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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우리가 놓친 외화 10 [6] - <버려진 땅>

한해를 결산하며 최고의 영화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어느새 비평가들의 의무처럼 되어버린 현실에는 어쩐지 떨떠름한 구석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굳이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면 약간은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미래의 작가’들을 점쳐보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 좀더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한해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지만 (단지 데뷔작이고 그런 만큼 감독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관객의 외면을 받은 작품들 가운데서 유독 애착이 가는 것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메르세데스 알바레즈의 <고향의 하늘>은 빅토르 에리세에게 영화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 즉 우리의 영화적 경험과 세계를 관련짓는 작업이 여기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찬사를 내뱉게 한 작품이다. 또한 이 영화는 레이몽 드파르동의 <농촌소묘> 연작과 함께 사라져가는 전원의 풍경을 진솔하게 담은 동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리우지아인의 <우피>는 5세대와 6세대의 붐이 지나간 이후 중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2005년 최고의 데뷔작으로 꼽고 싶은 것은 스리랑카 출신의 비묵티 자야순다라가 만든 <버려진 땅>이다.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공동)수상- 스리랑카영화로서는 칸에서의 최초 수상이었다- 했으며 심사위원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강력한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후문 등으로 작은 화제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국내 상영(CJ아시아인디영화제) 당시에는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사실 이 영화는 만장일치의 평가를 이끌어낸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단지 몇개의 이미지만으로도 보는 이를 작품에 몰입케 하는 감독의 솜씨만큼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예컨대 미국 영화잡지 <필름코멘트>의 편집장 개빈 스미스는 칸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 황량한 풍경과 초라한 오두막을 보여주는 오프닝의 이미지만으로도 “의심할 바 없이 자신의 제재를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이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썼다. 정부군과 타밀반군 사이의 긴장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스리랑카의 어느 외진 황무지를 배경으로 여섯명의 등장인물간에 벌어지는 일련의 무관한 사건들을 지극히 미니멀하고 명상적인 형식 안에 담아낸 <버려진 땅>은, 역사적 리얼리티와 영화적 사건의 액추얼리티 사이의 긴장이 너무도 큰 나머지 보는 이로 하여금 거의 초현실적인 몽상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버려진 땅>을 향한 의혹의 시선은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이를테면 카메론 베일리라는 평론가는 자야순다라의 작품이 다른 스리랑카 감독들, 즉 프라사나 비타나제나 아소카 한다가마의 작품처럼 ‘이것을 보라! 무언가를 느껴라! 그리고 반응하라!’식의 외침이 없이 “기진맥진한 미학”(exhausted aesthetics)에 머물고 만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평가는 지극히 부당하고 또 <버려진 땅>의 미학적 핵심을 놓친 것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제3세계 작가영화에 대한 서구평론가들의 상투적인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야순다라는 즉각적인 ‘반응’(reaction)을 요청하는 리얼리티, 상징, 알레고리의 힘에 기대기보다는 의미화되지 않은 사건들의 연쇄를 통해 낯설고 쉽게 규정짓기 힘든 제3세계(영화)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버려진 땅>이 내 조국의 역사와 무언가 관련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도 없지만 평화도 없는 그 둘 사이의 긴장상태를 영화를 통해 전달해냈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이 기묘한 분위기를 포착하고자 했다.”(비묵티 자야순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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