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영화읽기
시리즈의 감옥, 탈출구는 어디인가? <해리 포터와 불의 잔>

<해리 포터> 4편 <해리 포터와 불의 잔> 각색의 아쉬움

<해리 포터> 영화를 만든다는 건 자발적으로 예술적 감옥 안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물론 같은 감옥에 들어간다고 해도 감옥 생활이 모두 같다는 법은 없다. 교도관 말을 잘 듣는 모범수가 될 수도 있고 교도소 내 지하 경제를 주무르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보낼 수도 있고 땅굴을 파 탈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옥은 여전히 감옥이다. J. K. 롤링의 이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하는 감독들은 비슷한 강도의 판타지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누리는 상상의 자유는 누리지 못한다. 일단 할리우드 영화쟁이들이 자기 작품을 망치기라도 할까봐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원작자가 있다. 그만큼이나 예민하게 각색에 반응하는 열혈팬들의 비위도 망쳐서는 안 된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만드는 시리즈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멋대로 이야기를 뜯어고치다가 일관성을 깨트리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영화를 구속하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크리스 콜럼버스가 감독한 두편의 <해리 포터> 영화들은 경천동지할 만한 신선한 걸작까지는 아니었어도 좋은 가족영화였다. 시각적 상상력은 풍부했고 볼거리도 많았다. 만약 원작이 영화의 재료가 될 만한 상상의 재료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고 구조도 나쁘지 않다면 감독이 꼭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설 필요는 없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롤링 감옥에 숨통을 뚫어놓은 건 3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이하 <아즈카반의 죄수>)를 감독한 알폰소 쿠아론이었다. 쿠아론이 엄청나게 대단한 각색 실력을 과시했던 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는 1, 2편의 각색자인 스티븐 클로브스와 함께 일을 했다. 하지만 그는 개학에서 여름방학에 이르는 호그와트의 스케줄에 맞추어 모든 사건들을 진행하는 롤링의 이야기를 좀더 여유있게 진행시켰다. 자잘한 이야기들을 잘라내자 그는 캐릭터들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담을 빈 공간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런 쿠아론의 성과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하 <불의 잔>)을 감독할 사명을 물려받은 마이크 뉴웰의 지표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뉴웰은 잘라내고 싶은 것들은 잘라내도 된다는 쿠아론의 조언을 듣고 <불의 잔> 각색을 진행시켰다.

맹렬하게 전력질주만 하는 영화

문제는 <불의 잔>을 각색하는 것과 <아즈카반의 죄수>를 각색하는 것이 전혀 다른 작업이라는 것. <아즈카반의 죄수>는 이전 소설들보다 특별히 길지 않았다. 쿠아론은 같은 양의 텍스트를 좀더 유연하게 해석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의 잔>은 아무리 잘라내도 쿠아론이 <아즈카반의 죄수>를 만들었을 때 가졌던 여유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아즈카반의 죄수>가 느긋하게 뒤로 물러나 텍스트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여유를 부렸다면 마이크 뉴웰은 <불의 잔>을 만들면서 맹렬하게 전력 질주만 한다. 중요한 건 2시간30분이라는 시간 안에 이야기가 꽉꽉 차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잘한 캐릭터들은 잘려나간다. 핵심이 되는 스토리와 얽혀 있지 않는 에피소드들도 역시 잘린다. 혹시 여분의 캐릭터가 핵심적인 스토리와 얽혀 있다면 다른 캐릭터에게 그 역을 대신 맡긴다. 미스터리가 너무 복잡해서 장황한 해설이 필요하다면 축소시킨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 뉴웰 고유의 해석이 들어갈 부분은 없다. 그런 걸 따지기엔 책이 너무 크다.

뉴웰은 그럭저럭 자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미진하게 느껴진다. 가장 큰 이유는 뉴웰이 취한 기본 줄거리라는 것이 결코 원작 <불의 잔>에서 최상의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의 잔>은 썩 즐겁고 박진감 넘치는 소설이지만 트라이위저드 토너먼트라는 행사를 호그와트의 스케줄에 맞추어 진행시킨 사건 전개는 뻣뻣하고 어색하며 인공적이다. 롤링의 소설에서는 그를 보완하는 수많은 디테일이 그 뻣뻣함을 완화시켰다. 하지만 <불의 잔>에는 그런 윤활제를 하는 재료들이 없다. 특수효과와 액션은 훌륭하지만 그 역시 책을 받아쓰거나 요약정리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이미 우리가 상상한 것을 보는 건 그렇게까지 흥미진진한 경험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앞으로 이런 책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과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는 <불의 잔>보다 더 길며 스토리도 만만치 않게 빽빽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마지막 편 역시 길이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슬슬 스티븐 클로브스와 차기 감독들이 혁신적인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 계속 롤링의 세계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것인가? 롤링은 분명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해리 포터의 모험담이 또 다른 출구를 탐색할 때가 머지않았다. 5편의 감독을 맡은 데이비드 예이츠가 그의 멋진 <BBC> 영화 <영 비지터스>에서 했던 것만큼의 자유를 획득한다면 우린 정말 대단한 구경거리를 보게 될 수 있을 텐데.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