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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붕괴 [6] - 보론 ④

한 미국 영화기자가 바라본 스크린쿼터 축소

이 얼마나 단기적이고 편협한 결정인가

스크린쿼터가 반으로 축소됐다. 미국에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고 지지하던 이들에게 심란한 소식이다. 다들 예측하지 못했던 일도 아니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대해 롭 포트만 미국 무역대표는 “한국인들에게는 영화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공정한 경쟁조건을 갖게 해줄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 진술에서 냉소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은 세계의 영화무역을 지배하고 있으며, 할리우드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국내시장을 보유하면서 다른 나라보다 저가인 수출품으로 해외시장을 쓸어버릴 능력이 있어 전략적이고 경쟁적인 이점을 지녔다.

쿼터야말로 실제로 공정한 경쟁조건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이에 재경부 또한 한국 영화산업에 대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으로 이익을 볼 다른 산업들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통합적으로 문화콘텐츠 산업에 전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한국영화의 활력과 성공이 간접적으로 다른 한국 소비상품들이 해외시장에서 갖게 되는 인지도와 인기에 조력한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 같았다.

쿼터 축소 그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어떤 즉각적인 영향이 보일 것 같진 않다. 한국 영화산업은 건강하고, 자금이 잘 들어오고 있으며, 제작편수도 늘어나고 있고, 영화는 충분히 경쟁적이다. 그리고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한국 관객은 할리우드물보다 국내영화를 선호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영화의 질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쿼터 축소로 인한 장기 여파가 염려된다. 쿼터가 한국영화의 현재 위력에 영향을 얼마나 끼쳤는지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스크린쿼터는 안전망이다. 국내영화들이 뛰어나든 형편없든 늘 자국에선 존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특히 모든 국가의 영화들이 한때 겪게 마련인 침체기 때 중요하다.

애초에 쿼터가 없었더라면- 특히 한국영화가 상대적으로 낮은 질을 갖추고 상업적으로도 자립하지 못하던 시기에- 다른 관련 요인은 다 제쳐두고서라도 현재 한국영화 붐이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을지 의문이다. 한국영화가 국내시장에서 워낙 강력한 위치에 있게 됐으니 쿼터가 더이상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쉽다. 그러나 붐이 가라앉고 나면 어떻게 될까?

쿼터 축소 때문에 직접적으로 일어날 문제는 아니지만, 그 때문에 결국 악화될 수 있는 다른 두 가지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한국의 예술영화와 독립영화의 상황이다. 이익이 많이 나는 국내 장르영화들에 의해 극장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축소된 쿼터가 시행되면 독립영화의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한국의 멀티플렉스가 한국 상업영화와 할리우드영화만 걸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정된 국내 극장시장 규모에다가 거의 사라져버린 DVD 시장 상황으로 증가될 가망성이 있는 한국영화의 ‘국제화’ 추세다. 특히 지난 한해 동안 제작비와 마케팅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에 한국 영화사들은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점점 해외시장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런 경향은 계속될 것이고, 아마도 쿼터 축소 상황에서는 더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질이 악영향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해외 주류 관객, 특히 북미와 유럽의 관객에게 호소하기 위해 한국영화는 단순화된 플롯 공식에 더욱 기대고, 한국의 특수한 문화적 내용을 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경향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데, 만약 저지하지 않은 채 넘어간다면 국내 관객과 전세계의 팬들이 좋아하고 높게 평가하던 한국영화의 특징들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물론 한국 영화업계가 해외시장을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바른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이 있다고 본다. 할리우드가 지배하는 게임에서 이기려 드는 것보다 한국영화의 강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태풍> 같은 영화는 줄어들고,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가 더 늘어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쿼터 축소가 단기적이고 편협한 결정이며, 한국영화가 해결해야 할 장기적 난점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낙관적인 입장을 버리지 않으며 한국 영화산업은 어떤 어려움이 앞에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덕에 세계 영화문화는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고란 토팔로빅은 뉴욕 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이자 <섭웨이 시네마> 창립 멤버다. 또한 아시아 대중문화에 관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화 업계지 <아시아 무비위크>의 뉴욕 통신원이기도 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