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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문소리+지진희
사진 이혜정박혜명 이다혜 2006-02-24

대단히 드세 보이는 여자, 대단히 인자해 보이는 남자.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문소리지진희를 한 구절로 표현하라면 이보다 무난한 구절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 관한 정답이 없다 쳐도, 저 구절은 오답이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교수, 선생, 환경단체 회원들같이 사회적 명예와 지위와 고상함을 갖춘 이들에 관한 발칙한 X파일이다. 두 배우와의 만남은 ‘별로 드세지 않은, 별로 인자하지 않은’ 남녀에 관한 X파일에 가까웠다. 표지 촬영 약속시간은 5시. 지진희는 일찌감치 준비를 마치고 “4시쯤 도착할 것 같은데”라는 전갈을 보내왔고, 이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1인 시위로 4시간 동안 찬바람을 맞고 온 문소리는 피로로 푹 꺼진 눈을 하고서도 “이따 밥 먹으며 인터뷰해요”라더니 온돌방이 깔린 밥집에 앉아 하염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진희는 단호한 어조의 문장을 즐겨쓰는 사람이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문소리는, 불편한 자리를 편하게 만든 다음 얼른 제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연하고 무르지만은 않은, 드세지만도 않은 두 남녀의 매력이 은밀하다 못해 비밀스러워 보였다.

남들은 모르는 문소리의 겁많은 매력

“남들은 내가 진짜 겁없고 대담한 줄 아는데, 저 진짜 겁 많아요.” 늘 절반의 사람들이 만류하고 드는 영화에만 덤벼드는 여배우 문소리는 지나치게 많은 겁을 타고났다. 골목길에서 동네 아이들과 정신없이 놀다가도 저 멀리 차 소리가 들려오면 행여나 그 차에 다치게 될까봐 잽싸게 벽에 붙어 얼굴 묻고 차 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곤 했다. 나와서 발표해보렴, 하는 선생님 말에 오줌부터 싸고, 오줌을 안 싸면 교실 앞으로 걸어나가다 하도 덜덜 떨어서 자빠져 팔이 부러졌다.

그런 그녀가 ‘남들’이 만류하는 길에 뛰어들었던 건 ‘남들이’ 만류하는 이유가 문제의 핵심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본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노출있는 영화하면, 그래도 여배우인데, 에이, 좀 그렇잖아. 그게 이유예요. 그래서 듣고 있다보면, 으응, 해도 되겠네 싶어져요.” 그렇게 매번 영화를 찍고, 그녀만의 센스 넘치는 표현을 따르자면 “침대 벽에 구멍 뚫고, 벽 박박 긁어가며” 앞으로 먹고살 일에 겁을 먼저 집어먹고는 했다. <여교수의 은밀한 유혹>도 다를 바 없다. 여교수 조은숙은 제 직업에 걸맞지 않은 과거사를 가진 우아하고 관능적인 여자다. 문소리가 지금껏 제 자신과 비슷한 구석을 찾아 연기했던 캐릭터들과 대조적인 인물이다. “나는 이해 안 되면 연기 못해요. 얼굴에 그게 다 드러나요. 조은숙은 모든 게 연기인 인물이고, 반사적으로도 자기 연기로 사는 여자라고요.” 자신에겐 이것이 ‘두 번의 연기’를 해야 하는 일이었고 감독은 그에게 캐릭터를 일임했다. 영화가 조은숙을 그려내는 방식과 유사하게, 문소리는 현장에서 감독과 머릴 맞대고 상의하기보다 감독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로 게임을 벌이듯 조은숙을 조금씩 만들어나갔다. 노출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므로 ‘남들’의 만류에도 선택했지만 ‘남들’이 봐온 형태의 여주인공이 아니며 영화의 뉘앙스도 묘한지라 낯설 거라고 그녀는 또 걱정을 풀어놓았다.

문소리는 얼마 전 김태용 감독의 신작 <가족의 탄생> 촬영을 끝내고 요즘 극단 차이무에서 <슬픈 연극> 공연 중이다. 영화를 시작한 뒤 서보는 첫 연극무대인데, 돈 주고도 못 배울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연기라는 게 자신을 바닥내는 직업이잖아요. 내가 가진 원천 기술이 대체 뭔가 생각하면 두려울 때가 많았는데, 연극하면서 많이 배워요. 정말이지 너무 창피한데, 앞으로 계속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 총 46회 공연. 그녀 표현에 따르면 “한 시간 반짜리 컷을 마흔여섯번 테이크 가야 하는데 전부 다 오케이내야 하는 일”의 첫날,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며 겁 많은 여성 프런티어가 큰 눈을 또르륵 굴렸다.

“<오아시스> 때 감독님이 그랬어요. 너 이 영화 하면 다시는 배우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해라. 그래서 그럽시다 했죠. 감독님이 늘 그랬어요. 이 일에 목 매고 있지 말아라. 늙어죽을 때까지 배우해야지 하는 생각 꿈에도 갖지 말고 사람들이 안 찾을 때가 온 것 같으면, 깨끗하게 돌아서야 한다. 근데 얼마 전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 중에 <오프닝 나이트>에서 지나 롤랜드가 연기하는 걸 봤는데, 그건 또 나이들지 않으면 못하는 연기예요. 그런 거 보면 또 욕심도 나고…. 연애도 하긴 해야 하는데…, 영화 작업할 때만큼 그렇게 떨리고 설레는 남자가 없는 것 같아. 남자가 뭐 그렇게 좋은가도 싶고.”_문소리

우리는 모르는 지진희의 단호한 매력

<대장금>의 민정호나 <봄날>의 은호를 보고 지진희가 다정하고 사려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맞다. <H>와 <여섯개의 시선> 중 한편이었던 ‘얼굴값’을 보고 그가 성마른 다혈질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도 맞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연기자라는 뜻만은 아니다. “가정을 못 살리는 게 창피하지 노동이 창피한가”라는 그는 가족과 그가 믿는 사람들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보내다가도, 다음 순간 자기 생각을 개진할 때는 더없이 호전적이다. “쌀 수입 반대 시위 때 농민들과 함께였다면, 스크린쿼터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국민들이 이렇게 냉담했을까”, “반한류에 신경쓸 것 없다. 왜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기를 원하나. 왕자병이다. 더 좋은 작품으로 승부를 보면 된다”.

지진희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인기 만화가이자 대학교수인 석규로 출연했다. 극장에서 보려고 가편집본은 보지 않았다. “첫 장면 찍은 거 모니터로 보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천국보다 낯선>의 느낌을 받았다”니 개봉을 앞둔 불안은 그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에겐 세상의 짜증과 분노를 한순간에 해독해주는 가족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가 전 국민에게 전하는 말은 영화 홍보 문구가 아니다. “변화를 겁내지 마세요, 그리고 꼭 취미를 가지세요”, “최선을 다 하면 진짜 쉽다”는 그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세개의 직업을 거친 그가 매번 바닥부터 시작했고, 고민의 11시59분까지 치열하게 달리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전 정말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다 잘할 수 있어요. 방법은 쉬워요. 최선을 다하면 돼요. 못할 게 뭐 있어요. 못한다는 말은, 말이 안 돼요. 그래도 저한테는 배우라는 직업이 전부가 아니에요. 다시 사진을 찍어도 되고, 공예를 다시 해도 돼요. 나이 들어서까지 배우만 하고 있진 않을 거예요. 제 꿈은 따로 있어요. 나이 들면 1년에 한편 정도 영화나 드라마 하면서 우리 아이들 사진 찍어주고, 이것저것 만들면서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_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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