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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한 정치사극 <왕의 남자> [1]
김현정 2005-12-29

지나치게 천한 이들에게만 허용되는 빈틈이 있다. 그러기에 수백년 전 장바닥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던 광대들은, 정색한 양반이 상소했다면 유배당했을 권력의 치부를, 음담과 풍자로 비웃었다고 한다. 엽전 한닢 던져주면 대감도 영감도 조롱거리로 갖다팔던 광대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황산벌>로 웃음 뒤에 예리한 칼날을 드러냈던 이준익 감독은 연극 <이>(爾)를 만나 놀이판의 왕이었고 세상의 잡초였던 그들을 발견했다. 광대를 꼭두각시로 내세운 음모와 그에 굴하지 않고 자유를 주장하였던 격한 영혼, 하늘도 땅도 아닌 반 허공에서 함께 줄을 뛰며 놀던 남자들의 사랑을. 12월29일에 개봉하는 <왕의 남자>는 넓은 시대를 한 주먹에 휘어잡아 궁중 앞마당 놀이판에 시원스럽게 펼쳐놓았다.

눈먼 광대가 궁궐 앞마당에 외줄을 치고 올라가 자신이 왕이라 소리친다. “저년 말버릇 좀 보게. 내가 이 궁에 사는 왕이다, 이년아!”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던 산길, 그 길을 따라 꼭 잡고 도망쳐온 여린 손, 막걸리를 토하면서도 좋아죽겠다며 웃던 고운 눈매. 광대 장생은 그걸 모두 잃었지만 울음 섞인 그 목소리에 신명이 오르고 암흑만을 보는 그 눈동자에 웃음이 스민다. 권력에 포박된 왕과 권력을 희롱하며 한세상 놀다간 광대가 어우러지는 <왕의 남자>는 그처럼 웃으며 시작하여 웃으며 끝을 보는 영화다. 죽음보다 웃음이 강하다고 말하는 원작자 김태웅(연극 <이>(爾)의 작가, 연출)의 믿음처럼, <왕의 남자>는 갈 곳 없고 잃을 것 없는 생의 마지막에서 눈물어렸으나 호쾌한 환희를 찾아냈다.

죽음도 치고 올라오는 광대의 생명력을 발견한 연극 <이>(爾)

<황산벌>을 연출했고 <달마야, 놀자> <아나키스트> 등을 제작한 이준익 감독은 지금껏 원작이 있는 영화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 어느 스탭이 연극 <이>(爾)가 재미있다는 말을 건넸고, 그는 <이-김태웅 희곡집 1>을 사서 읽었다. “원작에서 10%만 확실하다면 나머지는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찾아낸 10%는 평등과 민주주의였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 있는 왕과 그 밑바닥에 놓인 광대가 대등하게 맞부딪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이준익 감독은 <리어왕> 등의 서구문학에서 볼 수 있듯 권력을 조롱하면서도 죄를 받지 않았던 이가 광대였고, 우리 땅에서 살아온 광대는 그 풍자를 보다 당당하게 외치던 이들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는 왕좌 부근을 맴도는 원작의 공길보다 비록 짧게 등장하나 칼을 든 연산 앞에서도 숙일 줄을 모르던 장생에게 마음을 주었다. <왕의 남자>는 아마도 공길을 칭하겠지만, 이 영화를 거친 에너지로 끌고 가는 이들은 ‘왕의 남자’를 사랑한 연산과 장생이다.

2000년에 원작 <이>(爾)를 쓴 김태웅 작가는 <연산군 일기>와 보들레르의 산문시 <파리의 우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공길이라는 광대가 있어 늙은 신하와 선비를 흉내내며 놀았고, 모반에 참여한 어릿광대가 죽기 전에 한번 놀게 해달라 부탁하여 궁을 휘어잡았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렇게 연산과 장생과 공길이 탄생했다. 무오와 갑자사화가 끝난 이후 연산은 여인보다 태가 고운 광대 공길에게 더욱 집착한다. 연산은 공길을 이(爾: 왕이 신하를 대하는 존칭)라 부르며 종4품 대공 벼슬까지 내리지만, 또 한명의 출중한 광대 장생은 미쳐가는 왕과 그 왕에게 붙어 사는 공길을 비판하며 궁을 떠난다. 그들 사이에 한 여인 녹수가 있다. 공길을 질투한 녹수가 그의 필체를 모방하여 도성에 왕을 욕하는 언문 비방서를 붙이는 사이 장생은 반정을 도모하는 이들과 손을 잡는다. 귀(貴)와 천(賤)의 극단에서 태어나,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세 남자. 그들은 피처럼 붉은 천을 손에서 손으로 건네며 하나씩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김태웅 작가는 어둠에 파묻힌 연산의 등 뒤에 춤추는 가면을 놓아두어 죽음도 치고 올라오는 광대의 생명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왕의 남자>, 원작에서 발견한 10%로 무게중심을 옮기다

극의 무게중심을 이동한 <왕의 남자>는 <이>(爾)와는 다른 어조를 지닌 영화가 되었다. 동성애가 소재인 데다 <패왕별희>를 떠올리게 할 거라며 조심스러웠던 원작자를 설득한 이준익 감독은 힘을 겨루는 남자들 중에서 장생을 자신의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공길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겠고 연산은 딱 맞아떨어지는 면이 없었다. 하지만 장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갈등과 비슷한 점이 있어 그 캐릭터를 파기 시작했다. 장생은 권력과 신분을 강하게 부정하는데, 주어진 여건에 맞추어 적당히 사는 현대인도,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저항하는 이가 있을 거다.” 그에게 장생은 운명을 거역하는 이였고 공길은 운명에 순응하는 이였다. 그리고 운명을 파괴하는 이가 있으니 선대의 업보를 짊어진 임금 연산이었다.

성종의 계비 윤씨의 아들로 태어난 연산군은 흥청망청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이루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장대한 방탕을 즐겼다.(그가 놀자고 만든 장악원에 뽑아올린 기생들의 직책이 흥청과 운평이었다) 그러나 안정기에 접어든 왕조의 후계자로서 신권(臣權)을 경계하였다는 정치적 평가에 더해 아버지의 명으로 어머니가 사약을 받은 상처, 시를 짓고 처용무를 추었다는 예인의 분위기가 그를 단순한 폭군보다는 다면체의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그러기에 연산은 해석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나, 이준익 감독은 연산을 모를 듯한 인물로 내버려두고, 다만 가엾은 아이로 바라보았다. “정진영에게 공부하지 말고 오라고 했다. 너도 연산을 모르고 나도 연산을 몰라야 한다고. 그래야만 관객도 연산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가 없을 테니까. 연산은 <왕의 남자>에 잠깐잠깐 나오면서도 언제나 변화하는 인물이어서 그 순간의 느낌으로 연기하기를 원했다.” 수천의 여인을 곁에 두고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구중궁궐을 배회하는 연산. 이준익 감독이 “왕이 되지 말았어야 했지만, 적장자였기에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광대의 피를 지닌 왕”이라고 말하는 연산은 어느 순간 이성의 끈을 놓치고 파괴의 정점인 죽음에 매혹되어간다.

이처럼 인물의 변주를 시도한 <왕의 남자>는 무엇보다 이야기의 시작과 놀이의 목적이 원작과 달라졌다. <이>(爾)는 두 차례 사화로 피바람을 부른 연산군이 폐비 윤씨에게 향을 사르며 건네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6년 차이를 두고 일어났던 무오와 갑자사화를 몇달 안에 몰아넣었고, 연극으로 부왕의 시해를 고발했던 <햄릿>처럼, 광대들의 놀이판을 사화의 방아쇠로 삼았다. 녹수와 공길의 알력다툼이 아니라 연산과 내시 처선이 기획한 숙청의 도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처선이 광대들을 발견하여 궁에 들이는 이야기가 붙어야 했고, 영화는 장생과 공길이 궁중광대가 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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