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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올해의 영화·영화인 [4] - 올해의 영화인 ②
올해의 제작자

영화적인 제작자의 승리, 장진

<씨네21> 필진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올해의 제작자로 지목한 인물은 장진이다. 올 여름 박스오피스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결과가 별로 당혹스럽지 않을 것이다. 올 여름 한국의 박스오피스는 말 그대로 ‘장진 천하’였다. 장진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고 제작한 <웰컴 투 동막골>과 직접 메가폰을 잡고 95%의 세트촬영으로 만들어낸 실내악 <박수칠 때 떠나라>가 경쟁하던 모습은 상당히 이채로웠다. 결과적으로도 두 영화가 거둔 스코어는 1100만에 육박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웰컴 투 동막골>과 매우 대조적이다. 거의 대부분 실내 촬영으로 이루어진 제작환경, 자신의 연극을 스크린으로 옮긴 점, 오랜 동료였고 친구인 정재영이 최고 배우의 반열에 오르는 동안 코미디의 대표선수 차승원을 기용한 점이 그러하다. 장진 감독은 “넓게 보면 내가 한해 동안 임했던 영화적 활동이 잘됐다는 평가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제작자라는 역할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작사 필름있수다의 흥행성공 외에도 장진 감독은 지난 9월 말 강우석 감독과 K&J엔터테인먼트라는 제작사를 설립하여 산업적으로도 주목받았다. 두 사람은 각각 필름있수다와 시네마서비스라는 원래 역할은 유지하면서 이 회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장진 감독은 “흔히 통념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제작사의 몸집 불리기가 아닌 두 감독의 영화적 견해와 희망을 표출할 수 있는 새로운 창구”라고 앞으로의 움직임을 예고했다. 강우석 감독이 연출하는 <한반도>가 이 회사의 창립작이 될 전망이다. 장진 감독의 차기작 <거룩한 계보>도 K&J엔터테인먼트의 이름으로 개봉될 예정이다. <거룩한 계보>는 감옥으로 간 건달이 조직에서 버려지는 내용이다. 장 감독은 “이것은 갱스터영화에서 가장 흔한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양산된 조폭영화를 장진이 변주하고 재해석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귀띔했다.

올해의 촬영감독

냉정하지만 내면 깊이 들어가는 카메라, <그때 그사람들>의 김우형

광화문 이순신 동상에서 청와대까지 한달음에 훑어내는 마스터샷과 궁정동 부감샷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그때 그사람들>의 김우형 촬영감독이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촬영감독으로 낙점됐다.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소감은 평소처럼 “모두 임상수 감독님의 공이다”로 시작됐다. 오랜 장기인 핸드헬드와 <얼굴없는 미녀>를 통해 단련된 픽스샷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는 세평에 대해서도 “<바람난 가족 때>와는 다른 가능성을 임 감독님이 제 안에서 발견했고 저는 열심히 반응했을 따름이다. 그게 잘 반영됐다면 기분 좋은 일”이라고 답했다. “궁정동 부감샷은 올해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김은형)“과감하고도 역동적이며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남다은)라는 답변은 현장에서 누구보다 과감히 움직이는 그의 카메라를 연상하도록 만든다.

<그때 그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사회적 논쟁에 대해서도 “여기저기 인터뷰하고 방송토론의 전화에도 응하는 감독님을 보며 저나 다른 사람이라면 중간에 도망쳤으리라 싶었고, 논란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많은 걸 배웠다”고 답했다. “연출자의 소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지론은 변함없지만 “<그때 그사람들>의 카메라가 차지하고 있는 시점과 거리 감각은 작가(감독)의 시선이나 화법과 하나가 되어 있다. 그것은 전지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자의 냉정함을 잃지 않지만, 어느 순간 대상(인물)의 가장 깊은 곳을 드러낸다”(변성찬)고 평해질 만큼 높은 밀도를 보였다.

다른 감독들로부터 제안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대해 “한 작품은 감독님이 바뀌고 제작방식도 변화되면서 지연됐고, 또 다른 작품은 크랭크인 직전에 무산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1년을 논 줄 안다”고 웃었다. 1년간 겪은 우여곡절은 필연이었을까. 김우형 촬영감독은 “나는 양아치고 김우형이야말로 예술가”라고 단언했던 임상수 감독과 세 번째 작업 <오래된 정원>에 돌입한다. 최초로 세편을 함께하는 연출자에게 보폭을 맞출 그의 카메라워크가 궁금하다.

올해의 시나리오

치밀하고 뚝심있는 이야기꾼, <혈의 누>의 이원재

<혈의 누>의 힘은 무엇보다 치밀하고 힘있는 이야기에 있다. 사극에 장르적인 색깔을 불어넣은 이 영화는 “창의적인 역사스릴러로서 고도의 문학성과 역사인식, 나아가 현실적 정치감각을 보여줬다”(황진미)는 평가를 얻어냈다. <혈의 누>는 범인과 수사관이 머리싸움을 벌이는 ‘게임’으로서의 스릴러를 지향하지 않는다. 연쇄살인사건과 이를 수사하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참혹한 사건 이면에 자리한 시대와 사람을 치밀하게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잔혹한 역사의 한장을 동시대적 해석으로 펼쳐냈다”(김소영)는 점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의 비겁한 태도에서 드러나는 “대중 파시즘의 공포”(황진미)나 끝내 아버지의 원죄를 씻어내지 못하는 원규의 한계 등은 현재적 의미 속에서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하는 지점이다. 또한 “<장미의 이름>의 조선 판본인 이 영화는 근자에 사라져가고 있는 이야기의 매혹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는다”는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말처럼 대중과의 접점 또한 놓치지 않는다.

<혈의 누>는 이원재 작가의 데뷔작이다. 두 번째로 쓴 <여선생 vs 여제자>가 먼저 제작되긴 했지만, <혈의 누>는 첫 작품답게 호러와 스릴러를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작품이다. 대학 시절 단편영화와 시나리오 습작을 쓰던 그는 졸업 뒤 좋은영화(현재 싸이더스FNH로 통합)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두편의 각색작이 엎어진 뒤 그는 김미희 대표에게 “스릴러영화를 쓰고 싶다”고 말했고, 김미희 대표는 “과거가 배경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방향을 잡아줬다. 세심한 자료 검증과 연구를 통해 시대상과 캐릭터를 만들어냈던 그는 “김대승 감독과 김성제 프로듀서의 도움도 꽤 받았다”고 겸허히 이야기한다. “특정한 장르를 추구하는 것보다 떠올린 이야기에 걸맞은 구조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그는 “서부극 느낌을 담아 쓴 액션영화” <짝패>(류승완)를 썼고, “30대 남자들의 코미디” <일요일 아침엔 초능력>(김성제)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올해의 신인배우

모든 것이 잠재되어 있는 배우,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하정우

우직하면서도 코믹한 보디가드로 눈길을 끌었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만이었다면 하정우는 그저 눈길이 가는 신예 스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첫 장편 주연작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가능성 있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연기한 태정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 군대 안에서는 한없이 멋진 남자지만 사회에서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이다. “착함과 잔인함, 순진함과 영악함, 여성미와 남성미, 모든 것이 잠재되어 있다”(남다은)는 평가는, 다층적인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던 윤종빈 감독이 하정우를 캐스팅한 첫 번째 이유와도 일치한다. 친근하고 대중적인 분위기는 스타의 그것이지만, 평범하기에 애매하고, 민감하기에 까다로운 인물을 자신의 페이스로 느긋하게 연기한 능력은 배우의 것이다. “꿈속에서만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화된 한해”였다고 2005년을 회고하는 그의 새로운 모습은, 2006년 선보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우아하고 가녀린 카리스마, <여자, 정혜>의 김지수

새벽마다 악몽에 버둥거리며 깨어나던 시간을 선사했던 <소름>의 캐릭터가 장진영에게 준 선물들처럼, <여자, 정혜>의 정혜가 안았던 상처에 신음했던 김지수에게도 뒤늦은 선물들이 찾아들었다. “문근영이 대학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충무로는 그 대안을 찾고 있었지만, 새로운 가능성은 뒤늦게 영화에 데뷔한 김지수의 섬세하고, 성숙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통해서 발견되었다. 다행한 일이다.”(정성일) 그의 가녀린 카리스마가 좁은 브라운관을 벗어난 건 충무로에게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더불어 “텔레비전 세계에는 아직도 찾아내야 할 좋은 배우들이 남아 있다는 증거”(김도훈)라고 ‘웅변’해준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지수의 얼굴에는, 누군가의 평처럼, 할리우드 고전 여배우에게서 본 듯한 우아한 비련미가 묻어난다. 문승욱 감독의 <로망스>에 이어 김대승 감독의 <가을로>로 이어지는 숨가쁜 손짓도 비련미의 매혹과 무관하지 않다. 새봄의 기운과 함께 올 <로망스>가 그의 눈부신 슬픔을 예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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