이 풍부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간은 판타지영화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세계화가 시작된 시기다. 정치·문화적으로 전세계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그렇다면 문화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할 일은 미국의 판타지를 재활용해서 우리만의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일이다.

-영화는 할리우드로부터 영향을 받은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나이트 워치>만의 독창적인 장면들도 많다. 특히 소년이 눈에 붉은빛을 품다가 쓰러지면서 빛이 물감처럼 흘러내리는 장면(사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수효과라는 것은 머리를 굴려 논리적으로만 생각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언급한 장면도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불빛효과를 뚝 떨어뜨려봤을 뿐이다. (웃음)

-모스크바가 거대한 판타지 블록버스터에 어울리는 도시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모스크바라고 하면 한국 관객은 아마도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류의 영화를 먼저 떠올릴 텐데.

=‘보리스 게서’ 역을 맡은 블라디미르 멘쇼브가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나는 이 배우의 캐스팅에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모스크바와 러시아의 밝은 이미지를 전형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적 러시아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의 숨겨진 내부의 어둠으로부터 판타지의 매력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스크바는 그런 면에서 판타지의 무대로 매우 매력적인 도시다.

-이 영화 한편으로 러시아 영화시장이 하루아침에 개벽을 맞았다. 당신이 조망하는 러시아영화의 미래는 어떤가.

=<나이트 워치> 이후로 10편 정도의 대작들이 쏟아졌고, 5%에 지나지 않던 러시아 자국영화 관객점유율이 35%로 뛰어올랐다. 또한 미국의 거대 영화사들이 러시아영화에 대한 투자액을 대폭 증대했고, 러시아 시장을 겨냥한 영화제작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고질적이던 해적판 문제에 당국이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도 <나이트 워치> 이후의 일이다.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적판을 통해 영화를 대했으나, 경찰과 수사기관이 협력해서 채찍과 당근 정책을 펼치면서 급속하게 해적판은 사라지고 있다. 영화업자들이 DVD나 비디오의 가격을 대폭 낮춘 것이 당근이고, 곤봉을 들고 해적판을 관리하는 것이 채찍이다. (웃음) 어쨌거나 <나이트 워치> 이후 러시아 영화계의 낙관적인 미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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