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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아름다움, <로망스>의 김지수

김지수의 아름다움은 오래 묵어 숙성된 상처에서 터져나오는 빛의 아름다움이다. 그건 그래서 관습적인 카메라나 듬성듬성 짜맞춘 미장센에서는 티도 안 나는 아름다움이며, 눈썰미없는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이윤기 감독이 최초로 발굴한 김지수의 영화적인 아름다움, 그러니까 14년 동안 TV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으나 그 참된 매력은 아직 안개 속에 있었던 김지수의 얼굴엔 그렇게 낯선 아름다움이 있다. 물론 그런 상처의 아름다움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고, 거기엔 저마다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김지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과, 공지영과 쓰지 히토나리 작가에 관한 단상과, 스크린쿼터에 관한 단상(미국의 이기주의에 대한 단호함)을 슬쩍 훑어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영화계가 ‘신인영화배우’ 김지수에 열광한 것은, 오랜 세월의 빛과 어둠 속에서만 성장하는 서늘한 아름다움의 존재를 김지수가 알려줬기 때문이다. 문승욱 감독은 <로망스>에서 이윤기 감독이 발굴한 독특한 아름다움에 영묘한 기운을 더하고 싶어한다. “뜨겁게 덥혀야 천천히 드실 것 같아서”라며 조재현의 국을 다시 데워오게 하는 장면, 어깨의 멍자국이 드러나는 장면, 탱고를 추는 장면 등 아주 작고 미세한 장면에서 그런 아름다움은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마치 잠깐 출연하고서도 코미디로 갈뻔한 <박수칠 때 떠나라>에 서정성과 긴장을 불어넣은 것처럼 말이다. “뒤늦게 영화에 데뷔한 김지수의 섬세하고, 성숙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정성일)을 향해 감독들은 이제 막차 잡듯이 허겁지겁 손을 내밀고 있다. 멍하게 10년 넘는 동안 김지수에게서 그런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건 우리 모두의 게으름의 소산이지만,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스럽다. 뒤늦게라도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알아차릴 수 있어서 말이다.

<로망스>의 윤희 역이, 혹시 또 아픈 상처를 속으로 삭이는 역할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사실 그 상처에서 터져나온 아름다운 빛이란 상처를 남 앞에 전시하여 동정을 받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고양이와 보내는 일상, 그리고 우체국에서 소포 무게를 재고 우표를 붙이는 허드렛일, 구두를 신어보고 벗는 장면, 고양이에게 참치와 김밥 속을 골라 먹이는 장면 같은 <여자, 정혜>의 작은 리얼리티의 아름다움을 떠올려보라. 그 작고 연약하지만 또한 매우 서늘하고 강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도 카메라 앞에서는 별다른 멋도 없을 그런 장면들이 김지수가 손을 내미는 순간 마법처럼 오랜 세월 속에서 나이테를 달고 나온다. 과장되지도 않고 수선스럽지도 않으나 은은하게 자기만의 리듬을 갖춘 이야기들이 흘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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